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설에도 애인, 연봉, 결혼… 정 걱정된다면 이렇게
[그린피스 신민주 캠페이너]
고백하자면 나는 명절이 좀 부담스럽다. 모처럼 길게 쉴 수 있는 빨간날을 반기지 않는다는 건 아니지만, 가끔은 내 여건이 가족들을 만나야 하는 시간을 부담스럽게 느끼도록 만든 것 같다.
서른 살이 넘었음에도 아직도 오래간만에 만난 가족들이 물어보는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지 터득하지 못했다. 번듯한 직장을 가졌는지, 연봉은 꽤 짭짤한 편인지, 애인은 있는지, 언제쯤 결혼할 것인지, 가진 돈은 얼마쯤 되는지가 질문일 때 특히 그렇다.
물론, 오래간만에 만난 가족들이 나를 의도적으로 괴롭히려고 그런 질문을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1년에 고작 두 번 만나는 어색한 사이에서 꺼낼만한 대화 주제라는 것이 그런 것들밖에 없다는 사실도 이해한다. 그러나 명절 때마다 어쩔 수 없이 내가 '표준적인 인생'이라는 경로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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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라인 커뮤니티에 게시된 설 연휴 잔소리 메뉴판 |
ⓒ 온라인 커뮤니티 |
누군가는 그 메뉴판을 보고 버르장머리 없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꽤 재미있게 봤다. 걱정을 가장한 명절 잔소리가 불편한 게 나뿐만이 아니라는 사실과, 많은 사람들이 '표준적인 인생' 경로에서 이탈해서 살아간다는 사실이 나를 위로했기 때문이다.
역시, 생각보다 표준적인 인생이라는 것은 꽤 피곤한 범주인 것이 틀림없다.
왜 실패만 궁금한가요
2025년 설날은 많은 이들에게 쉽지 않을 것이다. 눈에 띄게 경제 지표가 나빠졌기 때문이다. 국제 금융기구는 물가가 상승하고 있지만 경제 침체는 지속되는 이중적인 악화 상황, 즉 스테그플레이션을 경고했다. 증명이라도 하듯, 설날을 앞두고 물가가 상승하여 과일과 채소 값이 급등했다.
또 다른 나쁜 소식은 기후위기이다. 유럽연합(EU)의 '코페르니쿠스기후변화서비스'(C3S)에서는 2024년, 최초로 한 해 평균 지구 기온이 산업화 이전보다 1.5도를 넘었다는 사실을 알렸다. 기후 위기가 먹거리 가격의 상승, 재난의 증가, 이로 인한 경제의 위기를 만들어내기도 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기후위기가 심각해진다면 풍요로운 설날은 옛이야기로 남을지도 모른다.
표준적인 인생을 살고 싶은 사람이 실패하는 이유에는 능력과 노력만이 아닌 운과 세상의 혼란, 경제 악화 등 외부 효과도 포함된다. 때로는 외부적인 흐름이 인생의 흐름에 더 크게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마치 내가 운 나쁘게 취업 사기를 당해 백수가 된 적 있었고, 코로나 때문에 재취업에 시간이 걸렸던 것처럼.
그러나 우리가 들을 수 있는 조언의 대부분은 나의 능력과 노력에 대한 것뿐이다. 운과 세상, 경제 악화와 기후 위기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순간, 실패에 대한 핑계를 대는 구차한 사람이 되고 만다.
나는 가끔 이 괴리감이 부조리한 것처럼 느껴진다. 실패를 위해 살아가는 사람이 없을뿐더러, 따지고 보면 표준적인 삶을 충실히 살고 있는 사람이 유니콘처럼 여겨질 만큼 적은 것도 사실이다. 표준이 '표준'이라기보다는 '매우 성공한 삶'에 가까운 것이 되어버린 탓이다. 왜 성공하지 못했는지 묻는 질문 속에는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살고 싶은지, 어떤 세상을 만들고 싶은지, 좋은 삶의 구체적인 형태가 무엇이라 생각하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낄 자리도 없다.
우리는 명절에 더 나은 대화 주제를 선택할 필요가 있다. 어떤 인생을 살고 싶은지, 그 삶을 살아가는 데 혹시 도움이 필요한 부분이 있는지 등. 조금 다른 대화의 주제가 상대를 알아가는 더 좋은 방법이 될 수도, 더 나은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더 좋은 방법이 될 수도 있다.
그래도 정 걱정이 된다면, 차라리 돈으로 주는 게 낫다. 걱정을 가장한 잔소리에 돈을 달라고 주장하는 명절 잔소리 메뉴판의 취지처럼. 능력과 노력에 대한 의심으로 이어지는 조언과 걱정보다 당사자에게는 위로와 도움이 더 절실한 법이다. 역시, 걱정은 돈으로 주는 게 제일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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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 명절을 앞둔 22일 오후 각 정당과 관공서에서 제작한 새해 인사 현수막이 부산 시내 도로변 곳곳에 내걸려 있다. |
ⓒ 연합뉴스 |
그럼에도 실패하는 일은 점점 쉬운 일이 되었다. 기후위기와 경제위기와 모든 '위기'라는 말이 붙은 단어들이 늘어나며 모두가 불안정해진 탓이다. 표준적인 인생을 사는 것이 점차 어려워지는 와중에, 표준적인 인생을 사는 것이 행복을 담보하는 것도 아니게 되었다. 성공에 대한 상은 있지만, 행복에 대한 상이 뚜렷하지 않은 것이 지금 시대의 비극 중 하나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너무 오랜 시간 동안 '표준적으로 성공한 인생, 그리고 세상'이라는 모델을 만들기 위해 불필요한 비용을 너무 많이 사용해 왔다. 효율적이라는 이유만으로 사용되는 화석연료와 기후위기를 유발하는 화석연료에 지급하고 있는 각종 보조금, 장기간의 기후위기 대응보다는 탄소 배출이 많지만, 단기간의 경제 성장에 도움이 되는 곳에 돈이 투자되는 일 등.
반면 사회복지 예산은 충분히 늘지 않거나 심지어 줄어드는 경우도 있으며, 불평등은 고도로 발전된 현대 사회에도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숙제이다. 장기간의 인류와 지구 생물의 관점에 따르면, 이 모든 비용은 낭비라고 볼 수 있다. 지구를 파괴하고, 인간을 소진하는 모든 활동은 우리가 살아갈 미래를 고려할 때 현실적이지 않다.
그래서 나는 명절 가족관계를 넘어, 사회도 걱정을 돈으로 주면 좋겠다. 표준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는, 걱정을 가장한 핀잔 대신 살고 싶은 삶을 살 수 있는 보조를 해주는 사회가 더 마음에 든다. 이왕이면 각자가 좋은 삶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결정할 수 있는 방식이면 더 좋을 것 같다.
그 좋은 삶이 지구와 인간이 아닌 모든 생명체와 함께 할 수 있는 일이면 더욱 좋겠다. 화석연료 보조금을 폐지하거나 탄소세를 걷어 마련된 재원을 모두에게 기본소득으로 나누어주거나, 환경과 복지를 증진할 방안에 더 많은 예산을 투여하는 것도 방법이다. 성공을 위해서 다른 가치를 포기해도 된다는 믿음만 우리가 버린다면, 우리는 좋은 삶을 만드는 방식으로 돈을 쓸 수도 있다.
이번 명절에는 고군분투하는 가족에게 잔소리로 부담을 주는 것보다 사회적으로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였으면 좋겠다. 모두가 표준적인 인생 경로를 살아갈 필요는 없지만, 모두가 자신이 생각한 선을 실천하고 좋은 삶을 누릴 수 있는 2025년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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