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얼빈'에서 안중근 보다 눈에 들어온 한 사람
[김성호 평론가]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 <하얼빈>을 보았다. 주위의 평이 좋지 않았지만, 역사와 독립운동사에 관심이 있는 이로서 어떻게 이 영화를 무시할 수 있을까. 차마 끝까지 외면하지 못하여서 나는 <하얼빈>이 극장에서 내려가기 전에 봤다.
영화는 실망스러웠다. 지난 '씨네만세'에서 적었 듯 인물에 대한 해석, 그러니까 안중근이 다른 이들과 차별화되는 지점을 극적이고 흔한 무엇으로 뭉뚱그린 선택이 대표적이었다. 가톨릭 신자이자 유학자였던 이, 그로부터 얻은 사상과 지식이 남다른 선택으로 이어졌다는 것을 이 영화는 철저하게 외면한다. (관련기사: 안중근 업적만 남긴 '하얼빈'의 선택이 아쉽다 https://omn.kr/2byq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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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얼빈 포스터 |
ⓒ CJ ENM |
사람들은 흔히 독립운동가가 모두 같은 뜻을 지니고 있다고 믿는다. 그들 사이에 존재했고 또 그럴 밖에 없었던 계보와 파벌, 분파들에 대해 알려 하지 않고 알 필요도 없다고 믿는다. 하지만 어찌 그것이 정답일까.
나라를 잃고 나라 바깥에서 나라를 찾으려 한 이들이 있었다. 어느 큰 무리는 중국 상해에 모였고, 또 다른 큰 무리가 러시아 연해주에 집결했다. 그럴 밖에 없는 일이었다. 나라를 되찾으려 나라 밖에 둥지를 틀자면 적합한 곳이 몇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쪽 상해는 뱃길로 가야 했다. 북쪽 연해주는 육로로 강을 건너갔다. 자연히 모인 이들의 출신지도 다를 밖에 없었다. 초기 출신성분으로 보자면 상해 쪽은 조선에서도 어느 정도 신분이 있는 이들이 주를 이루었고, 연해주 쪽은 맨주먹으로 건너와 터를 잡은 이가 다수를 이뤘다.
지금도 수천 리 먼 거리다. 당시는 오죽했을까. 서로 다른 곳에 터를 잡은 이들 사이에 유기적 교류가 있을 리 만무했다. 역사는 아름답지만은 않다. 상해파가 훗날 임시정부를 이루고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획득한 반면, 저기 러시아에 터 잡은 이들은 뿔뿔이 흩어진다. 그건 상해에 있던 이들이 더 대단해서가 아니다. 제정 러시아가 소비에트 연방으로 뒤바뀐 사건이 모든 것을 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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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얼빈 스틸컷 |
ⓒ CJ ENM |
한국 역사 의무교육에서 배제된 최재형의 존재가 이 영화 <하얼빈>에 등장한다. 교과서는 물론이고 관련 영화는 물론, 독립운동을 다룬 여러 작품들에서 조연으로도 얼마 등장하지 않는 그가 <하얼빈>에선 인상적인 조역으로 나온다. 유재명이 연기한 최재형은 영화 속에서 안중근을 비롯한 연해주 독립운동가들의 뒷배이자 일대 언론사를 이끄는 사주로서 끝까지 활약한다. 안중근의 작전에 필요한 재정적, 인적 뒷받침을 그가 해내고, 하얼빈에서 믿을 만한 이들을 소개까지 한다.
나는 최재형의 존재를 단편적으로나마 다루었다는 사실이 이 영화 <하얼빈>이 이룬 미덕이라 여긴다. 그러나 작품을 다룬 어떤 글에서도 그를 조명하지 않기에 이 글을 따로 써낸다.
영화 속 최재형은 어떠했나. 영화는 얼어붙은 강을 홀로 건너는 안중근(현빈 분)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이어 화면은 어느 공간 안에 모인 십 수명의 사내들의 모습으로 옮겨간다. 이들은 일대 독립운동가로, 안중근이 살아 돌아올 수 있느냐는 화제에 올린다. 안중근이 포로로 잡은 적을 풀어주어 동료 여럿을 잃은 모양으로, 아직 안중근은 실종된 상태라는 것이다. 그가 살아와도 반기지 않을 이가 여럿이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거센소리도 일어난다. 안중근을 은근히 챙기는 이가 두어 명에 불과한데, 개중에 최재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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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얼빈 스틸컷 |
ⓒ CJ ENM |
안중근은 흔히 대한의군 참모중장 자격으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했다고 이야기된다. 대한의군은 나라 밖 의병들의 모든 군대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설립자는 홍범도이고, 러시아 계열 독립운동가들의 의병 부대다. 최재형이 설립해 안중근에게 총대장 아래 주요한 직책인 참모중장을 맡긴 부대 연추의병은 대한의군의 일군으로 활동한다.
홍범도는 최재형과 함께 러시아계 독립운동가들의 거두인데, 지역 한인들의 결집체인 권업회 또한 회장이 최재형, 부회장이 홍범도였다는 데서 단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말하자면 영화 속 독립운동가들은 그저 독립운동가로 뭉뚱그려 불러선 안 된다. 그들은 러시아를 기반으로 활동한 의병부대 대한의군인 것이다. 영화가 의도적으로 그를 거의 언급하려 들지 않고 있지만 말이다.
영화 속 최재형은 사실상 제가 주도해 만든 대한의군 장병들 사이에서 권위를 내세우지 않는 리더십을 보인다. 실제 역사에서와 같이 안중근의 실패를 책잡지 않고 그에게 다음 기회를 허한다. 실제 역사에선 안중근을 제가 운영하는 언론사에 채용해 대기토록 하다 하얼빈 거사를 준비하는데, 영화는 곧장 거사로 이어지는 게 차이일 뿐이다. 영화엔 나오지 않지만 검거된 안중근이 재판에서 제 상관으로 조선팔도 독립운동을 주관하는 인물이라 말한 김두성이 최재형이란 건 설득력 있는 해석이다. 최재형이 제 처인 최 엘레나 페트로브나를 통해 안중근 사후 그 유족들을 챙긴 것 또한 유명한 일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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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얼빈 스틸컷 |
ⓒ CJ ENM |
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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