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할 것 같은 친절함, 외모 지상주의에 대한 경고
[이언정 기자]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Jacques Lacan)은 인간의 존재 의미를 '욕망'으로 함축한다. 결코 충족될 수 없는 결핍을 메우며 인간은 끊임없이 욕망한다. 현대 사회에서 남녀불문 우상시되는 욕망 중 하나가 바로 젊음이다. 전 국민 동안 시대가 기이할 법도 한데 그리 이상하지 않고, 젊음을 곧 돈으로 치환하는 시대이다.
데미 무어(Demi Moore), 마거릿 퀄리(Margaret Qualley) 주연의 영화 <서브스턴스(The Substance)>는 토할 것 같은 친절함으로 현대 사회의 지나친 외모 지상주의에 완벽하게 일갈한다. 이래도 젊어지고 싶니? 이래도 노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겠니? 이래도 외모에 집착할래? 이 정도면 충분하니? 결국 너를 만족시키는 것은 무엇이니? 관객을 끝까지 몰아붙인다. 특히 영화의 후반부는 가히 충격적이다. 그토록 불편하고 불쾌할 수가 없으며 영화를 끝까지 보는 것이 고통스러울 정도로 그로테스크(grotesque·기괴한), 언캐니(uncanny·이상한), 고어(gore·피범벅)를 다 갖춘 영화다.
영화 홍보 문구가 아주 정직하다 느껴질 정도로 근래 본 가장 미친 영화, 맞다. 영화 속에서 엘리자베스(데미 무어)의 등을 가르고 탄생한 수(마거릿 퀄리)의 등장과, 엘리자베스의 척수액을 다 뽑아버리는 수의 모습에 기겁한 심신을 안정시킬 틈도 없이 영화는 휘몰아친다.
▲ 영화 <서브스턴스> 속 데미무어 |
ⓒ 워킹타이틀필름스 |
현대 사회의 젊음에 대한 집착과 노화에 대한 두려움은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인간이 나이가 들어가며 노화를 겪는 것은 죽음만큼 당연한데, 그 당연한 걸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고통은 때론 처참할 지경이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고 했던가. 적당한 선에서 멈출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영화 속 그들처럼 멈추지 못해 끝내 자신을 파괴하고야 만다.
비교와 집착은 자신을 갉아먹는다. 흉측하게 변한 손가락을 가리고 자존감 회복을 위해 모처럼 데이트에 나서기로 마음먹은 엘리자베스. 그녀는 수의 눈부신 젊음을 따라가 보려다 결국 거울 앞에서 자괴감과 절망감 가득한 얼굴로 데이트 약속을 포기한다. 거울 앞 그녀는 스스로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그녀는 자기 존재의 의미를 자신에게서 찾지 못했다. 이를 계속해서 외부에서 찾고 타인의 시선에 자신을 가뒀다.
엘리자베스는 자신을 늙은 여자로만 보는 프로듀서 하비(데니스 퀘이드)의 시선에 한 번 갇혔고, 병원 앞에서 우연히 만나 동창이라 말하는 프레드의 시선에 또 한 번 갇혔다. 프레드는 여전히 아름답다며 엘리자베스를 칭송했지만, 그녀에게 흙탕물에 빠진 연락처가 적힌 종이를 건넨다. 그런데 과연 감탄사를 불러일으킬 만큼 여전히 아름다운 그녀에게 다 젖어 구질구질해진 종이를 건넬 남성이 몇이나 되겠나. 여분의 종이가 없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정작 그녀 자신은 그것을 모른다는 것이 내내 아쉽다.
타인이 자신을 예쁘게 보아주고 말고가 뭐 그리 중요한가. 스스로 자신을 예쁘게 보아주고 인정할 줄 알아야지. 영화는 노화를 자연스럽게 수용하지 못하고 추함으로 받아들여 자신의 현재를 거부하는 데까지 이르게 된 그녀를 끝까지 추적한다.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나를 들여다보는 지혜가 우리에게 있기를.
▲ 영화 <서브스턴스>의 젊은 수 |
ⓒ 워킹타이틀필름스 |
이보다 더 완벽한 캐스팅은 없을 정도로 데미 무어의 연기는 인상적이다. 영화 <서브스턴스>는 데미 무어에게 2025년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을 안겨줬다. 영화는 내내 정말 토할 것 같은 친절함으로 외모 지상주의와 젊음에 집착하는 이 시대를 비춘다.
▲ 영화 <서브스턴스> 스틸컷 |
ⓒ 워킹타이틀필름스 |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이언정 박사의 브런치(https://brunch.co.kr/@bu-actor)에도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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