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키세스' 짤 주인공은 이대남...그가 전한 뒷이야기

복건우 2025. 1. 22.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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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계엄날 국회·남태령 대첩·관저집회 달려간 천승훈 비서관 "평범한 사람들이 민주주의 지켰다"

[복건우, 남소연 기자]

 지난 1월 초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 시위에서 눈보라 속 은박 담요를 두른 한 시민을 그린 그림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화제가 됐다.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응원합니다'라는 글귀가 적힌 이 그림은 만화가 이정헌씨가 그린 것이며 그림 속 인물은 정혜경 진보당 의원실에서 일하는 천승훈 비서관이다.
ⓒ 이정헌 만화가 페이스북
"수많은 평범함이 모여서 민주주의를 지켰구나."

수많은 '그날'이 있었다. 12.3 비상계엄 당일 국회 앞으로 달려간 그날, 경찰에 가로막힌 농민을 도우러 남태령 고개를 넘은 그날, 대통령 탄핵을 촉구하며 농성한 그날.

민주주의가 무너질 뻔한 12월을 지키기 위해 시민들은 거리로 나섰다. 그중엔 은박 담요를 뒤집어쓰고 한남동 관저를 찾은 '키세스 시위대'도 있었다. 눈보라 속 밤을 지새우던 한 시민의 모습이 초콜릿 브랜드 '키세스'를 닮아 만들어진 '짤'이 돌면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달궜다.

이 '짤'의 주인공은 천승훈씨(29). 소위 '이대남'으로 분류되는 20대 남성인 동시에 정혜경 진보당 의원실 수행비서관이기도 한 그는 계엄군 대치와 남태령 대첩, 키세스 시위를 모두 경험한 청년이었다. 천씨는 17일 <오마이뉴스> 대면 인터뷰에서 이 일련의 과정이 "평범한 사람들의 힘"을 가르쳐주었다고 말했다.

"우리는 역사책으로 5·18민주화운동과 부마항쟁 등을 공부했잖아요. '만약 나라면 그 상황에 광장으로 나갈 수 있을까', '못 나갈 것 같은데' 이런 고민들을 했었는데, 막상 비상계엄이 선포되니까 저도 모르게 군인들과 대치를 하고 있더라고요. 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이 역사를 바꿔왔겠구나..."

천씨는 지난달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시위대 앞 경찰 차벽을 시민들이 열었던 '남태령 대첩'에서 "박근혜 탄핵 촛불 이후로 이토록 인상 깊은 연대는 처음이었다"라고 떠올렸다. 또 관저 앞 밤샘 집회에서 "민주노총 조합원과 장애인·성소수자들이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현장이 마치 아고라 광장 같았다"라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 구속영장이 발부되고 지지자들의 서울서부지법 난동 사태로 내란 정국이 지속되는 가운데 우리 사회는 앞으로 어떤 이들과 어떤 변화를 준비해나가야 할까. 천씨는 "노동자",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을 일일이 언급하며 이처럼 "평범한 사람들"을 고르게 대변하는 사회로의 변화를 거듭 강조했다.

윤 대통령 체포로 한 차례 미뤄진 천씨와의 인터뷰는 17일 오후 국회에서 1시간 동안 진행됐다. 의원회관 5층에 위치한 정혜경 의원실에서 그를 만났다.

"나라면 5.18 광장에 있었을까, 막상 계엄 되니..."
 인간 키세스 짤 주인공 진보당 정혜경 의원실 천승훈 비서관이 1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짐을 챙기고 있다.
ⓒ 남소연
 정혜경 국회의원(오른쪽)이 5일 아침 눈이 내리는 속에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에서 윤석열 대통령 체포 촉구 행동에 참여하고 있다. 사진에서 정 의원 왼쪽에 있는 이가 천승훈 비서관이다.
ⓒ 정혜경의원실
- 관저 앞 시위에서 찍힌 '인간 키세스' 짤이 화제가 됐어요.

"좀 부끄러워요(웃음). 2박3일 동안 관저 앞에서 밤을 새고 그때가 아침 7~8시쯤이었어요. 눈이 점점 많이 내리는 상황이었는데 체력적으로 피곤했는지 잠깐 졸다가 찍힌 사진이에요. 제 앞에서 정혜경 의원님이 해맑게 웃고 계셔서 '빛' 같은 느낌이었다면 저는 옷 색깔도 그렇고 '그림자' 같은 느낌이었는데, 그 모습이 대비를 이루면서 사진이 유명해지지 않았나 싶어요." (관련 기사: '키세스 밤샘집회' 함께한 국회의원 "관저 집결 국힘 의원, 다 사퇴해야")

- 당시 현장 분위기는 어땠나요.

"모두가 평화롭게 자기 이야기를 쭉 이어서 하는, 아고라(광장)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처음엔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나중엔 장애인·성소수자들이 서로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연대하는 분위기였어요. 의료진들은 돌아다니면서 '몸 불편한 사람 없냐' 물어봐 주시고, 시위에 참여하지 못한 시민들은 난방 버스를 대여하고 음식을 배달로 보내주시기도 했어요. 중간중간 케이팝에 맞춰 춤을 추니까 축제 뒤풀이 같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 특히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나요.

"시민분들이 자유 발언을 많이 신청하셨어요. 밤부터 이어진 대기 줄이 아침이 돼도 50명 가까이 늘어져 있었어요. 그중에서 장애인 시위를 하시는 분들의 이야기를 이번에 제대로 들을 수 있었어요. 매일 아침 혜화역 승강장에서 집회를 하는데 서울교통공사가 '불법 집회'라면서 그분들을 막 끌어낸다는 거예요. 정책을 기획하는 국회 보좌진의 입장에서도 그런 현장의 이야기를 들으니 '앞으로 할 일이 많겠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 비서관으로 일하고 계시는데, 그러면 12.3 비상계엄 당일엔 국회로 가셨나요.

"그날 퇴근하고 집에서 씻고 나오니 비상계엄 선포 영상이 떴어요. 실감이 안 났어요.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었고요. 의원실에서 '국회로 모여야 한다'는 얘기가 나와서 저도 국회로 갔는데 경찰들이 출입문을 막고 있었어요. 담을 타넘고 본청으로 들어갔는데 조금 지나니까 전투 헬기에서 군인들이 내리더라고요. 보좌진들끼리 얘기했어요. '군인들을 막아야 한다.'"

- 계엄군과 맞서 싸우신 건가요.

"저는 본청 밖에서 군인들과 몸싸움을 벌였어요. 본청 정문 안쪽에선 보좌진들이 의자 같은 집기류로 바리케이드를 쳤고, 밖에선 군인들과 대치하는 상황이 2시간 가까이 이어졌어요. 군인들은 제 손을 잡아서 비틀려고 했고 다른 비서관들은 머리를 맞았는지 이마 부분이 찢어져 있었어요. 그들이 총으로 우리를 쏠 수도 있었단 생각이 드니까 조금 무섭더라고요."

- 여러 감정이 들었을 것 같은데요.

"우리는 5.18민주화운동과 부마항쟁을 역사책에서 보고 거기에 나오는 열사들의 이야기를 공부했잖아요. '만약 나라면 그 상황에서 광장으로 나갈 수 있을까', '못 나갈 것 같은데' 이런 고민들을 했었어요. 그런데 막상 계엄이 선포되니까 저도 모르게 군인들과 대치를 하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생각했어요. 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역사의 현장에 모여서 역사를 바꿨겠구나, 대단한 한 사람의 결심보다는 수많은 평범함이 모여서 민주주의를 지켜왔겠구나."

- 비상계엄을 겪으면서 새로 깨닫게 된 사실이군요.

"물론 윤 대통령이 관저에 남아있으면 계엄이 또 발생할 수 있겠다는 우려도 있었어요. 그래서 '민주주의를 지키려면 내란의 우두머리를 끌어내야 한다', '보좌진이기 이전에 한 명의 시민으로서 광장에 꼭 나가야겠다' 생각했어요."

"탄핵 반대 일부 남성, 가짜뉴스 무비판 수용"
 인간 키세스 짤 주인공 진보당 정혜경 의원실 천승훈 비서관이 1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 하고 있다.
ⓒ 남소연
천씨도 그 '평범한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대학에서 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일제 강제동원 등 역사 문제에 관심을 가졌다. 제조업 회사에서 일하다가 우연한 계기로 지난해 정혜경 의원실에 들어오게 됐다. 직업 정치인을 꿈꾸지는 않는다. "평범한 사람들이 잘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으로 비서관이 된 지 햇수로 어느덧 2년째다.

- 비상계엄 당시 경험이 광장으로 나가는 계기가 됐다면, '남태령 대첩'에도 참여하셨나요.

"그날 의원님과 지역 일정을 갔었는데, 시민들이 (경찰에 가로막힌 농민들과 함께) 밤새 남태령을 지키는 걸 보고 저도 다음 날 아침 일찍 남태령으로 갔어요. 경찰들은 전농 집회라면 늘 그렇듯 농민들을 봉쇄하고 연행하려고 하는데 이번엔 시민들이 농민들을 지키면서 관저 인근인 한강진역까지 행진할 수 있었어요. 박근혜 탄핵 촛불 이후로 이렇게 인상 깊고 '뭔가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 연대는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 한 달 넘게 집회에 함께하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대목은 뭐였나요.

"시민들이 엑스(옛 트위터)에서 한화오션 하청노동자들의 농성 소식을 접하고 연대하러 간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윤석열 탄핵'이라는 하나의 의제만이 아니라 윤석열 정권에서 억압받았던 모든 문제들을 함께 이야기하고자 하더라고요. 그게 많은 분들이 바라는 진정한 민주주의 사회의 모습이라고 생각했어요."

- 지금 탄핵 광장에서 여성·성소수자·장애인 등 시민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과 대조적으로 2030 남성들이 광장에 잘 보이지 않는 이유는 뭘까요.

"2030 여성들의 경우 데이트폭력이든 성차별이든 그런 핍박의 경험들이 집회에 나가는 동력이 됐을 수도 있고, 콘서트를 보려고 밤새 줄을 서는 등 아이돌 응원 문화에 익숙한 점도 작용했을 것 같아요. 그런데 2030 남성들은 함께 이야기할 만한 통일된 의제가 별로 없고, 탄핵안이 가결된 이후로는 집회에 나가야겠다는 동력도 크지 않은 것 같아요.

관저 집회 때도 보면 탄핵에 반대하는 사람들 중엔 남성이 더 많았던 것 같아요. 얼마 전 (극우 유튜버의) 한 영상을 봤는데 '중국의 소행이다', '공산화가 된다' 같은 가짜뉴스와 함께 부정선거 음모론을 부각시켜서 계엄의 정당성을 주장하더라고요. 이걸 비판적으로 보지 않고 그대로 믿는 사람들이 탄핵 반대 집회에 나가겠구나 싶었어요."
 인간 키세스 짤 주인공 진보당 정혜경 의원실 천승훈 비서관(왼쪽)이 1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정 의원과 대화하고 있다.
ⓒ 남소연
- 비서관으로 일하지 않았더라면 12월 한 달을 어떻게 보냈을 것 같나요.

"마찬가지로 집회에 참가했을 것 같아요. '키세스 시위' 때처럼 밤을 새지는 못하더라도, 시민들과 호흡하며 함께하고 싶은 마음은 계속 들었을 것 같아요."

- 탄핵 이후는 어떤 사회여야 할까요.

"평범한 사람들이 잘 살 수 있는 사회였으면 해요. 여성들과 성소수자들,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받지 못하는 분들, 비장애인과 같은 환경에서 살지 못하는 장애인분들이 많이 계시잖아요. 생산 위주의 노동을 할 수 없어서 설 자리가 없는 중증장애인분들도 계시고요. 그분들과 우리가 함께 이야기하면서 더 나은 사회를 모색할 수 있는 사회였으면 좋겠단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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