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공식 천만영화 '해바라기'의 결정적 매력
[김성호 평론가]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비공식 천만영화들이 있다. 극장 개봉 당시에는 별 조명을 받지 못했으나 2차판권시장, 또 그 이후 여러 경로를 통하여 전 국민적 관심을 받은 작품들이다. 특히 상대적으로 문화생활에 지출이 크지 않은 남성과 청소년들 사이에서 이와 같은 작품들이 여럿 있다.
그중 대표 격으로 들 수 있는 작품이 바로 <해바라기>가 되겠다. 2006년 개봉 당시 관객수 150만 명을 조금 넘긴 이 영화는 그해 박스오피스 84위에 올랐다. 영화판에 쪼그라든 지금이야 150만 관객이면 상위 20편 안에 안착할 수 있는 성적이지만 영화가 주요한 문화활동으로 확고히 자리매김하고 있던 당시만 해도 실망스러운 결과였던 게 사실이다. 다행히 손익분기점을 간신히 넘겨 제작자에게 재정적 타격을 입히지 않았던 것이 감사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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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바라기 포스터 |
| ⓒ 블루필름웍스 |
무엇보다 "사람이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는 게 세상 이치라더라. 지금부터 내가 벌을 줄 테니까 달게 받아라", "꼭 그렇게 다 가져가야 속이 시원했냐. 개새끼들아", "병진이 형은 나가 있어. 뒤지기 싫으면" 등의 명대사는 십수 년이 지나서까지 줄줄 외는 이가 수두룩할 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해바라기>의 인상적인 클라이맥스, 적진의 한가운데로 쳐들어가 치르는 일대 격전은 그 전형성에도 불구하고 한국 영화사상 기록할 만한 장면으로 남았다.
<해바라기>가 지난해 말 재개봉에 이르고, 출연 배우들이 한자리에 모인 사실이 때아닌 화제를 모은 것도 이 영화에 주어진 특별한 관심을 방증한다. 김해숙과 김정태, 박성웅 정도를 제외하면 주조연 가운데 이후 커리어가 더 나아졌다 할 수 있는 이가 얼마 되지 않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 영화 가운데 그네들의 가장 빛나는 한때가 담겼단 건 무시할 수 없는 사실이다.
주인공 오태식 역을 맡은 김래원을 비롯해 태식의 의붓동생 격인 희주를 연기한 허이재, 최종 보스로 남다른 존재감을 보인 김병옥, 비슷한 배역을 꾸준히 맡으며 성실히 활동하던 한정수, 이 영화 속 김병진이 아마도 인생 배역이 아닐까 싶은 지대한까지, 이 영화 가운데 제 필모그래피 중에서 가장 빛나는 한때를 심어낸 배우가 한둘이 아니다. 도대체 어떤 영화이기에 이토록 특별한 매력을 갖출 수 있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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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바라기 스틸컷 |
| ⓒ 블루필름웍스 |
수년 만에 돌아온 오태식의 앞엔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다. 무엇보다 오태식 또한 전과 다른 사람이 되어 있는데, 그를 장악했던 과거의 분노가 씻기듯 사라지고 이제는 갱생해 전과 다른 삶을 살고 싶다는 열망만이 남아 있는 것이다. 그러나 변화한 태식을 세상을 알아보지 못한다. 그를 전과 같이 바라보며 위협이 되는 존재로 인식하는 것이다.
태식의 똘마니였던 양기(김정태 분)와 창무(한정수 분)는 여전히 폭력배 생활을 지속하며 일대를 장악한 시의원 조판수(김병옥 분) 밑에서 행동대장을 한다. 태식이 중학교 시절 괴롭혔던 민석(박성웅 분)은 경찰이 되어 그를 잡아넣을 수 있을까 곁을 맴돈다.
그러나 태식은 그들과의 악연을 모르는 척, 새로운 삶을 살아가기 시작한다. 싸우지 않고, 술 마시지 않고, 울지 않는다는 저와의 약속을 굳건히 지키면서 사회에 나가면 하고 싶었던 버킷리스트를 하나씩 이행한다. 목욕탕을 가고 호두과자를 먹고 문신을 지우는 일들. 그리고 마침내 제게 수첩을 건네며 새로운 삶을 권했던 이, 제게 아들을 잃은 어머니 덕자(김해숙 분)를 찾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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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바라기 스틸컷 |
| ⓒ 블루필름웍스 |
영화는 불의로 가득한 삶 가운데서 미덕을 쌓아 올리는 이들과 그 미약한 선을 침탈하고 짓밟으려는 무리의 이야기를 담는다. 태식과 덕자, 희주의 둥지가 되는 해바라기 식당이 재개발 대상지에 끼고, 그를 사서 개발하려는 조판수가 팔 생각이 없는 덕자로부터 땅을 넘겨 받기 위해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조판수의 수하에 있는 동네 깡패들이 해바라기 식당을 찾아와 행패를 부리는 건 물론, 태식이 일하는 카센터까지 습격해 집단으로 린치를 가하기까지 한다. 덕자와도 또 자기 자신과도 싸우지 않겠다 약속한 태식은 그 모두를 참아내며 버티지만, 그를 더는 참아낼 수 없도록 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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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바라기 스틸컷 |
| ⓒ 블루필름웍스 |
그러나 이 영화가 가진 특별한 매력이 한국 영화사상 드물 만큼 오래도록 애정을 받는 작품을 낳았음을 무시할 수는 없다. 마치 알 파치노의 전성기가 담긴 <스카페이스> 류의 작품에 대하여 누구도 그 전형을 이야기하며 식상하다 하지 않듯, <해바라기>엔 나름의 낭만과 색채가 인상적으로 담겨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바보 같지만 우직한 선택을 온 힘을 다해 지켜내는 태식과 그를 끝까지 믿어준 덕자의 존재가 오늘의 관객에게 특별한 호소력을 발휘한 건 인상적이다.
흔히 사람들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이 더는 과거의 미덕을 존중하지 않고 눈앞의 이익에만 골몰한다 말한다. 그러나 여전히 이 시대엔 태식과 같이 변화하는 인간을, 선에 귀의하고 악에 저항하는 노력을, 사람을 믿고 신의에 보답하며 제 결심을 지키려는 모습을 응원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오랫동안 태양을 바라보다 마침내 그 모습을 닮아간 해바라기처럼, 더 나은 모습을 꿈꾸며 제 삶 가운데 미덕을 들여놓는 이들이 주변에 남아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오태식의 분투가 비록 비극적 결말로 끝나고 말지라도, 많은 이들이 그의 분노에 공명하고 그의 저항을 응원한다는 사실은 이 희망 없는 시대에 아주 작게나마 가망이 있다는 것을 웅변하고 있지는 아니한가.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는다.
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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