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쌓인 겨울에 여름꽃 필 만큼 상서로운 명당

이완우 2025. 1. 11.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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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 삼신산 쌍계사의 역사 문화 탐방 여행

[이완우 기자]

 쌍계사 입구 쌍계 석문
ⓒ 이완우
지난 9일, 섬진강 상류의 마을에는 며칠 동안 눈이 많이 내려서 두터운 설경을 이루었다. '설곡리 갈화처(雪谷裏 葛花處' 설화를 찾아서 하동 화개 장터와 쌍계사를 여행하였다. 하동 화개 장터를 둘러본 후 쌍계 명차를 음미하고, 쌍계사로 향했다(관련 기사: 전라도와 경상도 사이, 그 '화개 장터'의 현재 https://omn.kr/2btd8 ).

화개 장터에서 쌍계사는 벗꽃십리길로 불리는 4km 거리이다. 지리산 화개 계곡의 시냇물을 쌍계(雙磎)라고 하였다. 최치원(857~900)이 '쌍계 석문(雙磎 石門)'의 4자 글씨를 써서, 쌍계사 입구의 두 바위에 새겼다.

고졸(古拙)한 필체의 이 4자 글씨와 석문은 이상향을 지향하는 소재와 동기가 되었다. '쌍계 석문'은 무릉도원으로 향하는 동굴에 비유되는 석문의 대명사가 되었다. 임실 삼계 석문과 진안 삼계 석문 등은 호리병 속의 별천지인 화개 동천을 지향하는 최치원의 쌍계 석문 본뜨기였다.

頭流方丈眞仙界(두류방장진선계)
鼓翼淸吟付石門(고익청음부석문)
石門筆迹人間寶(석문필적인간보)
遊戱金壇銷白雲(유희금단쇄백운)
두류 방장산은 진실로 신선 세상이니
새가 활개 치듯 맑게 읊조리며 석문에 새겼네
석문의 필적은 인간 세상의 보배가 되었고
신선 노니는 금단에 흰 구름이 흩어지네.
[태능(太能, 1562~1649) 스님의 칠언절구 한시]
 쌍계사 쌍계 석문 암각서
ⓒ 이완우
쌍계사의 대웅전 앞 도량에는 국보인 진감 선사 혜소(慧昭, 774~850)의 대공탑비 해체보수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진감 선사는 남종선(南宗禪)을 신라에 처음 전하고, 불교 음악인 해동 범패의 시원을 이룬 출중한 선승이었다. 진감 선사는 또한 우리나라 최초의 차 시배지인 쌍계사 일원에서 차의 보급에 노력하였고, 천년 후의 초의(草衣, 1786~1866) 선사까지 다맥(茶脈)이 이어졌다.
 쌍계사 진감선사 대공탑비 해체보수 공사 중 (대웅전 앞)
ⓒ 이완우
쌍계사의 가장 위쪽에 금당(金堂)이 있다. 이 금당 안에는 달마 대사의 법맥을 이은 당나라 시대 남종선의 시조인 혜능(慧能, 638~713)의 사리탑이 있다. 의상 대사의 제자인 삼법(三法) 스님이 당나라에서 유학 후 귀국할 때 '삼신산(三神山)의 설곡리 갈화처(雪谷裏 葛花處, 눈 쌓인 계곡 속 칡꽃이 피어 있는 장소)에 가람을 세우라'는 계시를 받았다고 한다.

삼법 스님은 이곳저곳 '설곡리 갈화처'를 찾아다녔다. 어느 날 호랑이의 길 안내로 현재의 쌍계사 금당 위치에 도착했다고 한다. 이곳이 그토록 찾아다니던 장소라 여겨서, 가람을 창건하였으니 옥천사(玉泉寺)였다.

엄동설한 겨울에 여름꽃인 칡꽃이 필 만큼 상서로운 명당이어선지, 쌍계사에서 왠지 마음이 따뜻하고 포근하여서 오래 머물고 싶었다.

이 아름다운 사찰 창건 연기 설화는 하나의 비유와 상징으로 보인다. 이곳 옥천사에서 겨울에 여름꽃이 피듯, 여기가 우리나라 선불교의 시원이 되리라는 예언은 아니었을까?

옥천사로 창건한 쌍계사는 1300년 동안 수많은 선승이 머물며 우리나라의 선과 차, 그리고 범패의 시원 도량 역할을 해 왔다. 쌍계사 금당 앞에 가보니 애기동백이 작고 예쁘게 붉은 꽃을 피운 모습이었다. 은은한 장미 향을 풍기는 애기동백꽃은 겨울에 핀 여름 칡꽃처럼 보였다.
 쌍계사 금당, 설곡리 갈화처 명당 자리
ⓒ 이완우
쌍계사 금당에서 500m 산길을 올라가서 국사암에 이르렀다. 국사암 앞에는 진감 선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가 수령 천이백 년의 거대한 느릅나무로 자랐다고 한다. 느릅나무는 수고 40m에 흉고직경이 1.1m로 튼실하고 당당한 자태였다.
 쌍계사 금당 앞 애기동백
ⓒ 이완우
쌍계사 국사암의 느릅나무는 뿌리 가까운 아래 둥치에서 네 개의 큰 줄기가 네 방향으로 균형 잡혀서 위엄 있는 형태를 이루었다. 사찰을 수호하는 사천왕(四天王)이 함께 모여 한 그루 거대한 나무로 환생한 것일까? 국사암 앞의 느릅나무는 사천왕수(四天王樹)로 불리고 있다.
진감 선사는 당에 유학하여 불교 음악인 범패(梵唄)를 도입하였고, 중국의 차 문화를 수용하기도 하였다. 진감 선사에 의해 이곳 쌍계사는 불교 음악 범패, 차 문화와 선종 불교의 활발한 도량으로 자리 잡았다.
 쌍계사 국사암 사천왕수 (1200년 수령의 느릅나무)
ⓒ 이완우
쌍계사 입구 차 시배지에는 차시배추원비와 '해동 다성(海東 茶聖) 진감선사 추앙비' 등의 기념비가 서 있다. 신라 흥덕왕 3년(828년)에 김대렴(金大簾)이 당나라에서 차나무씨를 가져왔다. 왕명으로 지리산 쌍계사와 화개 주위의 산록에 차밭을 조성하였다. 이때부터 지리산을 중심으로 하는 영남과 호남 지방이 우리나라 차의 본고장이 되었다.
 쌍계사 앞 야생차 시배지
ⓒ 이완우
쌍계사 차시배지의 야생 차밭을 둘러보았다. 화개 주민들은 찻잎을 따면서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초엽 따서 상전께 주고, 중엽 따서 부모께 주고, 말엽 따서 남편에 주고, 늙은 잎은 차약 지어
봉지봉지 담아두고, 우리 아기 배 아플 때, 차약 먹여 병 고치고, 무럭무럭 자라나서, 경상감사 되어주오.

눈 쌓인 계곡에서 칡꽃 핀 장소를 찾아 가람을 세웠다는 설화는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듯하다. 마음이 따뜻해지고 포근한 느낌이 드는 하동 쌍계사에 오래 머물고 싶어서, 가람 앞의 리조트에 여장을 풀었다. 다음 날 아침 다시 쌍계사 앞의 야생차밭을 살펴보고, 쌍계사 가람으로 천천히 올라가 보고 싶었다.
 쌍계사 앞 야생차 시배지 탑
ⓒ 이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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