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없는 李…차기 대권 경쟁서 행복할까 [신율의 정치 읽기]
여기서 중요한 게 있다. 정치란 적과 동지를 구분하는 데서 발생하기 때문에, 사적으로는 적이 사라지지 않도록 오히려 보호해줘야 한다는 사실이다. 적이 사라지면 자신도 존재 의미를 상실하기 때문이다. 적이 사라질 경우 의도적이라도 다른 적을 ‘만들어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 적은 단시간 내에 만들어질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때문에 적이 사라지면, 일정 기간 동안 자신의 존재감을 유지하기가 상당히 어려워진다.
이는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이어진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 몰락에서 파생되는 새로운 질서 구축 과정을 보면 알 수 있다. 냉전이라 불리던 국제질서가 하루아침에 무너지고 소련마저 사라지자 미국은 당황했다. 이후 미국은 상당 기간 ‘가상의 적’을 설정하는 데 치중했다. ‘가상의 적’을 만들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는 자체가, 정치에서 적이 얼마나 필요한 존재인지를 보여준다. 결국 정치에 있어서 적은 자기 자신의 존재 이유를 규정하는 존재다. 마치 달은 해가 없이는 그 존재를 드러내지 못하는 것과 똑같다.
2025년 들어 각종 언론에서 차기 대선 주자 선호도 관련 여론조사가 쏟아져 나왔다.
매일경제가 여론조사업체 넥스트리서치에 의뢰해 2024년 12월 29일부터 31일까지 3일간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 남녀 1014명을 대상으로 한 전화 면접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32%의 지지율로 차기 대선 후보 적합도 1위를 차지했다. 범여권 후보로는 홍준표 대구시장과 오세훈 서울시장이 각각 8%,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 5%,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이 3%로 뒤를 이었다.
중앙일보가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해 2024년 12월 29일부터 30일까지 18세 이상 남녀 1006명을 대상으로 한 전화 면접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차기 대선 주자 선호도에서 이재명 대표는 35%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홍준표 시장은 8%로 2위, 한동훈 전 대표는 6%로 3위였다. 오세훈 시장은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과 5% 동률이었다. MBC가 코리아리서치인터내셔널에 의뢰해 2024년 12월 29일과 30일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화 면접 여론조사에서도, 이재명 대표는 40%의 지지율로 차기 대통령 선거 후보 선호도 1위를 기록했다.
앞서 언급한 여론조사는 모두 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1포인트고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이들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대표는 MBC의 여론조사를 제외하고는, 차기 대선 주자 선호도에서 공통적으로 30%대 지지율을 기록했다. 30%대의 지지율은,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 지지율에서도 관찰된 현상이다.
2017년 1월 10일부터 12일까지 한국갤럽이 실시한 자체 정례 전화 면접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차기 지도자 선호도를 보면,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31%를 기록했고,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20%,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 12%,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7%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문재인 전 대표는,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로 확정된 2017년 4월 3일 이후부터 비로소 40%대 지지율에 진입하기 시작했다(한국갤럽).
종합해보면, 현재 이재명 대표와 2017년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는 정치적 입지 측면에서 다음과 같은 차이가 있다.
첫째, 당시 문재인 후보는 반기문이라는 유력 후보가 상대 진영에 존재했다. 지금은 여권에 그런 인물이 존재하지 않는다. 둘째, 당내 경선에서도 안희정이라는 강력한 경쟁자가 있었다는 점도 차이다. 아직까지 더불어민주당 내에서 이 대표를 위협할 만한 경쟁자는 보이지 않는다. 우원식 국회의장 지지율이 범상치 않은 속도로 올라오고 있기는 하지만, 이 대표 경쟁자라고 보기는 힘든 상황이다. 결국 2017년 문재인 후보와는 달리, 이재명 대표에 대한 경쟁자는 당내·외를 통틀어 없는 것 같다. 반기문 전 총장도 사퇴하고 안희정 당시 전 지사도 탈락했던 2017년 4월의 상황과 비슷하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이라면, 이 대표 지지율이 40%대는 넘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현재 이재명 대표의 정치적 입지가 아주 탄탄하다고 보기는 힘들어 보인다.
요사이 이재명 대표에 대한 여론 주목도가 그리 높지 않다는 평가가 있다. 구글 트렌드에 입각해서 보면, 2024년 1월에 비해 현재 이재명 대표 검색량이 현저히 낮아졌다. 계엄령이 선포된 직후부터 지난 12월 14일까지는 이 대표 검색량이 다시 회복되는 듯 보였지만 이후 다시 줄었다. 이는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국회 통과와 관련이 깊다. 윤 대통령이 저지른 비상계엄 선포라는 황당한 행위에 따른 탄핵소추안 통과 이후 윤 대통령이 더 이상 권한을 행사할 수 없는 위치에 처해지자, 여론 관심이 줄었다는 의미다. 구글 트렌드에서 나타난 윤 대통령에 대한 검색량 역시,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통과된 12월 15일부터 급감한다.
결국 구글 트렌드를 중심으로 보면, 이재명 대표와 윤 대통령에 대한 관심도는 일정 수준 유사한 패턴을 보인다. 이런 측면을 감안하면, 이재명 대표와 윤석열 대통령이 ‘적대적 공생 관계’에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이재명 대표는 윤 대통령의 대척점에 있었기에 정치적 존재감이 한껏 올라갈 수 있었다는 얘기다. 그런데 윤 대통령이 탄핵소추로 모든 권한이 박탈되자, 이재명 대표 역시 존재감이 줄어들었다는 해석이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높이기 위해 이재명 대표는 새로운 ‘아이템’을 찾아야 한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새로운 ‘적’을 찾아 그 적에 대항하는 모습을 새롭게 보여주든지, 아니면 새로운 정책적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그런데 비전 제시를 통해 존재감을 높이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단시간에 존재감을 과거 수준만큼 높이려면, 새롭게 형성되는 정치 구도 속에서 적(敵)을 새롭게 규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헌법재판소 탄핵 심판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지만, 어쨌든 대선을 향한 시계는 매우 빠르게 돌아갈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차기 대권을 거머쥐게 될지 흥미롭게 지켜볼 일이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93호 (2025.01.15~2025.01.2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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