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혜리의 시시각각] 2013년의 윤석열, 변한 게 없다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 "
검사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 발언은 지난 2013년 국회 법사위 국감장에서 처음 등장했다. '박근혜 정부 시절 수사 방해 외압에 맞섰다 좌천된 정의로운 검사'라는 명예로운 꼬리표도 이때 붙었다.
조영곤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이 윤 특별수사팀장(당시 수원지검 여주지청장)을 국정원 대선 개입 수사에서 배제하자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 의원들이 "수사 방해 의도다, 당장 업무에 복귀시키라"고 요구하면서 결국 조 검사장이 책임지고 옷을 벗는 항명 파동으로까지 이어졌다. 대다수 국민은 엇갈리는 양측 주장의 시시비비를 따지는 대신 강렬한 위 문장 덕분인지 막연하게 윤석열이라는 인물을 '정권 핍박을 견딘 강골 검사'라는 긍정적 이미지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가 비극의 시작이다.
■
「 "법 무너졌다"는 대통령 탄식
절차 흠결 무시했던 본인 업보
절차적 정의 중요성 이젠 알까
」
여기엔 민주당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가 국정원 수사에서 배제되고 사흘 뒤 열렸던 지난 2013년 국회 법사위의 서울고검·수원지검 국감 회의록을 보면, 수사 방해와 같은 검찰 수뇌부의 외압이 확인되기는커녕 오히려 보고와 결재 같은 정상적 절차와 관련 법까지 무시하고 독선적으로 수사해 불필요한 분란을 일으킨 건 윤 지청장(이하 대통령) 본인이라는 게 여러 대목에서 드러난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그를 옹호하며 외압 프레임으로 박근혜 정부를 향해 부도덕한 정권 이미지 만들기에 성공했다.
실상은 이렇다. 윤 대통령은 조 검사장 모르게 법원에 국정원 직원에 대한 체포 영장을 접수해서 발부받고, 그다음 날 새벽엔 또 검사장 몰래 체포영장과 압수수색영장을 집행했다. 전 국정원장에 대한 공소장 변경도 보고 없이 맘대로 했다. 또 국정원 직원 체포는 사전에 통보해야 하는 국정원법도 어겼다. 이에 조 검사장은 절차적 흠결을 문제 삼아 윤 대통령을 수사에서 배제했다. 수사를 중단시킨 게 아니다.
그런데도 윤 대통령은 "조 검사장이 야당이 이것 가지고 정치적으로 얼마나 이용하겠느냐, 국정원 사건 수사의 순수성이 얼마나 의심받겠느냐기에 검사장님 모시고 사건 끌고 가기 불가능하다 판단했다"며 본인의 법 절차 무시에 대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보고 후 수뇌부의 수사 지휘에 문제가 있을 땐 정식으로 이의를 제기하면 되는데도 "지시 자체가 위법한데, 이의를 제기한 후 안 받아들여지면 그걸 따르라는 말이냐"고도 했다. 최근 자주 볼 수 있는 윤 대통령 특유의 이런 궤변은 이날도 한참 이어졌다. "소위 절차를 다 밟으면 시간 걸려서 수사 못 한다, 미리 조사할 것 없이 (일단 체포 후) 수사하면서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다. "
전형적인 짜 맞추기 수사요, 수사 목적을 위해서라면 법 절차는 지킬 필요가 없다는 식의 위험한 발언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민주당 의원들은 되려 "조그마한 절차 문제"(박지원)라거나 "절차의 하자는 경미"(이춘석)", "위법한 행위 거역은 검사의 도리"(서영교)라고 엄호했다. "국민이 신뢰하려면 절차적 정의를 확실히 세우고, 조그마한 틈새나 흠결이 없어야 한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대응을 한 조 검사장을 향해선 "부하를 치욕적인 거짓말로 잘라낸 존경을 받지 못하는 상관이 됐다"(신경민)고 몰아붙였다.
결국 박 대통령 탄핵으로 정권이 넘어간 후 문재인 대통령은 그를 2017년 서울중앙지검장, 그리고 2019년 검찰총장에 연이어 파격적인 발탁인사를 했고, 박지원 의원은 "윤석열의 정의로운 발언이 촛불 혁명을 가져왔고 문재인 정부를 탄생시켰다"(2019)고 찬사를 보냈다.
보수 정부의 정당성을 무너뜨린 사람이 보수 정당의 대통령이 된 것만큼, 그때 윤 대통령을 비호해줬던 법 절차적 하자가 이번엔 그의 발목을 잡는다는 것도 참 아이러니하다. 윤 대통령이 지난 15일 체포됐을 때 법 절차를 문제 삼아 "법이 무너졌다"고 한탄했다는데, 그럴 자격이 있나 싶다. 법은 안 무너졌다. 만약 무너졌다면, 2013년 무너졌다.
안혜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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