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지나치기엔 아깝다... 영화 '리볼버' 다시 봐야 할 이유들
[김성호 기자]
도전 없는 사회라고들 한다. 검증되고 익숙한 길을 가려는 이만 넘쳐날 뿐, 실패의 가능성이 도처에 널린 새로운 시도를 감행하는 이는 마주하기 드물다. 수학능력시험에서 최고의 성적을 거둔 이들이 전국 의과대학으로만 쏠려가는 현상이 지난 십 수 년 간 가속화되고, 신규 창업 또한 확보된 시장을 나누어먹으려는 업체들 일색인 것이 오늘의 한국이 아닌가.
문화예술부문 또한 얼마 다르지가 않아서 근 몇 년 개봉에 이른 콘텐츠 상당수가 과거 있었던 이야기의 재탕 정도에 머무른단 자조가 곳곳에서 들려온다. 쓸 만한 시나리오를 찾아볼 수 없다는 업계 관계자들의 이야기가 더는 엄살로만 들리지 않는 건 세계적 OTT 업체들마저 한국에서 제작되는 콘텐츠의 가치를 전보다 낮게 평가하고 제작규모도 줄이는 흐름을 확인하는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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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볼버 포스터 |
| ⓒ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
한국영화 가운데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작품이 얼마 되지 않는단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다른 문화콘텐츠, 이를테면 문학에선 여성쏠림이 심하고, 드라마에선 여성주인공이 등장하는 작품이 결코 적지 않은데 반하여, 유독 영화에서만큼은 남자배우 일변도의 흐름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따금 여성을 주연으로 삼은 작품이 나오더라도 흥행에 실패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인 탓으로 영화계에선 아직까지도 티켓파워가 있는 여배우가 한 손에도 꼽지 못할 정도라는 이야기가 공공연히 나돌 정도다.
누아르는 개중에서도 여성 주인공을 찾기 힘든 장르다. 범죄와 폭력이 밀접하게 맞닿은 세계를 다루는 장르의 특성상 여성이 주요한 역할을 맡기 어렵다는 이유일 테다. 질서와 안락을 벗어나 온갖 위협을 감수하려는 성향이 여성보다는 남성에 가까운 탓이기도 하고, 신체적으로도 액션을 소화하기가 어렵단 평가가 영향을 미쳤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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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볼버 스틸컷 |
| ⓒ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
경찰 하수영은 하루아침에 전과자가 된다. 그녀가 믿고 있던 옛 상사, 형사과장 임석용(이정재 분)의 일이 틀어져 누군가 책임을 뒤집어써야하는 상황이 되어서다. 꽤나 영향력 있는 기업 이스턴 프로미스의 뒤를 봐주던 일단의 경찰들이 모두 연루된 사건이 검찰의 수사망에 걸려든 것으로, 하수영의 이름이 언급된 탓에 그녀가 책임을 지거나 모두가 같이 몰락하거나의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 것이다.
하수영은 그를 받아들이는 대가로 출소 후 이스턴 프로미스의 이사 직책과 함께 수억의 돈을 받기로 약속을 받는다. 또 입주 예정인 아파트를 지켜달라는 약조 또한 이스턴 프로미스 관계자로 나온 앤디(지창욱 분)에게 받아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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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볼버 스틸컷 |
| ⓒ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
대단한 원한이나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니다. 통상의 누아르와 달리 적을 일망타진하겠다거나 악을 모조리 뿌리 뽑겠다는 원한이 깃들어 있지도 않다. 그저 내 것이어야 마땅한 것을 돌려달라는 것, 그를 위하여 어떤 위협도 불사하겠다는 주인공의 분투가 114분의 러닝타임에 가득 들어찼다. 저를 돕는 이 하나 없는 상황 속에서 일이 대체 어떻게 틀어진 것인지를 알아내는 과정이 초반을 이루고, 그로부터 일을 해결해나가는 과정이 뒤를 채운다.
앤디를 찾아 그를 두들겨 패놓은 하수영이다. 그러나 앤디는 저는 회사에서 내쫓긴지 오래고 가진 돈도 없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도대체가 정상이 아닌 것처럼 보이는 그는 하수영에게 단단히 복수할 기세인데, 돈을 찾기 위해 이스턴 프로미스의 본진에 다가서는 하수영과 그녀를 쫓아 해를 입히려는 앤디의 엇갈린 의지가 이 영화 <리볼버>의 결말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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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볼버 스틸컷 |
| ⓒ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
<리볼버>는 대단한 거악이나 그를 상대하는 이의 처절한 의지를 멋스럽게 그리지 않는다. 그저 제게 약속된 대가를 찾아 분투하는 한 사람의 모습을 담박하게 비출 뿐이다. 다 합쳐도 고작 수십억, 그마저도 대부분은 본래 제 것인 아파트를 되찾는 이야기다. 수십억이 결코 작은 돈은 아니지만 한 편의 누아르 영화, 그것도 목숨을 걸고 불법을 감행하는 이유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대가가 아닌가. 그러나 영화는 하수영이라는 평범한 여성을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보다 관객 하나하나의 눈높이에 맞춘 누아르를 빚어내는 것이다.
한국영화, 또 누아르에 관심 있는 이라면 오승욱이란 이름을 기억할 밖에 없다. 그는 지난 2015년 제가 직접 각본을 쓰고 연출한 처녀작 <무뢰한>으로 영화팬들 사이에 존재감을 새겼다. <무뢰한>은 김남길과 전도연을 내세우고도 고작 41만 관객을 모아 흥행에 참패했으나 영화의 완성도와 작품성이 뛰어나 꾸준히 회자되는 작품이 되었다.
<리볼버>는 오승욱이 10년 만에 다시 내놓은 작품이다. 그가 얼마나 이를 갈고 만들었을지 짐작이 가는 바다. 그의 첫 작품을 함께한 전도연이 이번엔 원톱주연으로 작품에 참여했다. 부조리한 세상 가운데 약간의 미덕을 지키려 분투하는 이의 이야기를 다룬 전작보다 거창한 무엇도 없으나, 그래서 더욱 특별한 이 영화를 그러나 한국 관객들은 또 한 번 외면했다. 누적 관객수 25만 명에도 미치지 못한 관객수가 이 영화의 최종 성적표다. 나는 그것이 이 작품의 만듦새에 비해 너무나 가혹하고 부당한 결과라 여긴다. 지나간 영화 <리볼버>에 대한 글을 굳이 써 붙이는 건 바로 이러한 이유다.
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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