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속도’는 과장됐다, 와이파이보다 느리다
정보 수집은 초당 10억비트, 처리는 초당 10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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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몸 구석구석에 뻗어 있는 감각 신경계에선 시시각각 엄청난 양의 정보를 수집하고 있지만, 이것이 뇌에서 처리돼 어떤 판단이나 행동으로 연결되는 데는 적잖은 시간이 걸린다.
미국 캘리포니아공대 연구진이 지각, 행동, 상상력 등 인간 인지력의 모든 측면에 대해 지난 100년 동안 이룬 측정치를 검토한 결과, 사람의 생각 속도를 정량화한 연구 결과를 국제학술지 ‘뉴런’에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우리 몸의 감각 시스템은 각각 초당 10억비트의 속도로 정보를 수집하지만, 우리 뇌가 정보를 처리하는 속도는 초당 10비트(10bps)에 불과하다. 정보 수집량과 처리량 사이에 1억배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정보이론의 기법을 읽기 및 쓰기, 비디오 게임 실행, 루빅스 큐브 풀기 같은 인간 행동에 관한 방대한 양의 연구에 응용해 계산한 결과다.
연구를 이끈 마커스 메이스터 교수(신경과학)는 “이번 연구는 인간의 뇌가 얼마나 복잡하고 강력한지에 대한 끝없는 과장에 대한 일종의 반격”이라며 “실제로 수치로 표시하면 우리의 뇌는 엄청나게 느리다”고 말했다.
와이파이보다 수백만배 느려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메이스터 교수는 신경과학 개론 수업을 진행하면서 이번 연구의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그는 사람들이 특정 작업을 얼마나 빨리 수행하는지 살펴보면 생각의 속도, 즉 정보가 신경계를 통과하는 속도를 추정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예컨대 키보드로 문자를 입력할 경우, 단어를 보고 글자를 인식한 다음, 눌러야 할 키의 순서를 정하게 된다. 타이핑할 때 정보는 눈과 뇌를 거쳐 손가락 근육으로 흘러간다. 이 속도가 빠를수록 타이핑 속도도 빨라진다.
일반적으로 무선 와이파이는 초당 50메가비트를 처리한다. 연구진의 계산대로라면 뇌의 정보처리 속도는 와이파이보다 수백만배 더 느리다.
1조비트 정보 중 10비트만 추출
연구진은 우선 2018년 핀란드 연구진이 발표한 1억3600만건의 타이핑 데이터 분석 논문에서, 생각의 속도를 추정할 수 있는 근거를 찾았다. 이에 따르면 영어를 기준으로 할 경우 숙련된 타이피스트는 분당 120개의 단어를 입력했다. 각 단어가 5개의 알파벳으로 이뤄져 있다고 치면 타이핑 속도는 초당 10번의 키 입력, 정보이론 계산법을 적용할 경우 초당 10비트에 해당한다. 듣는 사람이 편안하게 따라갈 수 있는 구술 속도는 분당 160단어였다. 이는 초당 13비트에 해당한다.
좀 더 빠른 행동이 필요한 작업에선 정보 처리 속도가 어떨까? 연구진이 찾아본 측정 데이터들에서 추론한 정보처리 속도는 예상과 달리 그다지 빠르지 않았다.
루빅스 큐브 맞추기는 초당 11.8비트, 숫자 기억력은 초당 4.9비트, 전문가급 테트리스는 초당 7비트, 무작위로 뽑은 카드 한 벌의 순서를 기억하는 스피드 카드 게임은 초당 17.7비트로 계산됐다.
연구진은 측정 데이터를 종합한 결과, 인간의 생각 속도는 초당 약 10비트로 볼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렇다면 감각기관이 정보를 수집하는 속도는 어떨까? 사람 눈의 광수용체 1개는 초당 270비트의 정보를 수집한다. 한 쪽 눈에는 600만개의 광수용체가 있다. 이를 기준으로 하면 한쪽 눈이 받아들이는 정보는 초당 16억비트다. 이는 시신경을 거치면서 초당 1억비트로 압축된다.
메이스터 교수는 “우리는 매 순간 감각기관이 받아들이는 1조비트 중에서 10비트만 추출해 세계를 인식하고 결정를 내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생존을 위해 찾아낸 ‘생태 틈새’
입력 정보량과 처리 정보량의 거대한 차이는 왜 생겼을까? 또 말초 신경계는 수천개의 항목을 동시에 처리하는 반면, 우리 뇌는 왜 한 번에 한 가지만 처리할까? 예컨대 체스 선수는 한 번에 여러개의 가능한 수를 탐색하는 것이 아니라 한 번에 하나의 수만 탐색한다.
연구진은 진화론 관점에서 이를 해석했다. 과거 수렵채집 시절 먹을거리를 찾고 포식자를 피하는 데 집중해야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연구진은 “우리 조상들은 세상 속에서 우리가 생존하는 데 충분할 만큼 느린 ‘생태 틈새’를 선택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연구진에 따르면 사실 초당 10비트는 최악의 상황에서 필요한 정보 처리 속도이며, 대부분의 경우 환경은 이보다 훨씬 느린 속도로 변화한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덧붙여 이번에 추론한 인간의 생각 속도는 정보기술 업계에서 꿈꾸는 미래 시나리오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뉴럴링크 같은 업체는 대화나 문자 입력 속도보다 빠른 속도로 인간과 소통할 수 있는 뇌-컴퓨터 인터페이스를 염두에 두고 있지만, 우리 뇌는 앞으로도 초당 10비트의 속도로 기계와 소통할 것이라는 얘기다.
연구진은 “일론 머스크는 우리가 인공지능과 공생할 수 있도록 뇌에 고대역폭 인터페이스를 만드는 것이 뉴럴링크의 목적이라고 말하지만 이는 환상”이라고 주장했다.
연구진은 이번 논문에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느림’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논문 정보
DOI: 10.1016/j.neuron.2024.11.008
The unbearable slowness of being: Why do we live at 10 bits/s?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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