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과 을의 일자리 전쟁?…20대와 60대 취준생이 만나다
심리적 어려움·양질의 일자리 부족은 공통적 어려움
20대와 60대. 전혀 다른 시대를 살아왔지만 이들 세대엔 취업 준비생이 많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일자리는 한정돼 있으니 두 세대의 취업 전쟁은 사람 수보다 적은 의자를 놓고 노래가 멈추면 순간 의자를 차지해야 하는 ‘의자놀이’와도 같은 성격을 띤다. 일각에서는 취업 시장에서 20대와 60대 사이에 벌어지는 갈등을 ‘을(乙)의 전쟁’으로 명명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들은 서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지난달 19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에 20대와 60대 취준생 6명이 모였다. 첫 취업을 준비 중인 용덕(28)씨와 세영(가명·25)씨, 퇴사 후 재취업을 희망하는 소원(가명·24)씨, 성북50플러스센터를 통해 재취업을 준비 중인 승림(68)씨와 현경(63)씨, 퇴사 후 새로운 일을 찾고 있는 범철(60)씨가 그 주인공들이다. 이들 6명이 나눈 대화에서 가장 먼저 소개하고 싶은 내용은 한국 사회의 뜨거운 감자인 정년 연장과 관련된 이야기다.
정년 연장의 찬반 논리는 간단하다. 평균 수명이 늘고 생산 인구가 줄어드는 만큼 정년을 연장해야 한다는 목소리와, 정년 연장은 청년의 취업 기회만 축소시킨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정년 연장과 청년 고용 사이의 연관성을 두고도 다양한 의견이 존재한다. 한국조세재정연구소가 2023년 발표한 ‘정년연장의 고용효과에 대한 소고’에는 2016년 60세로 정년이 연장됐을 당시 정년 연장 대상자(50∼54세) 비중이 높았던 사업체가 그렇지 않았던 사업체에 비해 오히려 고용 증가율이 높았다는 분석이 담겨 있다.
반면 한국개발연구원은 2020년 ‘정년 연장이 고령층과 청년층 고용에 미치는 효과’에서 “60세 정년 도입 이후 고용 변화를 추적한 결과 정년 연장의 혜택을 받게 될 근로자가 1명 많으면 청년 고용이 0.2명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렇다면 당사자인 20대와 60대 취준생들의 생각은 어떨까. 정년 연장에 대한 목소리가 세대에 따라 엇갈리진 않았다. 20대 중에도 찬성하는 이가 있었고 60대 중에도 반대하는 사람이 존재했다.
가령 20대인 용덕씨는 “고령화된 사회에서 정년 연장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내 부모님의 일이기도 하고 내 미래이기도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20대든 60대든 모든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정년을 연장하면 좋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반면 60대인 현경씨는 “정년연장은 불필요한 제도”라며 “60세가 넘으면 확실히 순발력이 떨어지는 게 느껴진다. 고용주로서는 꺼려질 것 같기도 하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회의실에 모인 참석자들은 다양한 의견을 쏟아냈다.
“요즘 정년 연장 관련 뉴스를 많이 봤는데, 한 기사에서 60대 한 명에게 들어가는 금액이 청년 2~3명에게 들어가는 금액과 맞먹는다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이런 기사만 봤을 때는 청년 입장에서 충분히 위협이 된다고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요.”(소원)
“정년 연장이 된다면 정년을 맞는 분들뿐만 아니라 기업이나 나라에도 안정감을 줄 수 있을 겁니다. 다만 단순히 정년만 연장할 게 아니라 다른 부분도 복합적으로 고민해야 합니다. 임금피크제 확대 등 청년과 60세 이상이 공존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되길 바랍니다. 또한 60세 이상이 청년과 섞여 일할 수 있는 사회적 가치관을 갖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범철)
취준생의 가장 큰 고충은 뭘까. 누구나 짐작하다시피 그것은 불투명한 미래 탓에 걸머져야 하는 불안감일 것이다.
“은퇴 직전 가장 많이 들었던 감정은 불안이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도 갈 곳이 없다는 것, 꾸준히 들어오던 월급이 끊어진다는 것, 그리고 무직자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불안감을 느끼곤 했습니다.”(범철)
“저는 계속된 탈락 경험이 불안감으로 이어졌어요. 특히 인턴에 지원하려 해도 경력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아서 ‘경력을 쌓기 위한 경력’이 필요하다는 현실에 박탈감을 느꼈습니다.”(세영)
“사실 취업 준비 기간은 누구나 갖는 기간이잖아요? 그런데 이 기간을 ‘노는 시간’으로 여기는 사람이 많아요. 이런 분위기가 더욱 큰 압박감과 불안을 안겨주는 것 같아요.”(소원)
20대와 60대가 겪는 불안감은 데이터로도 입증된다. 지난해 1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발표한 ‘생활 속 질병·진료행위 통계’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우울증으로 진료를 받은 환자 중엔 20~30대 청년층 비율이 가장 높았다. 40대와 50대에서는 우울증 환자가 줄어드는 추세를 보였지만, 60대엔 다시 증가해 청년층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비율을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청년 세대는 취업난으로, 은퇴한 중장년층은 상실감 탓에 심리적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취업 시장에서 반복된 실패를 겪은 청년들은 좌절감과 무력감을 느끼며 결국 자신을 실패자라고 낙인찍고 모든 걸 포기해버리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장년층에 대해서는 “무직 상태가 되고 고정 수입이 사라지면 경제적 부담과 변화된 환경으로 인해 위축되기 쉽다”며 “외국에서는 은퇴 전 교육을 통해 변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대기업을 제외하면 이런 제도가 거의 전무하다”고 설명했다.
두 세대의 또 다른 공통점은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통계청이 지난해 11월 발표한 경제활동인구조사 비경제활동인구 부가조사에 따르면, 청년층이 일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로 꼽은 응답이 ‘원하는 일자리를 찾기 어렵다’(30.8%)는 것이었다.
청년유니온 김지현 사무처장은 “쉬는 청년 증가에는 여러 원인이 있지만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임금 격차가 가장 큰 문제”라며 “최저임금만으로는 생계를 유지하기 힘든 상황에서 중소기업은 청년들에게 매력적인 선택지가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참석자 중에도 이와 같은 이야기를 하는 이가 있었다. 용덕씨는 “요즘은 최저임금만으로는 살기 힘든 시대”라며 “청년들이 대기업을 선호하는 것도 결국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하려는 선택인 것 같다”고 말했다.
소원씨는 “한국에서는 좋은 대학을 나와 좋은 기업에 가야 한다는 인식이 너무 강하다. 어디에서 일하든 존중받고 인정받는 사회가 아니다 보니 그냥 ‘쉬는 청년’을 선택하는 거 아니겠느냐”고 되물었다.
‘좋은 일자리’가 부족한 것은 장년층도 마찬가지다. 노인 일자리 대부분은 단순 노무직이다. 현경씨는 “정부에서 제공하는 일자리 대부분이 청소, 급식 도우미, 아이 돌보미 같은 직군에 한정돼 있다. 경력을 살릴 기회를 찾기 힘들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변화한 노년층을 고려해 노인 일자리의 양만 늘릴 것이 아니라 질적인 개선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다양한 일자리를 창출하려면 공공 일자리뿐 아니라 민간에서 운영하는 일자리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며 “청년층과의 경쟁을 피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일자리를 더욱 확대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주원 이가림 인턴기자 onlinenews1@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참사 여객기 블랙박스, 사고 4분 전부터 기록 안 돼”
- 박찬호·패리스 힐튼 집도 전소…스타들 잇단 기부
- 처음 본 女 화장실 따라가…성폭행 실패하자 흉기 찌른 군인
- “참혹했던 시신 떠올라” 속울음 삼키는 소방관들
- 실종 2주 만에 돌아온 호주 의대생… 생존 비결은 ‘이것’
- 채팅으로 만난 여중생 성 착취한 교사…징역 8년 확정
- 최상목, ‘여야 합의 특검’ 요구… 민주당 “尹 체포가 최우선”
- 마포서 며느리 흉기로 찌른 시아버지, 살인 미수 체포
- “담배 냄새 나요” 쪽지 보고 고등학생 뺨 때린 50대 집유
- “마지못해 여기… 춥고 불안해” 경호처 직원의 메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