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이 불쌍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 틀린 정진석 호소문
[박성우 기자]
▲ 정진석 대통령비서실장이 지난해 12월 31일 오전 서울시청 본관 앞에 마련된 제주항공 여객기 희생자 합동분향소에서 희생자들을 추모한 뒤 추모공간을 나서고 있다 |
ⓒ 연합뉴스 |
정 비서실장의 호소문이 국민에게 호소력을 갖기 위해선 주장이 합리적이고 근거가 명확해야 한다. 하지만 호소문을 살펴보면 정 비서실장은 윤석열이 억울하다고만 강변할 뿐, 윤석열의 체포 반대에 동의할 만한 근거나 논리를 제시하지 못했다.
"도와줄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누가 고립 자초했나
정 비서실장은 "지금 윤석열 대통령의 처지는 고성낙일"이라며 "외딴 성에 해가 기울고 있다. 도와줄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라고 강조했다. 그러한 사면초가의 처지를 자초한 이는 누군가? 바로 윤석열 본인이다. 위헌 계엄으로 나라를 혼란의 극치로 만들어놓고서 '외롭고 도와주는 사람도 없다'라고 하소연해 봤자 자업자득이다.
이어 그는 "경찰과 공수처는 막무가내"라며 "언제든 성벽을 허물고, 한남동 관저에 고립돼 있는 윤석열 대통령에게 수갑을 채워 끌고 나가려고 한다", "직무가 중지되었다 해도, 여전히 국가원수이자 최고 헌법기관인 윤석열 대통령을 마치 남미의 마약 갱단 다루듯 몰아붙이고 있다"며 경찰과 공수처의 체포영장 집행을 비판했다.
법원이 발부한 적법한 체포영장 청구를 경호처라는 물리력을 앞세워 막아서는 사람은 윤석열이다. 법 집행기관의 집행 절차를 물리력을 행사해 거부하는 것이 바로 윤석열이 하고 있는 일이다. 애당초 윤석열이 공수처의 출석 요구에만 협조했으면 이런 사달이 발생하지도 않았다.
'자연인' 입 틀어막는다? '피의자' 절차 밟는 것 뿐
정 비서실장은 "우리는 윤석열 대통령에게 특례를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자유민주주의 공화국의 시민이라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자기 방어권을 보장해 달라는 것"이라며 "사실을 호도하는 정파적 선동, 수사기관의 폭압으로, 자연인 윤석열의 입을 틀어막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대체 언제부터 공수처와 경찰이 윤석열의 자기 방어권을 부정했나. 대체 언제부터 체포영장을 물리력으로 막아서는 것이 시민의 자기 방어권으로 취급되었나. 지금 윤석열의 입을 틀어막은 이는 아무도 없다. 보란 듯이 탄핵 반대 시위대에 자신을 지켜달라는 내용의 선동문을 보내고 페이스북에 글을 쓴 사람이 윤석열이다. 거짓말을 계속 한다고 해서 그것이 진실이 되는 건 아니다.
이어 그는 "우리 헌법은 모든 형사 피의자가 유죄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무죄로 추정한다고 천명하고 있다. 형사소송법은 모든 피의자가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받는 것을 원칙으로 명시하고 있다"라며 "야당의 유력 정치인은 이런 사법체계를 교묘히 이용해서 재판을 한없이 지연시키고 있다"고 했다.
정 비서실장의 말대로 무죄추정의 원칙과 불구속 수사의 원칙은 중대한 원칙이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까지 지켜지고 있다. 헌법에 적힌 무죄추정의 원칙은 형사절차에 한해서 지켜지는 것이며 현재까지 수사기관은 윤석열을 피의자로서 대하고 있는 것이지, 범죄자로 대하는 게 아니다.
체포영장 청구 또한 피의자에게 가할 수 있는 적법한 형사절차다. 체포영장의 체포 기간은 48시간으로 한정되어 있는 만큼 윤석열이 체포되더라도 당장 구속되는 것은 아니다. 또 이후 구속영장 실질심사 등을 받을 권리 역시 보장되어 있기 때문에, 정 비서실장의 주장은 더더욱 말이 되지 않는다.
정 비서실장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언급하며 '사법체계를 교묘히 이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한 비판은 충분히 할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이 대표는, 정 비서실장도 인정했듯, 사법체계의 테두리 내에서 자기 방어권을 행사하고 있다. 체포영장 집행을 거부하는 것은 이미 사법체계를 벗어난, 엄연한 위법 행위다.
정 비서실장은 "왜 윤석열 대통령만 우리의 사법체계 밖으로 추방돼야 하나? 무죄 추정의 원칙, 불구속 수사의 원칙이 윤석열에게만 적용되지 않아야 할 무슨 이유가 있나?"라고 항변했지만 앞서 설명한 대로 그러한 사법체계의 원칙들은 충분히 윤석열에게도 적용되고 있다. 정 비서실장은 마치 윤석열이 편향적이고 차별적인 억압을 받는 것처럼 국민을 호도하고 있을 뿐이다.
▲ '내란 우두머리' 혐의 윤석열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을 앞두고 13일 오전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에 체포영장 집행을 막기 위해 버스, 승용차, 철조망 등으로 저지선이 설치되어 있다. |
ⓒ 권우성 |
그는 "지금 이 충돌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행정부의 수반을 맡고 있는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뿐"이라며 "경찰과 경호처는 행정부의 수반인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의 지침과 지휘를 따라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경찰과 경호처의 충돌을 막을 사람은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뿐만이 아니다. 윤석열 본인이 직접 공수처에 출두하면 이 모든 사태는 마무리된다.
하지만 정 비서실장은 호소문에서 단 한번도 윤석열의 수사기관 출석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수사기관에 출석을 거부한 근거나 이유에 대해서도 일언반구조차 없었다. 왜 윤석열은 수사기관에 출석하지 않는가? 이 근본적인 질문을 하지 않으니 호소문이 호소력을 가질래야 가질 수가 없다.
정 비서실장은 "유독 윤석열 대통령에게만 가혹하게 대응하는 것이 온당한 일인지 생각해 보라"라고 했지만 대한민국의 어떤 국민도 윤석열처럼 국가기관을 동원해 적법한 법적 절차를 무시하고 거부하며 수사에 협조하지 않아도 이렇게 오랜 기간 신변의 안전을 유지할 수 없다. 오히려 윤석열에게만 유독 배려하고 있는 셈이다.
지금 경찰과 공수처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배려는 윤석열 스스로 관저 문 앞을 나와 제발로 공수처의 수사에 협조하는 일이다. 이를 거부한다면 더 이상의 배려는 없다. '배려가 계속되면 호의인 줄 안다'라는 영화 대사가 있다. 정 비서실장이 배려를 호의로 여기는 걸 넘어 가혹하다라고 생각한다면 이는 완전한 착각이다. 그렇게 착각에서 벗어나지 않겠다면 결국 정당한 법의 원칙대로, 체포영장에 따라 강제로 호송될 길만 남아 있다.
이처럼 정 비서실장의 대국민 호소문은 처음부터 끝까지 거짓과 변명으로 점철된 내용이었다. 만약 이것이 국민에게 호소력을 지녔다고 생각했다면 국민을 너무 무시하고 얕잡아 본 것이다. 정 비서실장은 씨알도 안 먹힐 소리를 호소문이랍시고 국민에게 전하는 대신에 윤석열에게 수사기관에 자진출두하라고 호소하는 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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