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전국시대를 통일한 뒤 진시황이 찾아간 산
2024년 12월 21일부터 24일까지 중국 산동성의 문화유산을 답사했다. 그중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태산과 곡부의 공자유적 답사에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태산은 문화유산과 자연유산이 결합된 복합유산이고 공자유적은 문화유산이다. 이번엔 산동박물관 세 번째 기사로, 중국의 고대 문화유산을 자세히 소개한다. 진시황으로부터 시작된 태산 봉선의식, 한당시대 문화유산도 다뤘다. <기자말>
[이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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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석기시대 홍도(紅陶) |
| ⓒ 이상기 |
그러나 문명과 문화라는 이름으로 분류하는 것은 신석기 시대다. 수렵어로에서 농경으로 옮겨 정착하면서 이들은 대문구(大汶口) 문화, 용산(龍山)문화, 악석(岳石)문화를 이룩했다. 그들은 농기구, 장신구, 생활용품 등을 만들어 사용했다. 무문토기와 빗살무늬 토기, 홍도(紅陶, 붉은색을 띠는 도기)와 흑도(黑陶), 옥으로 만든 장신구가 대표적이다.
무문토기는 재료에 따라 다른 색을 낸다. 발이 셋인 경우가 많은 것으로 보아 제기로 사용된 것 같다. 뒤로 가면서 빗살문과 색이 도입되고 도기로 변한다. 신석기 시대를 대표하는 도기는 1959년 태안시 대문구 유지에서 발굴된 홍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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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긴다리 술잔(高柄杯)으로 불리는 흑도 |
| ⓒ 이상기 |
색으로 봐서 흑도라 할 수 있는 커다란 항아리도 보인다. 항아리지만 상감기법으로 만들어 내외부에 바람이 통하도록 만들었다. 건조한 곡물을 보관한다든지 저장하는 용도로 사용되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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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춘추전국시대 청동기 |
| ⓒ 이상기 |
무기로는 상나라 때 만들어진 얼굴 모양 도끼(亞醜鉞)가 있다. 이것을 무기보다는 권력자의 위엄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물건으로 보기도 한다. 청동기 중 가장 많은 것은 세 발 달린 솥이다. 다리가 세 개 있고 그 위에 불룩한 형태의 솥을 얹은 다음 양쪽으로 손잡이를 만들었다. 후대로 가면서 솥과 손잡이에 장식을 해서 예술성을 높였다.
술병이나 물통형으로 만들어 다리가 없고 덮개가 있는 청동기도 있다. 들기 쉽게 고리형 손잡이를 부착하기도 했다. 다리가 셋 달린 상나라 후기 청동 주전자도 보인다. 용기 상단과 뚜껑 부분에 원형으로 문자 문양을 넣어 장식성을 더했다. 공종이가 만들었다(作珙從彝)는 명문이 있어 공종화(珙從盉)라 부른다. 여기서 화는 입구가 원형이고 배가 부르며 다리가 셋 달린 술병을 통칭한다.
산동성에도 상주(商周)의 문물이 전해지면서 청동기가 많이 제작되었다. 그중 태안시 인근 비성현(肥城縣)에서 출토된 춘추시대 술병이 대표 유물이다. 장방형을 원통형으로 약간 변형시켜 만들었으며, 목부분에 손잡이를 붙였다.
간단하게 선이나 면 그리고 장식적인 문양을 넣어 예술성을 살렸다. 명문을 통해 진(陳)나라 왕(侯)이 만들었고 영원히 사용되기를 바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춘추진후호(春秋陳侯壺)라는 이름이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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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산 전경 |
| ⓒ 이상기 |
묵자와 호비자(胡非子)로 대표되는 묵가(墨家)가 있다. 손무 오기 손빈으로 대표되는 병가(兵家)가 있다. 소진과 장의로 대표되는 종횡가(縱橫家)가 있다. 추연(鄒衍)으로 대표되는 음양가(陰陽家)가 있다.
이들은 군주와 제후를 찾아다니며 자신의 학설을 설파했고, 그들과 함께 흥망성쇠를 같이 했다. 전국시대 말 진시황은 법가의 의견을 받아들여 통일대업을 이룩했다. 그 결과 유가의 책들이 불태워지는 수난을 겪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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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산 봉선의식에서 지은 진시황 송사 |
| ⓒ 이상기 |
이곳에서 자신이 하늘의 아들(天子)인 황제가 되었음을 알리는 의식을 거행한다. 이때 자신의 공덕을 칭송하는 147자로 된 송사(頌辭)를 올렸는데, 앞부분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황제가 즉위하여 법도를 분명히 하고 신하들이 수칙을 따르도록 했다. 즉위 26년에 처음으로 천하를 통일하니 따르고 복종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친히 먼 곳으로 가서 백성을 만나고 여기 태산(泰山)에 올랐다. 동쪽 끝까지 두루 살펴보고 신하들과 더불어 그 자취를 생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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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조문도량으로 불리는 진나라 도량형기 |
| ⓒ 이상기 |
그러므로 봉선은 다분히 정치적인 의도를 가진 제례의식이었다. 이러한 봉선의식은 차츰 명산대천(名山大川)에 대한 제사로 확장되었다.
그리고 추성(鄒城)에서 발굴된 진나라 때 도량형기도 이곳에 전시되어 있다. 지름이 20㎝ 높이가 9㎝쯤 되는 회색 도기로, 아래보다 윗부분이 더 넓은 모양이다. 용기 바깥에 기원전 221년 황제가 내린 명령문(詔文)이 있어 진조문도량(秦詔文度量)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진시황은 중앙집권을 강화하기 위해 문자, 화폐, 도량형을 통일했다. 진조문도량은 황제가 칙령을 내려 도량형기를 통일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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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나라 동평묘 벽화 |
| ⓒ 이상기 |
1호분의 입구 벽화에는 무려 48명의 인물 형상이 그려져 있다. 그리고 붉은 태양, 삼족오, 개와 닭 같은 가축이 그려져 있다. 음주 가무, 악가무로 이루어진 곡예, 병을 물리치는 의식 같은 오락과 풍속 그리고 의례가 표현되어 있기도 하다.
병마용은 진시황의 병마용 갱이 유명하지만, 한나라 때도 규모는 작지만 병마용이 무덤에 함께 부장되었다. 도용의 크기가 작아지고 숫자도 적어졌다. 이것은 과거 춘추전국시대에 있던 순장 풍속의 변형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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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나라 때 고분벽화 |
| ⓒ 이상기 |
벽화를 통해 당시의 생활풍습을 이해할 수 있다. 말을 끌거나 소를 타고 가는 사람이 보인다. 행렬을 따르는 악사와 시종들의 모습도 보인다. 실내에 앉아 음식을 먹는 묘주 부부의 모습도 보인다.
도용은 우마차, 인물 등 다양하다. 도용은 얼굴이 통통하고 몸도 살찐 편이다. 이들은 당삼채(唐三彩)로 이루어져 있으나 색이 많이 바랬다. 묘지석 양쪽으로 문·무인석이 서 있는데, 이걸 옹중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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