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 선포로 민주주의 후퇴…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 필요”

이종선 2025. 1. 13. 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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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뉴얼 대통령제] <⑤·끝> 원로들이 말하는 개헌
이재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정치 일선에서 오랜 세월을 보낸 원로 정치인들은 상당수가 “지금이 개헌의 적기”라고 말한다. 12·3 비상계엄 선포로 후퇴한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탄핵 정국으로 혼란스러운 현 정치 상황을 매듭짓기 위해서라도 개헌을 통한 권력 구조 개편이 절박하다는 얘기다. 동시에 선거제 동반 개편 주문도 나온다. 다만 개헌은 만병통치약이 아니고, 중구난방 개헌론 속에서 합의안을 도출한다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국민일보는 여야 원로인 정대철 헌정회장과 이재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을 차례로 만나 ‘왜 지금 개헌을 말하는지’에 대해 의견을 들었다. 두 원로 모두 ‘민주주의의 복원과 발전’을 개헌의 핵심 목적으로 제시했다.

이재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이 지난 8일 서울 용산구 민주화운동기념관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이 이사장은 12·3 비상계엄 사태와 이후 수습 정국에서 “한국 민주주의가 완전히 후퇴했다”며 개헌 필요성을 역설했다. 최현규 기자

이재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은 여권 내 대표적인 개헌론자로 꼽힌다. 그는 8년 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도 개헌을 통해 현재의 5년 단임 대통령제를 분권형 대통령제로 개편하자고 역설했지만, 당시 박 전 대통령 파면 결정과 조기 대선의 급물살 속에 개헌 논의는 힘을 받지 못했었다.

지난 8일 서울 용산구 민주화운동기념관에서 만난 이 이사장은 “그때 (정치권이) 개헌을 했으면 지금 나라가 이렇게는 안 됐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민주화운동기념관은 1970~80년대 군사정권 시절 공권력의 민주화운동과 인권 탄압의 상징인 남영동 대공분실을 보존해 기념관으로 지난해 2월 재탄생한 곳이다. 이 이사장도 1979년 유신 반대 운동을 하다가 이곳에 끌려와 40일간 고문을 받은 상처가 있다. 그런 대공분실이 민주화기념관이 되고 모진 고문을 받은 이 이사장이 기념관의 책임자가 됐지만, 한국 정치는 민주화 이후 처음 발생한 비상계엄과 이후의 탄핵 소용돌이에 휩쓸려 휘청이고 있다.

이 이사장은 윤석열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선포와 이후 정국에 대해 “한국 민주주의가 완전히 후퇴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먼저 윤 대통령의 계엄 선포에 대해 ‘반(反)민주주의적 행위’라고 규정하며 “윤 대통령은 야당이 국정을 풀어갈 수 없을 만큼 사사건건 발목을 잡아 불가피하게 계엄을 했다고 주장하지만, 그건 계엄으로 풀 게 아니라 정치와 대화로 풀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이 이사장은 또 대통령 탄핵안에서의 내란죄 삭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수사 적법성 공방 등 이후의 상황을 거론하면서 “여야는 물론 수사기관마다 자기들 법 논리만 내세워 결과적으로 이 나라 민주주의가 대혼란에 빠져들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내가 처음 국회의원이 됐던 29년 전(1996년)보다 정치권의 진영 갈등과 지역 갈등, 계파 갈등이 더 심해졌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 이사장은 이런 정치권의 퇴행이 현행 대통령제가 가진 제도적 한계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지금의 대통령제는 여당이 항상 다수일 때만 상정했지, 여소야대 가능성을 생각하지 않고 만들어 놨다”며 “여야가 당장 개헌 논의에 착수해 올해 말까지 분권형 대통령제를 골자로 한 개헌 국민투표를 마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헌법재판소가 윤 대통령 탄핵안을 인용해 조기 대선을 치르든, 탄핵안을 기각해 윤 대통령이 직무에 복귀하든 관계없이 여야가 올해 안에 개헌 작업을 마무리해 내년 6월 지방선거에서 개정된 ‘7공화국’ 헌법에 따른 대선을 다시 치르자는 얘기다.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대통령은 2026년 6월까지 1년만 임기를 수행한다는 게 전제 조건이다.

이 이사장은 이와 함께 “현행 소선거구제는 여야 대립과 지역갈등의 가장 큰 원인”이라며 소선거구제를 중대선거구제로 바꾸는 선거구제 개편도 개헌과 병행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국회의원들도 임기를 2년 양보해서 2026년 대선과 지방선거, 총선을 같이 치러 7공화국의 문을 열자는 로드맵이다. 그는 국회도 미국처럼 양원제를 채택해 탄핵과 같은 중대사안은 상·하원 모두 의결하도록 하자고 제안했다. 전국을 인구 100만명 단위 한 선거구로 나누어 50개 선거구에서 상원과 하원을 각각 2명과 4명씩 선출하면 현행 국회의원 정수(300명)를 유지하면서 양원제로 바꿀 수 있다는 게 이 이사장의 설명이다.

이 이사장은 권력구조 개편과 관련해서는 국민이 직접 선출한 대통령이 외교안보를 책임지되, 그 외 내치는 국무총리 중심의 내각이 담당하는 ‘분권형 대통령제’(이원집정부제)를 제안했다. 그는 “내각 구성은 국회 의석에 비례하도록 해 소수당도 국정에 참여할 기회를 보장하고, 대통령에 대해서는 ‘4년 중임제’를 채택해 중임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이사장은 이명박정부 시절 특임장관을 지내면서 개헌을 추진했다가 실패한 일화도 소개했다. 그는 “당시 개헌안을 마련해 법제처 체계자구심사까지 받았지만, 손학규 민주통합당 대표와 박근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이 ‘당신들은 5년 임기를 다 누리면서 왜 우리가 하려고 하니 개헌을 내놓느냐’고 반대해 이뤄지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결국 대통령을 하려는 사람들이 개헌과 선거제에 대해 결단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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