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곳곳에 버려진 동물들” 서울 복판 재개발구역 풍경 [개st하우스]
“인터넷 공고를 보고 유기견 ‘갈비’를 임시보호하게 됐어요. 영리하고 애교도 많은 녀석이 어쩌다 버림을 받았나 궁금해져서 구조된 장소를 직접 찾아갔거든요. 서울 한복판에 이런 곳이 있다니. 집마다 래커로 X자가 그려져 있고, 유리창도 대부분 깨져 있고. 완전 유령도시더라고요. 그런 곳에서 동물들이 떠도는 걸 보니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지난해 11월 재개발을 앞둔 서울 용산구 한남3구역. 급경사를 따라 꼬불꼬불 늘어선 벽돌집마다 노란 철거 계고장과 접근금지 테이프가 붙어 있습니다. 20년째 거주 중이라는 목수 이인하(69)씨는 “오랫동안 함께한 이웃들이 모두 떠났고 나도 폐업 준비 중”이라며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인근 주택가 사이로 주민들이 떠나면서 버린 폐가구와 집기류가 마치 산사태라도 난 듯 좁은 골목길을 가득 메웠는데요. 버려진 건 쓰레기만이 아니었습니다. 인기척을 느낀 듯 골목 곳곳에서 고양이들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하나, 둘, 셋, 세어보니 10마리가 훌쩍 넘습니다. 품종묘인 스코티시폴드, 러시안블루를 비롯해 귀 한쪽 끝이 잘린 길고양이들도 보입니다. 귀 끝이 잘린 것은 중성화(TNR) 시술을 받았고 사람이 주는 사료를 먹는다는 표식이죠. 길고양이지만 집고양이나 다를 바 없이 주민들에게 의지해 살아왔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개와 고양이는 영역 의식이 강한 동물입니다. 철거가 시작되면 살던 건물을 떠나 도망가는 대신 더 깊숙이 숨게 되죠. 그래서 그대로 두면 철거 과정에서 건물 잔해에 깔려 죽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운 좋게 사고를 피한다고 해도 결국에는 먹을 것이 없어서 굶어 죽게 됩니다. 한남3구역에는 이렇게 방치된 동물이 300~400마리쯤 된다는 게 주민들 추정입니다.
딱한 상황을 알게 된 시민들이 나섰습니다. 이들은 관할 용산구에 남겨진 동물에 대한 대책을 요구하는 한편, 직접 수십 마리의 유기 동물을 구조하기 시작했습니다. 제보자 정혜민씨가 임시보호하고 있는 갈비는 그렇게 구조된 유기견 중 한 마리인 거죠. 개st하우스는 지난해 11월 봉사자 김유진씨와 함께 갈비가 구조된 한남3구역에 다녀왔습니다.
지난해 11월 12일 오전 10시, 유진씨는 사료와 물 10㎏을 담은 배낭을 메고 이태원의 가파른 언덕길을 올랐습니다. 이주 공고가 내려진 2023년 10월부터 매일 반복해온 일입니다. 유진씨는 그렇게 먹을 것을 챙겨주는 방식으로 경계심 강한 길고양이의 개체 현황을 파악하고, 이미 사람 손을 탄 개와 고양이는 힘이 닿는 데까지 직접 구조해왔습니다.
넓은 구역을 오가며 다른 시민 봉사자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길에서 만난 70대 여성은 “사람은 떠나도 동물들은 남겨진다. 가엾어서 1년째 사료를 챙겨주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간 유진씨를 포함한 봉사자들은 관할 구청에 대책 마련을 꾸준히 요구해왔습니다. 전례가 없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부산 해운대구와 경기 광명시에서 재개발에 앞서 유기동물과 길고양이를 안전지대로 이주시킨 사례가 있습니다. 하지만 유진씨는 “생명 존중의 관점에서 대책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민원을 지자체와 구의원 등에게 전달했지만 실효성 있는 답변은 듣지 못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그래도 이들의 노력이 무의미했던 건 아닙니다. 봉사자들의 노력 덕에 사연이 알려지면서 위기의 동물들을 위해 동물병원과 시민단체들이 나섰습니다. 유기동물 보호소로 지정된 동물병원들은 구조된 재개발지역 동물들을 돌보며 입양자 모집을 도왔는데요. 한남3구역에서 구조된 갈비도 그렇게 동물병원에서 안전하게 보호를 받다가 지금의 임시보호자인 혜민씨의 품에 안길 수 있었습니다.
고양이들을 구조해 살 길을 열어준 동물단체도 있습니다. 동물구조단체 학사모는 지난해 11월 한남3, 4구역의 고양이 36마리를 구조해 유기묘 테마파크인 제주 캣월드로 이주시켰습니다. 비록 구조 규모는 크지 않지만 방문객이 꾸준한 보호시설에 입주시켜 입양 기회를 만들고 보호 비용을 충당한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구조 사례로 꼽힙니다. 학사모 차성경 대표는 “민간단체 수준에서는 수십 마리를 구조하는 것도 벅찬 것이 현실”이라며 “남은 수백 마리를 구호하려면 결국 정부 차원에서 이주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사회적 관심이 이어지자 마침내 관할 용산구도 움직였습니다. 지난해 11월 용산구에는 관련 조례가 신설됐고, 이 조례에 따라 한남3구역에 고양이들을 위한 급식소 20여개가 설치됐습니다. 목표는 남은 고양이들을 위험지대 밖으로 이주시키는 것입니다.
지난 5일 국민일보는 경기도 양주 임시보호처에서 지내는 유기견 갈비를 만났습니다. 이날 현장에는 입양 적합도를 평가하기 위해 14년차 행동전문가 미애쌤이 동행했습니다. 생후 6개월로 추정되는 갈비는 어린 강아지답게 생기발랄하더군요. 낯가림 없이 취재진 품으로 파고들고, 간식을 들자 얌전히 앉아 보상을 기다렸습니다. 임시보호자 혜민씨는 “배변을 화장실에서 해결할 만큼 영리하고 붙임성도 좋아서 온 가족의 사랑을 받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특히 퍼피답지 않은 집중력이 돋보이더군요. 간식을 얻어먹기 위해 무작정 달려드는 대신 미애쌤이 제시하는 ‘앉아’ ‘기다려’ ‘따라와’ 등 기초 교육에 1시간 넘도록 집중했습니다. 입 주변, 목덜미, 발 등을 만져도 전혀 예민한 반응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성격도 유순했습니다. 미애쌤은 “6개월 퍼피 단계에서 이만한 집중력을 보인다면 이후 지시한 물건을 가져오는 등 고난도 교육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총평했습니다.
재개발구역에서 구조된 유기견 갈비의 가족을 모집합니다. 입양을 원하는 분은 기사 하단의 입양신청서를 작성하시기를 바랍니다.
- 2024년6월생 / 수컷(중성화X, 예정) / 2025.1.9기준 7kg
- 종합백신1차 완료 (진행 중)
- 순하고, 생기발랄, 사람에게 애교 많음. 공이나 나뭇가지 등 물고 뜯는 장난감을 좋아함
- 사람 화장실에서 배변을 해결함 (패드 사용 가능) 임보2개월간 한 번도 배변 실수 없었음
■입양을 희망하는 분은 아래 입양신청서를 작성해주세요
- https://url.kr/yuthgq
■갈비는 개st하우스에 출연한 149번째 견공입니다 (106마리 입양 완료)
-입양자에게는 반려동물 사료 브랜드 로얄캐닌이 동물의 나이, 크기, 생활습관에 맞는 '영양 맞춤사료' 1년치(12포)를 후원합니다.
이성훈 기자 tellm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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