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갑 일본행, 구글맵과 번역앱 덕분에 생긴 일
[박향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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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글맵으로 자유여행 환갑으로 가는 인생길, 디지털도구활용의 재미. |
ⓒ 박향숙 |
"환경운동가라고 맨날 이슬만 먹고, 진흙 뻘 밭만 다니고, 새 종류나 개체 수만 세면서 산 단가. 우리도 남들처럼 1년에 한 번 쯤 해외여행 해보세. 당신은 어디를 가나 탐구심과 호기심이 많아서 재미있어하니 얼마나 좋은가. 특히 그 나라 언어로 말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으니, 우리 둘이 조금이라도 다리 성성할 때 이번 여행에 다녀오세."
12월 3일 일주일 전, 남편의 요청에 따라 가까운 일본 여행을 예약했다. 그런데 그 무서운 내란 사태가 터져버리고 대다수 국민처럼 극도의 정신적 스트레스가 일상을 차지했다. 여행이고 뭐고 취소하자는 말을 몇 번 건넸지만, 남편은 다른 때 같지 않게 이번에는 다녀오자고 권했다. 다행스럽게도 여행을 떠나기 바로 전, 내란의 주범이 구속돼 마음 한 줄이라도 안도의 신호를 보내줘 여행길에 올랐다.
구글 맵이라는 것
지난해 설날 때는 독일에서 공부하고 있는 딸 덕분에 난생 처음 유럽 여행을 했다. 갈 때부터 장거리 여행에 따른 여러 제약과 구속 때문에, 오히려 딸에게 큰 걱정과 부담을 안긴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아이들은 뭐든지 걱정하지 말라고 했지만, 마치 깃발 쫓아가야 하는 단체 관광객처럼 주도적인 여행 리더가 되지 못한 것이 늘 아쉬웠다.
특히 젊은 아들 딸이 이끄는 대로 따라다니면서 '구글 맵'이라는 것을 처음 보았는데, 방향감각이 더디고 시력이 매우 나쁜 나는 맵 사용법이 궁금했지만 익히질 못했었다. 언젠가 다시 해외에 나간다면 꼭 내 손으로 맵을 켜서 젊은이들처럼 자유여행 한번 해봐야지 하는 욕심을 숨겨두고 돌아왔던 기억이 있다.
남편과 나의 공통된 취미는 책이 있는 서점에 가는 일과 그 나라의 역사 문화 얘기를 나누는 일이다. 이번 여행길에서 함께 나간 지인들이 단체 관광을 신청했는데, 우리 부부는 개인 투어를 신청했다. 일단 아이들에게 구글 맵 사용에 대해 1차 강연을 들었다. 유심(e심)을 휴대전화로 구매 후 승인 완료까지의 과정, 구글 앱을 설치하고 주요 화면에 옮기기, 일본 사람과의 의사소통을 위해 파파고 언어 앱을 설치하고 실제로 대화를 시도해보는 연습에 이르기까지 기초적인 사항들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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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슈리성풍경 오키나와현 중심부에서 모노레일여행으로 도착한 성의 풍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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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와 '미안합니다' 정도의 일본어만 알고 있는데도, 물건을 사거나 장소를 물어보는 데 거의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특히 모노레일을 타고 슈리성까지 가는데 관광 종이지도 위의 전철역 표시와 구글 앱에서 보여주는 정거장 표시를 맞춰보면서 디지털 문명을 몸으로 체험하는 살아있는 여행이 즐거웠다. 슈리성에 대한 역사적 지식을 검색어로 확인하면서 도착한 슈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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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가사키현의 하우스텐보스 기차를 이용 자유여행으로 도착한 관광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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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러 낯선 역사에 내려 출입하며 글자를 익히기도 하고, 또 어떤 역사에서는 표를 사는데 자꾸 현금이 되돌아 나와서 이유를 물어보니 신권 대신 구권을 사용해야 한다는 안내문을 읽어주는 현지인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티켓의 QR코드를 제대로 대지 못해서 헤맬 때도 역사의 친절한 안내원 덕분에 일본말로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써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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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서점에서 하이쿠 시집 읽다 파파고를 이용하여 일본서점 청년과 한 시간 동안 시 낭독을 주고 받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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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제안해 찾아낸 현대판 하이쿠 시집 한 권을 들고서, 봄 춘(春)자와 꽃 화(花)자, 눈 설(雪) 자 등의 시어가 들어간 시를 읽어 달라는 나의 요청을 모두 들어줬던 청년의 인내심. 무려 10편이나 되는 시를 낭독해줬다. 미안하고 고맙다는 나의 말에 청년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시를 읽었다고, 일본 시집에 대해 알게 됐다고 오히려 고맙다고 했다. 아마도 요란스러운 한국 여행객 덕분에 청년이 시의 매력을 알고 낭독도 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면 좋겠다 생각했다.
이번 여행으로 나는 드디어 2차원에서 3차원으로 비상하는 여행을 했다. 타인의 깃발이 아니라 내 안의 깃발을 스스로 꺼내어 전진하는 자유로운 여행인이 됐다. 여행 체험을 지인들에게 매일 짤막한 글로서 전해주니, 진정으로 다시 태어난 환갑맞이 여행이었다고 축하해줬다.
살아가는 것은 매일 같은 모양 같아도, 흔하디 흔한 삶의 도구들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새 세상이 열린다. 또한, 새로운 문명에 자꾸만 뒤로 물러설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배워야겠다. 이 나이에 두려울 것이 무엇이랴. 그저 '하고 싶은 일은 무조건 도전해보자' 라고 나에게 용기와 격려를 넣어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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