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때문에 설날이 이 모양... 이런 퍼포먼스 알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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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재필 기자]
1999년 2월의 설날.
손끝이 얼어붙었다. 혹한은 통증을 넘어 온몸을 마비시켰다. 부모님 댁으로 걸어가는 내 손엔 검은 봉지가 들려있었다. 봉지에 담긴 건 곶감 여섯 개짜리 두 줄. 그 가벼움은 약간의 절망감조차 견디지 못하는지 끊어질 듯 달랑거렸다. 눈물의 질량도 위태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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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7년 IMF 외환위기 당시의 언론보도 |
| ⓒ MBC |
당시 평생직장이라고 불린 은행은 3곳 중 한 곳(1998년 한해 17개 은행 폐업), 증권사는 6곳 중 한곳, 가장 급여가 높았던 종금사는 3곳 중 2곳이 망했다. 매일 수천 명에서 1만 명 가까이가 일자리를 잃었고, 1998년 한 해에만 100만 명 넘게 정리 해고됐다. 20대 실업자만 한해 50만 명이 넘었다. 대책이 없던 정부는 맞장구 치듯 기업의 인수나 합병 등 경영상의 필요성에 따라 정리해고를 허용하는 특별법 제정까지 추진했다. 이에 엄청난 구조조정과 정리해고로 실직자가 쏟아졌다.
돈줄이 마르자 부부싸움이 늘었고 급기야 이혼율도 급증했다. 노숙자 1만여 명은 길거리에 이불을 깔았다. 생필품 사재기도 판을 쳤다. 라면 진열대에는 '5개 이상 안 됨'이라는 경고팻말이 세워졌고 설탕과 밀가루는 품절됐다. 죄없는 아이들이 버려졌고, 스스로 생의 끈을 놓은 이도 많았다. 6.25전쟁 이후 최악의 위기였다. 곳곳에서 '우리나라는 끝났다'고 탄식했다. 국가가 부도위기에 처했다는 건 국제망신에 가까웠다.
내 사정도 별반 다를 게 없었다. 하루아침에 동료들이 잘려나갔고 월급이 끊겼다. 청빈하지 않으려 했으나 청빈할 수밖에 없었고, 부자가 되려는 꿈은 더 가난해졌다. 흔히들 넋두리하듯 나 또한 분유 값 타령을 하기에 이르렀다. 삶은 갑자기 컬러에서 흑백으로 넘어갔다. 그런데 세상은 자꾸 인간의 남루한 본질에 대해 물어왔다.
(기자시절이었는데) 말과 글을 경멸하며 입을 닫고 글을 썼다. 말과 글을 경멸하면서 말과 글로 먹고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 흔히들 얘기하는 밥벌이의 지겨움이 극심했다.
어느 쪽을 택할지 고민하지 않았다. 돈 되는 곳, 돈 버는 곳으로 보따리를 싸서 떠나야 했다. 의리든 양심이든 따지는 건 사치였다. 단지 먹고 살기 위해서, 갓 태어난 아이를 위해서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귀살스러운 삶이었지만 태연한 척했고, 애면글면 굴신도 했다. '오른쪽'이 반드시 '옳은 쪽'이 아니고, '왼쪽'이 항상 '외쪽'이 아니듯 물흐르듯 시류에 합승했다. 문객과 식객 사이에서 허랑한 주객은 허구한 날 급전을 변통해서 술청을 찾았다.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보다 사람으로 사는 것이 더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술이 필요할 만큼 외롭고 두려웠다. 술이 말이 되고 동무가 된다는 걸 알게 된 것도 이 무렵이다. 때때로 '술을 원수 삼아, 원수 갚듯이' 줄창 마셨다. 지옥의 나날이었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IMF 사태는 3년여 만에 막을 내렸다. 이때 국가를 살려낸 이도 '착한 국민'이었다. 350여만 명이 자발적으로 금을 모았고, 그 돈이 죽어가던 국가의 생명줄이 됐다. 국산품 애용 운동이 일어났고 외국기업에 로열티를 주지 말자면서 패밀리 레스토랑 가는 발길을 끊었다. 뿐만 아니라 애국마케팅 일환으로 태극기를 부착한 상품들이 나오고 콜라가 국산으로 출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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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눈 감은 윤석열 대통령 윤석열 대통령이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탄핵심판 4차 변론기일에 출석해 눈을 감고 있다. |
| ⓒ 사진공동취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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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달러 환율이 장중 1,480원대를 돌파한 지난해 12월 27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현황판에 원/달러 환율 등 지수들이 표시되고 있다. |
| ⓒ 연합뉴스 |
옛날 시베리아 강제수용소에서 가장 가혹했던 형벌은 벽돌 나르기였다. 하루는 산처럼 쌓인 벽돌을 반대편으로 옮기고, 다음날은 다시 그 전날 있던 쪽으로 옮기는 것을 끝없이 반복하는 형벌이다. 아무리 뼈 빠지게 일을 해도 결과가 없는 단순노동이었다. 지금이라고 사정이 나아지진 않았다. 이쪽으로 옮기고 저쪽으로 옮기고, 그냥 입에 풀칠하기 바쁘다.
지금 우리사회는 불안, 불만, 불확실이라는 소위 '삼불(三不)에 시달리고 있다. 불안하고 불확실하니까, 불만을 참고 더 열심히 일한다. 그런데도 부(富)의 약 35%는 최상위 1%가 소유한다. 결국 1%는 의욕이 넘쳐나고 99%는 무력감에 시달린다. 안 될 놈은 안 되고 될 놈만 되는 것이다.
우리는 분명 슬픈 시대에 살고 있다. 누가 이렇게 만든 것인가. 가령, 한 노인이 폐지 실은 리어카를 끌고 힘겹게 고갯길을 오르고 있다고 치자. 당신은 자신의 처지가 저 정도는 아니니까 행복한가. 아니면 언젠가는 저런 처지가 될까봐 두려운가. 이도저도 아니라면 너무 안녕해서 미안한가. 폐지, 리어카, 노인, 고갯길의 공통점은 글자 자체에 눈물이 흐른다는 것이다. 아무리 행복하게 읽으려 해도 행복보다는 불행에 가깝다. 그 슬픔의 화력은 십구공탄 연탄에 비견할 만하다. 더더욱 아린 것은 시궁창 현실을 보면서 안녕한 척 하는 민낯들이다. 세상은 민낯을 가리고 화장발로 덧칠하고 있다. 육신은 고치는데 마음의 성형이 없다.
2025년 1월의 설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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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민의힘 설인사, 항의받는 권성동 원내대표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설 연휴를 하루 앞둔 24일 오전 서울역에서 시민들에게 귀성인사를 하던 중 항의를 받고 있다 |
| ⓒ 공동취재사진 |
국민은 자신의 어려움을 잘 살펴주고 공감해 주는 지도자를 원한다.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도 형편이 나아지지 않고, 더욱 더 궁핍해진다면 국가는 신뢰를 잃게 된다. 더구나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자신의 안위를 위해 국민을 이용하는 행태는 치졸함의 끝판왕이다.
결국 민생이 해답이다. 저녁 뉴스에 등장하는 정치권 밥그릇 싸움보다 따뜻한 민생 한그릇이 더욱 절실하다. 그래서 이번 설 민심밥상은 어느 때보다도 슬프고 애틋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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