[박욱주 교수의 기독교 문화비평] ⑫무속에 대한 이중적 시각의 필요성
우리 사회에서 무속의 영향력은 어느 정도나 될까. 사실 일반대중 대부분은 무속 없이 살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들에게 무속이란 단지 미신이거나 하위문화의 일종일 뿐이다. 우리 사회 전체로 보면 비교적 소수의 사람들만 무속인들의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그런데 이 소수의 사람들 가운데는 의외로 막대한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정치적 시운(時運)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하는 고위 정치지도자, 경제의 대세를 면밀하게 읽어내야 하는 거물 기업가들 가운데 적지 않은 수가 무속인, 역술인, 그리고 풍수지리 전문가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듯하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자면, 역술이나 풍수지리는 엄밀히 말해 반드시 샤먼(무당)을 거쳐야 하는 풍습은 아니라는 점에서 무속과 구별되지만 적지 않은 수의 무당이 역술과 풍수지리를 함께 익혀 활용하는 것이 현실이므로 세 풍습 사이에 깊은 근친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일례로 SK그룹 최태원 회장은 1999년 여의도 증권가에서 유명해진 무속인 김원홍을 알게 된 뒤 그의 조언에 따라 중요한 경영상 의사결정을 내렸고 2008년까지 6천억원에 달하는 자금을 김원홍에게 선물옵션 투자금으로 전달했다. 이 투자는 결국 4천억가량의 손실을 기록했고 김원홍은 투자 과정에서 기업 자금을 횡령한 사실이 드러나 4년 6개월의 징역형을 받았다.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 회장은 1967년 당대 풍수학의 대가 장용득의 자문에 따라 조부모와 부모의 묘를 수원으로 이장한 바 있다. IMF사태 당시 해체된 한보그룹의 정태수 회장은 역술인의 권유로 사업을 시작했고 사주와 관상을 보고 사원을 뽑았다고 전해진다. 지난해 대형 연예기획사 하이브와 분쟁을 일으켜 전국민적 센세이션을 일으킨 민희진 어도어 전 대표 역시 무속인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사업에 관련된 의사결정을 내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고위 정치인들도 무속인, 역술인, 풍수지리 전문가들의 조언에 귀를 기울이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천주교 신자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 그리고 마찬가지로 천주교 신자인 라이벌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 모두 중요한 선거를 앞두고 조상 묘를 이전한 사례가 있고, 개신교 장로였던 이명박 전 대통령도 대선 준비용 사무실을 구할 때 풍수지리 이론에 따라 장소를 선정한 적 있다고 고 정두언 의원이 증언한 바 있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을 둘러싸고 논란이 된 손바닥의 ‘임금 왕’(王)자 사건(국민의힘 경선후보 토론회 당시 손바닥에 ‘왕’자를 쓰고 참석한 사건), 역술인 천공과의 친분 의혹 역시 무속과 역술이 정치지도자와 엮인 대표적 사례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사회지도층이라 할 수 있는 주요 기업가와 정치지도자들이 무속, 역술, 풍수지리와 쉽게 얽히는 데는 나름의 심리적 이유가 있다. 이들은 일신의 지식과 의지만 가지고서는 헤쳐나갈 수 없는 막중한 책임을 짊어졌거나 한 사람의 힘만으로는 획득할 수 없는 대망을 목표로 삼는 자들이다. 그리고 자신들의 의사결정 하나하나가 자신을 따르는 집단이나 자신이 속한 나라 전체의 흥망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이런 사회지도층 인사 가운데는 개인적으로 그 누구보다 큰 불안감을 안고 사는 이들이 많다. 이렇게 압도적인 불안에 시달리는 이들에게는 앞날을 내다보고 대처할 수 있게 해주는 신비한 힘이 그 무엇보다 매력적인 대안으로 다가온다. 앞날에 대한 거스를 수 없는 불안이나 분수에 넘치는 욕망에 붙들린 이들에게는 이 신비한 힘의 출처가 어디인지는 중요치 않다. 단지 그 실제적인 효험이 중요할 뿐이다.
이렇게 심중에 커다란 불안과 욕망을 담은 이들이 갈구하는 이 신비하고 초월적인 힘이 문화적 관점으로 볼 때에도 가치가 있고 용인될 만한 것이라면 그 매력과 신빙성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무속이 이런 이미지로 비쳐지고 있다. 분명 무속을 미신적, 전근대적, 비과학적 풍습이라 멸시하는 이들이 많지만 그에 못지않게 오랜 전통을 가진 신비한 효험이 있는 종교문화로 여기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이렇게 두 가지 관점이 상충되는 현상 이면에는 무속을 둘러싼 특별한 정치사적 배경이 자리잡고 있다.
오늘날 우리 한국인들은 대개 무속을 두 영역으로 구분한다. 첫째는 예술양식으로서의 무속이고 둘째는 종교로서의 무속이다. 무속에서 이 두 영역이 명확하게 갈라지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새마을운동 당시부터였다. 종교학 연구자 최경호는 ‘미신타파 이후의 동제(洞祭)와 마을의 정체성’(1997년)이라는 논문에 이런 현상을 자세히 기술하고 있다. 1970년대 초반 박정희 정권은 새마을운동의 일환으로 향촌 미신타파운동을 추진하며 종교로서의 무속을 억압하였다. 이 미신타파운동은 크게 두 가지 목적으로 추친됐다. 첫째는 무당들이 향촌 농어민들에게 행사하는 영향력을 제거해서 면사무소를 중심으로 국가 행정력을 원활하게 발휘하는 것이고, 둘째는 향촌 개발과 도로 건설의 걸림돌이 되는 서낭당, 장승, 신목 등을 잡음 없이 제거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미신타파운동 과정에서 박정희 정권은 무속에 특별한 정치적 이용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된다. 무속은 개인 차원에서는 점술과 굿으로 사람들을 현혹하지만 마을 단위로는 공동체의 결속을 굳게 하는 기능을 갖고 있었다. 이는 주로 동제, 즉 마을 제사를 통해 나타나는 효과였다. 이에 한국 정치지도자들은 무속이 가진 공동체적 결속의 힘을 통치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활용하기 위해 무속을 향토신앙, 전통문화의 한 중요한 축으로 인정하기 시작했다. 신자토 교수가 밝힌 바에 의하면 한국 정치지도자들이 주목한 것은 무속에서 사회성을 갖춘 요인들, 주로 지역사회, 민족, 나라를 위한 굿이나 제례의 힘이었다. 이런 정치적 계산 때문에 무속은 한편으로는 전근대적 미신이자 주술로서 경멸의 시선을 받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지역사회와 민족의 정체성을 지탱하는 축제적 문화요소로 인정을 받았다.
이 이중적인 태도 가운데 무속의 사회적 결속 기능, 문화적 가치를 인정하는 쪽은 주로 학계와 미디어, 그리고 대중문화 영역에서 적극적으로 수용됐다. 한국의 종교학 연구자들과 전통문화 연구자들은 무속을 흥미롭고 소중한 연구 소재의 보고(寶庫)로 바라본다. 실제로 학계에서 발표하는 무속 관련 논문 가운데 무속의 폐해나 무속인들이 일으킨 사회적 물의를 깊게 파헤치는 경우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그리고 대중문화 속 무속은 식민화를 노리는 외세의 힘에 맞서 우리 사회 약자들의 고통과 애환을 달래주는 신비롭고 영험한 전통문화로 자주 묘사된다. 작년 영화계 흥행작 ‘파묘’는 이런 인식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교계에서도 무속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취급을 받았다. 복음주의 신앙을 고수하는 일선 목회자들은 무속을 다신교적 우상숭배로 규정하며 경계했다. 하지만 복음주의 신학 연구자들은 무속의 신학적 연구가치를 높게 인정하지 않는 학계 분위기 때문인지 무속 연구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 와중에 한국 자유주의, 진보주의 신학자들은 무속이 한민족의 정신문화 형성 과정에 행사한 거대한 영향력을 주의깊게 살펴 무속이 토착화 신학의 중요한 축을 이루는 연구소재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대표적인 예가 감신대와 연세대에서 토착화 신학을 연구하고 가르친 소금 유동식 교수다. 그는 한국인들이 외부로부터 유입된 고등종교(유교, 불교)를 수용하는 방식이 기본적으로 무속 제의 양식인 춤과 노래에 담긴 풍류의 정신으로부터 나왔다고 분석하면서 기독교 역시 이 풍류도의 관점으로 해석돼야 진정한 한국인의 종교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유동식은 저서인 ‘한국문화와 풍류신학’에서 구원이 오직 그리스도의 복음에만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지만 이 복음이 전파되는 한국 고유의 문화적 정황을 기반으로 그리스도의 성육신이 갖는 종교적, 영적 의미를 재해석할 필요가 있다고 권고한다.
그렇다고 해서 유동식 교수가 무속의 종교적 특성을 일방적으로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한국문화의 종교적 기반’(1970년)이라는 논문에서 무속에는 “욕구충당이라는 대외적인 순응의 길”만 있고 “고등 종교에서 볼 수 있는 부정(否定)을 매개로 한 질적인 변화”와 “발전적인 역사의식”이 결여돼 있다고 진단한다. 또한 ‘무교(샤아머니즘)적 세계관의 문제’(1975년)라는 논문에서는 무속적 가치기반이 “자유, 평등, 정의 등의 사회적 선악이 아니라 개인의 소유가 많고 적은 데 있다”고 비판한 바 있다. 유동식의 진단대로라면 무속에 담긴 축제적이고 풍류적인 요소를 기반으로 한국교회 예배나 신앙실천이 토착화된 사실을 부정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무속의 기복적 속성은 그리스도 성육신의 기초정신인 자기비허(kenosis)와 상충되므로 기독교 신앙의 올바른 토착화를 저해하는 요인으로 규정해야 한다.
유동식이 관찰한 것처럼 한국교회 내부에는 무속의 문화적 영향과 종교적 영향이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무속에 대해 이중적 태도를 갖는 것처럼 한국 기독교인 역시 교회 내부로 유입된 무속의 영향에 대해 이중적인 관점을 가지고 살필 필요가 있다. 먼저 무속의 문화적 특성, 즉 무속의 제의적이고 축제적인 속성은 실상 다수의 원시종교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특성이다. 이는 아직 고등종교의 틀이 제대로 갖춰지기 전 초월자를 향한 인간의 바램과 열망을 정열적으로 표현하는 예술양식이다. 따라서 그 자체를 이교적 혹은 미신적이라고 지탄하는 것은 부당하다. 간혹 열띤 통성기도나 박수치는 찬양을 무속의 문화적 영향이라고 지적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무속 때문에’ 한국교회 내에 생겨난 것이 아니라 ‘무속과 마찬가지로’ 초월자의 권능을 힘입고자 하는 인간의 종교적 심성에 공통적으로 깃드는 문화적 행태라고 보는 것이 보다 적절한 이해방식일 것이다.
반면 무속의 종교적 영향에 대해서는 한국 기독교인들이 강한 경계심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 앞서 사회지도층 기업가나 정치인들의 무속 의존 사례에서 언급한 것처럼 무속에 의존하는 이들은 불안한 마음과 함께 자신의 소유를 채우려는 강한 욕망을 가지고 무속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여기서 소유란 물질적 재화와 정치권력 모두를 포함한다. 유동식 교수가 지적한 것처럼 무속은 이 개인적 ‘욕구충당’에 특화된 종교로서 ‘발전적인 역사의식’과 ‘자유, 평등, 정의 등의 사회적 선악’에는 무관심하다. 반대로 기독교 신앙은 인류 전체를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 그리고 구원의 은혜 안으로 인도하려는 확고하고 강력한 역사의식을 수반한다.
따라서 기독교인들이 순전히 개인적 욕망을 위해 하나님을 찾는 것, 그리고 자신에게 이익이 된다면 복음이든 무속인의 말이든 분별없이 참고하고 수용하는 행태는 모두 바른 신앙의 행실이 아니라 무속의 기복적 속성이 깃든 반기독교적 신앙 왜곡 사례로 볼 수 있다. 이러한 논리에 따라 한국교회는 교회 내에 기복적이고 이기적인 무속 특유의 원시적 종교성을 수용하려는 모든 시도를 차단할 책임을 갖는다. 자신을 기독교인이라 칭하면서 점술, 굿, 역술, 풍수지리에 자기 운세를 내맡기는 것은 지극히 모순적이다. 이런 모순 속에서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담긴 신앙의 기준을 바르게 세우는 것이 불가능하다.
우리 사회가 무속의 문화적 가치를 인정한다고 해서, 혹은 학계와 미디어, 대중문화계에서 무속의 문화적 가치를 높게 평가한다고 해서 그 종교적 속성까지 긍정적인 가치를 갖는다고 착각해서는 안된다. 이런 의미로 본다면 박정희 정권이 무속을 예술양식으로서의 무속과 종교로서의 무속으로 분리해서 다뤘던 방안은 한국교회가 무속을 이해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중요한 교훈을 선사한다. 과거 무속을 통해 표현됐던 신을 향한 갈망의 몸짓이 한국교회의 신앙실천 가운데 유사하게 나타나는 것을 굳이 부정적으로 볼 이유는 없다. 그러나 불안과 욕망에 휩싸인 이들이 무속인을 의존하는 기복적 종교성은 어떤 형태로든 한국교회 내부로 유입돼서는 안될 것이다. 교회 내에서 진정으로 삶의 불안과 두려움을 극복하려면 개인의 소유에 대한 욕망을 채워주는(혹은 채워준다고 주장하는) 무속인이 아니라 구속의 은혜를 베풀기 위해 자기를 비우고 성육신하신 그리스도의 말씀과 능력을 구해야 한다.
◆박욱주 교수는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수학했고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좁은문은혜교회 목사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한국기독교문화연구소 연구교수와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정리=김수연 기자 pro111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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