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재호 칼럼]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들

윤석열 대통령 구속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 이후 모든 우파 대통령이 구속되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검찰 수사 중 자살을 선택했고 문재인 전 대통령도 뇌물 수수 혐의 피의자로 검찰이 지목하고 있다.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 아들들도 모두 구속 수감되었다. 민주화 이후 열렬한 지지로 대통령이 된 이들이 왜 이처럼 일그러진 모습을 보이는가?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오랜만에 다시 꺼내 읽었다. 군사독재 시절 묵종하던 시민들과 정치지도자들의 모습을 은유적으로 표현해 1987년 이상문학상 대상을 받은 작품이다. 아이들의 절대적 지지로 담임 선생님을 대리하여 반을 통솔하는 반장 엄석대 이야기이다. 싸움도 잘하고 성적도 최우수인 엄석대는 아무도 도전할 수 없는 절대 권위를 가진 영웅이다. 하지만 영웅의 실체는 서울에서 전학 온 한병태에 의해 비리가 하나하나 밝혀지고 마침내 그의 일그러진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나게 된다. 학교를 떠난 엄석대를 잊고 지내다, 이십여 년 후 가족여행 길에서 형사들에게 체포되어 끌려가는 그의 모습을 보게 된 주인공 한병태의 씁쓸한 마지막 장면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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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 구속의 반복과 정치의 몰락
반민주적 양당 구조와 사당화 폐해
정치 개혁의 민주화 투쟁 시작해야
국익 위해 정치 원로부터 앞장서길
」
엄석대가 체포될 때 자신은 죄가 없다고 형사들에게 고함치듯이 우리의 영웅들도 거칠게 항변하지만 사법당국은 왜 그들을 구속하고 마는가? 왜 이들은 정의의 심판이라고 법을 내세우다가도 자신에게 화살이 돌아오면 사법정의와 법체계가 무너졌다고 주장하는가?
87년 민주화 헌법이 한계에 도달했다. 탄핵 판결이 되면 대선 전에 개헌이 이루어져야 한다. 단임의 제왕적 대통령제가 문제라고 한다. 과연 제왕적 대통령만 문제이고 4년 연임 개헌만 되면 우리들은 일그러진 영웅을 보지 않게 될까?
정치학 석학 최장집 교수는 2002년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에서 정치엘리트들의 이해관계가 카르텔화되어 있는 구조에서 대통령 권력을 무력화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했다. 그는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은 독점적 양당체제 해체로부터 시작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정당은 의회민주주의의 핵심요소이다. 정당은 나라를 이끌어갈 이념과 가치를 공유하며 이를 호소하여 지지를 이끌어내는 대의민주주의 시스템의 근간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정당 공천에 의해 우리가 원하는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선출하고 그들은 우리를 대리하여 국정을 운영할 것을 기대한다. 하지만 정당이 사당화(私黨化)되고 국가 이익보다 집단 이익을 우선할 때 대의민주주의가 실현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최 교수가 앞의 책에서 인용한 미국 정치학자 로위(T. Lowi)의 비판적 글, “현재와 같은 미국의 양당 구도는 일종의 반민주적 범죄와 같다”는 바로 오늘 우리에게 해당하는 경구이다.
정당의 이념이나 강령보다 당 대표나 대통령을 비호하는 것이 우선시되는 현실. 당 대표가 좌우하는 공천권은 국익이나 이념을 뛰어넘어 국회의원의 재선에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박근혜 정부의 친박, 비박 논란, 윤석열 정부의 친윤, 비윤, 그리고 당 대표 선출의 영향력 행사 등은 정당의 공천권을 둘러싼 막강한 권력투쟁에 다름 아니다. 이재명 대표가 세 번에 걸친 후보 교체 끝에 대통령 후보 경쟁자였던 박용진 전 의원의 공천을 박탈하여 친명횡재, 비명횡사라는 비판까지 듣게 된 것은 당권의 힘을 확실하게 보여준 결정체였다. 여야 모두 공정하고 합리적인 경쟁의 결과라고 포장하지만 공천 시스템 자체가 당권의 영향력에서 자유롭다고 믿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미국에서 미국인 변호사와 주고받은 농담이다. 각 주별로 선거인단을 독식하는 대통령 선거제도라면 스윙보트를 쥐고 있는 7개 주만 선거를 하면 되지 캘리포니아나 텍사스 같은 주에서는 왜 선거를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더니 절대 동감이라고 했다. 우리도 영남, 호남뿐 아니라 서울 강남, 강북에서는 양당의 공천이 선거결과를 대변하는데 그 지역 선거는 왜 하는지 모르겠다.
개헌을 통해 대통령제 권력구조를 개편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당의 공천제도와 소선거구제의 개편이 더 중요하다. 대통령과 당 대표의 눈치를 살피며 당론만 따르는 국회의원들을 우리는 과연 독립적인 헌법기관이라고 불러줄 수 있는가? 정당 공천을 없애고 중대선거구제와 독일식 비례대표제를 시행해야만 제대로 된 헌법기관 국회의원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권력 쟁취를 위해 복수극을 펼치고 검투사를 대표로 내세워 싸우는 양당 정치에 국민들이 더 이상 희생양이 되어서는 안 된다. 수신(修身), 제가(齊家)도 안 된 사람들이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의 정치를 하겠다고 나서는 웃기지도 않은 슬픈 현실을 벗어나야 한다. 이제 헌정회 여야 원로 정치인들부터 앞장서서 개헌의 물꼬를 트고 정치개혁을 획기적으로 단행해야 한다. 국익이 무너지는 현실을 더 이상은 두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염재호 태재대학교 총장·국가AI위원회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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