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장기 ‘샹치’ 쑥대밭…승부조작·매수 무더기 적발

송세영 2025. 1. 29.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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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중국중앙TV 캡처


중국 장기인 ‘샹치’(象棋) 프로선수들이 축구 못지않게 심각한 비리를 저질러온 것으로 드러났다. 10년간 랭킹 1위를 지켰던 선수 등 43명이 매수와 승부조작 등으로 중징계를 받았다.

중국중앙TV(CCTV)와 신징보 등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중국 국가체육총국은 지난 12일 41명의 규율 위반자에 대한 처벌을 발표했다. 전국챔피언 출신인 자오신신, 왕양, 정웨이퉁 3명에게는 종신 출전금지와 함께 중국샹치협회가 부여한 그랜드마스터 기술등급 칭호를 취소했다. 이 밖에 34명에게는 장단기 출전 정지, 4명에게는 통보 및 비판 조치를 결정했다.

샹치협회는 지난해 9월에도 그랜드마스터 등급인 왕톈이, 왕웨페이 선수가 매수를 통해 승부를 조작한 사실을 밝혀내고 종신 출전금지 조치를 내렸다. 그랜드마스터 칭호의 취소, 협회와 그 회원사가 주최하는 모든 대회와 활동 참여 금지도 결정했다.

현지 매체 지무신원은 “출전금지를 당한 선수들의 명단을 보면 샹치계의 거의 절반이 무너진 것과 같다”면서 “매수와 승부조작이 상치계에서 공공연한 비밀임을 알 수 있다”고 짚었다. CCTV는 샹치계의 4대천왕 등 상위 20위 선수가 대부분 처벌 대상에 올랐다고 지적했다.

중국 장기 샹치의 1인자였던 왕톈이(가운데). 웨이보


발단은 2023년 4월 샹치 프로선수 왕웨페이와 하오지차오의 대화 녹음이 인터넷과 소셜미디어에 유포된 ‘녹음 게이트’였다. 이들 녹음에서 두 사람은 상대 선수 매수, 게임 소프트웨어 조작 등의 대화를 나눴고 왕톈이의 연루 사실을 여러 차례 언급했다.

왕톈이는 2014년부터 10년 연속 샹치 랭킹 1위를 차지해 ‘샹치계의 1인자’로 불린 인물이다. 열성 팬덤을 확보하고 고소득을 올리는 등 최고 스타였다. 협회가 조사에 착수한 직후인 2023년 8월 건강상 이유로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기권한다고 발표했는데 녹음 게이트 때문일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원로 샹치 선수인 류다화가 그해 10월 국가체육총국 보드게임관리센터 궈리핑 부국장이 상치계 비리에 연루됐다고 실명 고발하면서 파장이 더 커졌다. 류다화는 당시 소셜미디어에 올린 영상에서 “궈리핑이 오랫동안 샹치계 어둠의 세력을 비호하며 방임해 왔고 컴퓨터 소프트웨어와 현대 기술을 사용해 국내 각종 대형 대회의 승패와 상금 배분을 조작해왔다”고 폭로했다.

1950년생으로 여러 대회에서 우승해 상치계의 전설로 불리는 그는 이번 처벌 발표 후 양청완바오와 가진 인터뷰에서 “샹치의 미래가 걱정됐다. 새로운 세대 선수들이 바통을 이어받을 수 있도록 환경을 바꾸려고 제보했다”고 말했다. 궈리핑은 지난해 11월 면직됐다.

국가체육총국 기율검사위원회 서기인 가이홍옌은 “샹치계의 위법행위는 2012년부터 2023년까지 10년 넘게 이뤄졌고 많은 인원이 연루됐다”면서 “전국샹치선수권대회, 전국샹치남자갑급리그 등에서 승부조작이 주로 발생했다”고 밝혔다.

프로선수들의 승부조작 목적은 기술등급 승급, 상금을 위한 개인점수 획득과 등급 점수 상향이었다. 한 선수는 그랜드마스터 칭호를 얻기 위해 전국 개인전 경기에서 여러 차례 상대 선수를 매수했다. 다른 선수는 기술등급 승급을 위해 브로커를 통해 팀 동료와 상대 선수를 매수하고 전국 단체전 경기에 무임승차해 승급 자격을 얻었다. 도박사이트에서 자신이 승부를 조작한 경기에 베팅하거나 코치를 겸하며 승부조작과 매수의 중개인 역할을 자처한 선수도 있었다.

사진=CCTV 캡처


이들은 증거를 남기지 않으려고 전화 통화를 하는 대신 직접 만나 승부조작을 논의했다. 계좌추적을 피하려고 지인이나 친척의 계좌로 돈을 주고받거나 아예 경기장에서 직접 거액의 현금을 주고받았다.

20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샹치는 2008년 중국 국가급 무형유산으로 등록됐다. 정부의 전통문화 장려 정책과 인터넷 생방송 활성화에 힘입어 10여년간 급속도로 상업화가 진행됐다. 스타 선수들은 고액의 상금과 부수입을 얻고 대중적 인기를 누린다. 한국 장기와 말의 종류·개수 등은 비슷하지만, 말판과 게임규칙이 일부 다르다.

중국에서 구조적 비리가 가장 심한 종목인 축구에선 중국축구협회 회장 등 간부와 국가대표 감독, 선수들이 승부조작을 일삼고 국가대표 선발 등을 대가로 뇌물을 주고받아 무더기 형사처벌됐다. 천쉬위안 전 중국축구협회 회장은 무기징역, 리우이 전 협회 사무총장은 징역 11년, 리티에 전 중국 남자 축구 대표팀 감독은 징역 20년을 선고받았다.

베이징=송세영 특파원 sysoh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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