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민 대이변' 스승은 가장 먼저 알았다, 은밀한(?) 시그널에 캠프는 열광
제42대 대한체육회장 선거에서 대이변을 일으킨 유승민(43) 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 위원 및 전 대한탁구협회장. 이기흥 현 회장의 3선이 유력하다는 예상을 뒤엎고 한국 스포츠 대통령으로 우뚝 섰다.
유 후보는 14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내 올림픽홀에서 열린 회장 선거에서 가장 많은 417표를 얻었다. 379표를 얻은 이 회장을 제치고 42대 회장에 올랐다.
당초 이번 선거는 이 회장의 3연임이 유력하다는 전망이 우세했다. 8년 동안 체육계에 기반을 다진 이 회장에 대한 지지가 워낙 단단할 것이라는 예상이었다. 이 회장은 2016년 선거에서는 약 33%, 2021년에는 46.4%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이번에도 이 회장은 30~40%의 득표율이 예상됐다. 선거에 앞서 모 후보 캠프의 판세 분석에 따르면 이 회장이 30%가 넘는 지지율로 1위, 강태선 서울시체육회장과 유 후보가 20% 중반으로 엇비슷하게 경합하는 것으로 나왔다. 역시 이 회장에 대항한 후보 단일화가 해법처럼 보였다.
하지만 개표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이 회장은 379표로 1209명 전체 투표인 중 31.3%의 지지를 얻었다. 다소 낮았지만 예상의 근사치였다. 그러나 유 후보는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34.4%의 득표율을 보였다. 10%P 정도나 높게 나왔다. 3위는 강 회장으로 215표(17.8%)였다.
개표 과정에서부터 유승민 후보 측 '위드유(with you) 캠프'의 분위기는 달랐다. 열세 예상에도 당선에 대한 기대감에 부풀었다.
특히 결과 발표도 하기 전에 유 후보 캠프는 환희로 술렁거렸다. 무언가 메시지가 전달이 된 듯했다. 어떻게 유 후보 캠프는 결과를 조금이라도 빨리 알 수 있었을까.
바로 개표 참관인으로 나선 김택수(55) 미래에셋증권 총감독이 보낸 은밀한(?) 신호 때문이었다. 김 감독은 유 후보 측 참관인으로 단상에에서 이뤄진 개표 진행 상황을 지켜봤다. 개표를 마친 뒤 발표 전 단상을 내려오면서 관중석 쪽의 캠프 쪽을 향해 미리 약속된 시그널을 보냈다. 그때 캠프 관계자들은 승리를 확신했던 것이다.
김 감독은 "유 후보부터 개표 작업이 진행됐는데 417표였다"면서 "선거 중 이 회장이 500표 이상 600표까지 얻었다는 말이 돌아 불안했다"고 당시를 돌아봤다. 이어 "강 회장의 개표였는데 215표가 나와서 전체 1209표임을 감안하면 이 회장이 절반까지 차지할까 생각했다"고 떠올렸다. 여기까지는 표정이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후 반전이 일어났다. 김 감독은 "다음이 이 회장 차례였는데 슬쩍 보니 100표 묶음이 3개였고, 4개까지는 안 되는 것 같더라"고 말했다. 이어 "그래도 마지막 묶음이 왜 그렇게 두꺼워 보이는지 애가 타더라"고 웃었다. 결국 이 회장은 379표, 유 후보와 38표 차였다.
후련한 마음에 김 감독은 개표 확인을 마치고 단상을 내려오면서 캠프를 향해 모종의 신호를 보냈다. 김 감독은 "원래 단상에 오르기 전에 목도리를 하고 있었는데 전체 개표가 끝나서 풀고 내려오면 승리한 것이라는 신호라고 캠프 동료들과 약속했다"고 귀띔했다. 긴장이 풀린 표정을 짓고 있는 김 감독의 풀린 목도리에 '위드유 캠프'는 비로소 환희로 가득찰 수 있었던 것이다.
탁구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출신인 유 회장의 선거에는 김 감독을 비롯해 유남규 한국거래소 감독, 현정화 한국마사회 감독 등 한국 탁구 전설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도움을 줬다. 최영일 마사회 감독, 협회 정해천 사무처장, 조용순 감독 등 탁구인들은 물론 경희대 김도균 교수, 대한하키협회 신정희 부회장 등 체육인, 유 회장이 위원장을 맡았던 국제스포츠전략위원회 관계자들도 힘을 실어줬다. 유 회장이 당선 소감에서 위드유 캠프에 대한 고마움을 강조한 이유다.
특히 김 감독은 유 회장이 2004년 아테네올림픽 남자 단식 금메달을 따냈을 당시 남자 대표팀 코치로 결승전 벤치에서 힘을 실어줬다. 유 회장이 중국의 왕하오를 꺾고 우승을 확정한 뒤 김 감독과 얼싸안은 모습은 역대 올림픽 명장면으로 꼽힌다.
이후 유 회장은 대한탁구협회장에 오른 뒤 스승인 김 감독을 실무 부회장으로 모셨다. 2023년 항저우아시안게임, 지난해 부산세계탁구선수권대회와 파리올림픽 등 굵직한 대회를 함께 하며 환상의 사제 케미를 자랑했다.
전날 캠프 축승연에 참석한 남자 테니스 국가대표 출신 임규태 KBS 해설위원은 끈끈한 사제의 정에 혀를 내둘렀다. 유 회장의 절친인 임 위원은 "김 감독님이 제자인 유 회장에게 경어를 쓰고 깍듯하게 인사를 하면서 예우를 해주는 모습이 정말 감동적이었다"면서 "유 회장도 스승을 존경하는 모습을 보니 사제 모두 왜 성공했는지 알 수 있었다"고 귀띔했다.
김 감독은 "일각에서는 단일화가 안 되면 힘들 것으로 봤지만 우리는 이 회장이 나오더라도 충분한 자신감이 있었다"면서 "선수는 물론 IOC 위원과 협회장 등 현장과 행정 경험이 풍부한 유 회장 자신이 가장 큰 무기였기에 승산이 있다고 봤다"고 강조했다. 스승의 신념과 제자의 열정이 빚어낸 짜릿한 승리였다.
CBS노컷뉴스 임종률 기자 airjr@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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