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왕' 일당에 감형·무죄 확정, 전세사기 피해 외면한 대법원
[김태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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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중 처벌을 촉구했지만...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피해 대책위가 23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인천 전세사기 건축왕' 남모씨에 대한 대법원 선고 결과와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대법원은 이날 사기 등 혐의로 기소된 남모씨에게 징역 7년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하고 같은 혐의로 기소된 공인중개사와 중개보조원 등 공범 9명에게도 무죄나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한 2심 판결을 확정했다. |
ⓒ 연합뉴스 |
이번 판결은 전국의 다른 전세사기 판결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데요. 법원이 이렇게 전세사기를 방치해도 되는 걸까요? 전세사기 피해 가족들이 땅을 차고 다시 뛰어오르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김태근 변호사가 비평했습니다.
대법원 노경필(재판장), 노태악, 서경환(주심), 신숙희 대법관 2025.1.23. 선고 2024도15455
사건의 개요
미추홀구 전세사기는 이른바 건축왕으로부터 불리었던 남아무개씨가 2700여 세대 피해임대주택의 실질적인 건축주이자 소유자였고, 위 주택의 명의만 그 휘하 직원들로 소유권 등기를 해놓고 그 직원들이 공인중개사 및 주택의 관리업체까지 모두 장악하고 있었다. 위 주택의 세입자로 입주하기 위해서는 건축왕의 직원이었던 공인중개사의 중개가 필수적이었고, 그로 인해 건축왕은 본인이 소유하던 주택의 전세금에 대한 시세 조종이 가능한 상황이었다. 인천지방검찰청은 이로 인한 전세사기피해자들 중 2021년 3월을 사기의 개시 시점으로 판단하여, 2023. 6. 27.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총 665세대, 전세금 536억 원(계속 추가 중)의 피해금액에 대해 남아무개씨 등을 사기 등 혐의로 기소를 하였다.
이른바 미추홀구 건축왕 전세사기는 1명의 건물주 지휘 아래 바지 임대인과 공인중개사가 서로 역할을 바꿔가면서 전세사기 피해자와 전세 계약을 체결한 사건이다. 보통 사람들은 이런 얘기를 들으면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면, ▲ 수십 채 건물의 건물주가 1명인데, 그분은 대략 2700여 채의 주택을 소유하고 있다. ▲ 다만 A라는 주택에는 또 다른 1번이 바지 임대인 역할을, 2번이 공인중개사 역할을 수행하고, ▲ B라는 주택에는 2번이 바지 임대인 역할을, 1번이 공인중개사 역할을 수행하면서, ▲ 후순위 전세계약을 체결한다.
세입자가 1순위가 아니라서 걱정스럽다고 하면, 임대인이 부자라서 아무런 걱정이 없으니, 걱정하지 말고 임대차 계약을 체결하라고 공인중개사가 설명한다. 그런데 실체적인 진실을 알고 보니, 건물주의 직원인 1번과 2번이 서로 역할을 바꿔가며 1명의 건물주를 위해 일을 하였다는 것이 미추홀구 건축왕 전세사기 사건의 요지이다. 이런 공인중개사가 최소 8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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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물 흘리는 전세사기 피해자들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피해자들이 23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인천 전세사기 건축왕' 남모씨에 대한 대법원 선고 결과와 관련해 기자회견을 마친 뒤 눈물을 흘리고 있다. 대법원은 이날 사기 등 혐의로 기소된 남모씨에게 징역 7년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하고 같은 혐의로 기소된 공인중개사와 중개보조원 등 공범 9명에게도 무죄나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한 2심 판결을 확정했다. |
ⓒ 연합뉴스 |
2025년 1월 23일 미추홀구 전세사기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선고되었다. 상고 기각 판결(대법원 2024도15455), 이로써 바지임대인과 공인중개사가 공모한 전세사기의 판이 열렸다.
이와 관련하여 항소심 재판부는 공인중개사가 직접 임대인이 아니었다는 이유로 공인중개사법 위반죄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였다. 그러나 이미 이러한 공인중개사의 행위가 불법이라는 데 모든 국민들이 공감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은 상고기각 판결을 선고하여 항소심의 무죄 판결을 확정하였다.
항소심 판결이 확정된 이상, 사실상 바지 임대인과 공인중개사가 서로 역할을 바꿔가면서, 전세사기를 벌일 수 있는 판이 열렸다. 사실상 경제적 이익 공동체인 바지 임대인과 공인중개사의 거래 행위에 대해 공인중개사법 위반죄로 처벌하지 않는다면, 전세사기를 막을 방법은 없다.
이렇게 바지 임대인과 공인중개사가 서로 역할을 바꿔가며 전세사기를 벌인 곳이 미추홀구 말고도 전국적으로 많다. 미추홀구 항소심 판결이 확정된 이상, 다른 지역의 형사 사건에도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기소되지 않은 이상 법원은 판단하지 않는다는 불고불리의 원칙이라는 게 있지만, 법원이 전세사기를 이렇게 방치해도 될까?
공인중개사법 위반죄에 대한 상고 기각 사유는 2005년 대법원 판결(대법원 2005. 10. 14. 선고 2005도4494 판결)을 근거로 '직접거래'란 중개인이 중개의뢰인으로부터 의뢰받은 임대차 계약 직접 상대방이 되는 경우를 의미한다고 좁게 판단하였는데, 이에 따르면 공인중개사가 직접 임대인이 된 경우에만 공인중개사법위반죄로 처벌할 수 있을 뿐, 미추홀구 전세사기 사건과 같이 바지 임대인과 공인중개사가 서로 역할을 바꿔가면서 임대차 계약을 체결한 경우에는 공인중개사법 위반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바지 임대인과 공인중개사들이 공모한 전세사기는 언제 터져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판결이다.
"해당 중개대상물의 거래상의 중요사항에 관하여 거짓된 언행 그 밖의 방법으로 중개의뢰인의 판단을 그르치게 하는 행위" - 공인중개사법 제33조 제1항 4호 |
전세사기 피해자들 대법 판결에 좌절 말고, 땅을 치고 뛰어오르길...
한국의 부동산 시장에 전세사기 판을 열어준 대법원의 공인중개사법 위반 무죄 확정 판결에 대해 국민들이, 전세사기 피해 가족들이 한탄을 할 것이다. 전세사기 피해 가족들은 항소심 판결과 대법원 판결을 보면서, 법원의 판사들은 우리와는 다른 성에 사는 것처럼 느끼고 있다. 한국의 최고법원인 대법원에서 국민들의 상식과 동떨어져 전세사기의 문을 열면 어쩌자는 것인가? 전세사기 피해 가족들에게 법률가로서 드릴 말씀이 없다.
마지막으로 전세사기라는 유례없는 사회적 재난을 시민들의 연대와 협력으로 이겨낸 미추홀구 전세사기 대책위와 전국 전세사기 대책위 여러분들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지난 2년이 넘는 기간 동안 전세사기 대책위가 합심하여 노력하신 덕분에 전세사기로 인한 희생자가 더 이상 늘지 않도록 막아낼 수 있었다. 정부와 법원의 공무원이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전세사기 대책위가 사회적 연대를 통해 수많은 생명을 구한 것은 한국 시민사회의 역사적인 모범으로 기억될 것이다. 한편으로는 한국 사회에서 국가가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시민들이,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연대하여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는 현실이 참으로 마음이 아프다.
미추홀구의 전세사기 피해 가족들이 전세사기를 막기 위해 아무 일도 하지 않은 대법원 상고 기각판결에 좌절하지 말고, 땅을 치고 다시 뛰어 오르기를 기대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참여연대 홈페이지와 슬로우뉴스에도 실립니다. 이 글의 필자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민생경제위원회, 세입자114 운영위원장 김태근 변호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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