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껴안는 사람 목격해도 당황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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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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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 가족의 단골 숲, 강릉 해안 솔숲 |
| ⓒ 이준수 |
"큰 소나무 있죠? 가서 양팔로 안아보시겠어요?"
직장 단체 연수로 강릉 치유의 숲에 갔을 때였다. 우리를 인솔하던 강사가 수령 백 살을 넘긴 소나무를 직접 안아보라고 했다. 한아름에 들어오지 않는 거대한 나무였다.
"귀를 대 보세요? 뭐가 들리시나요?"
귀를 나무껍질에 바싹 들이댔다. 그러나 내 심장소리만 쿵쿵 울릴 뿐 나무로부터 비롯된 소리를 감지할 수 없었다.
"청진기를 대면 나무 안에서 물과 영양분이 이동하는 소리가 아주 미세하게 들려와요. 여름이면 더 잘 들리고요. 어린이들은 청각이 예민해서 잘 듣는 답니다."
나무 소리 듣기는 실패로 끝났지만 나무를 껴안았을 때 내 안에서 뭔가 새로운 감각이 살아났다. 사랑하는 가족이나 신뢰하는 친구를 안을 때 느껴지는 안심, 편안함 같은 기분 좋은 감정. 이게 뭘까? 상당히 괜찮은 느낌이었다.
나무를 껴안았을 때
너무 신기한 느낌의 정체를 알고 싶어 찾아보았다. 일단 나무 껴안기를 비롯한 나무 소리 듣기, 숲 거닐기는 '숲 치유'나 '생태치유' 활동에서 매우 보편적인 활동이었다. 왜 이런 활동을 하는가 하니, 나무들이 사는 곳에서는 피톤치드가 나와 스트레스를 줄이고 심박수를 안정시키는 효과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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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양 남대천에 살고 있는 거대한 나무 |
| ⓒ 이준수 |
나도 사회적 눈치라는 것이 있으므로 무턱대고 나무를 안지는 않는다. 아저씨라서 유리한 점이 있다면 아내 그리고 귀여운 두 자녀와 같이 산책을 나설 수 있다는 점이다. 아이들이 나무를 안고 있을 때 옆에서 같이 끼어서 나무를 안고 있으면 '흠, 저 남자는 자녀 생태 교육 같은 걸 하고 있군' 하는 일종의 '정상 참작'의 여지가 발생한다.
얼마 전에는 온 가족이 양양 남대천 공원을 찾았다. 강을 끼고 양 옆으로 넓은 공터가 펼쳐져 있다. 어르신들은 파크 골프를 즐기고, 어린이는 신식으로 설립된 두 군데의 놀이터에서 여가를 만끽하는 곳이다. 나와 아내는 놀이터 뒤편에 살고 있는 거대한 나무를 좋아한다. 얼마나 큰지 높이는 건물 4층을 아우르고 둘레는 대관령 소나무 못지않다.
이 나무들은 지역 주민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날씨가 추운 계절이면 거의 항상 뜨개 작품으로 된 덮개가 둘러져 있다. 매우 아름다운 패턴과 색으로 꼼꼼히 만들어진 덮개다. 일시적으로 축제 장식을 위해 설치된 작품은 결코 아니다. 덮개 모양새는 물론이거니와 섬유 보존 상태도 훌륭한 것으로 보아 누군가가 의지를 가지고 관리하고 있었다.
과연 그럴만한 나무이기는 했다. 지역 중심지에 이렇게 근사한 수형을 갖춘 나무는 드물다. 우리 가족은 신묘한 기운에 이끌린 것처럼 나무 곁에 다가가곤 했다. 나무 곁을 맴돌다가 아내가 먼저 제안했다.
"우리 나무 안아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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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릉 송정 해안 솔숲의 소나무는 초등학생의 품으로도 너끈히 안을 수 있다. |
| ⓒ 이준수 |
요즘은 우리 집 아이들도 가끔 나무를 안는다. '이 녀석 튼튼하게 자라라' 이런 말도 건넨다. 실은 자기들보다 나무 나이가 더 많을 텐데 아랑곳 않는다. 아이들도 우리처럼 나무를 좋아하는 것 같았다.
해안 숲길에는 맨발 걷기 하시는 분들이 많다. 요즘은 날씨가 추운 시기라 맨발을 찾아보기 힘들지만, 약간만 날씨가 풀려도 바짓단을 걷어붙인 어르신을 찾아볼 수 있다.
나무를 껴안으면 맨발 걷기와 비슷하게 '자연과의 접촉, 교감' 효과를 누릴 수 있다. 맨손으로 나무를 만지면 고유감각이 향상된다. 단순히 눈으로 보는 것과 촉감으로 느끼는 것은 다르다. 적극적으로 숲을 사랑하는 방식이라고나 할까.
건강을 지키기 위해, 기분을 전환하기 위해 공원과 숲을 걷는 분들께서 '나무 껴안기'에 도전해 보셨으면 좋겠다. 쑥스럽고 어색할 수도 있겠지만 한 번 해보면 신기한 기분이 든다. 주변에 아무도 없을 때 십 초만 얼른 안고 나와도 괜찮다.
나무는 우리의 부끄럽고 모자란 구석도 아무렇지 않게 받아주는 존재다. 조용히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묵묵히 공감해 주는 멋진 친구이기도 하다. 나무를 껴안는다고 썼지만 실은 나무가 우리를 껴안아 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불쑥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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