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가족이 한 달 먹을 요리, 20만 원으로 해결했습니다

우재인 2025. 1. 8.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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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의 진두지휘로 밀키트를 완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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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재인 기자]

"우리 집으로 건너오셔."

지난해 연말, 휴직 중인 동생의 호출이었다. 그녀는 나에게 밀키트 가내수공업을 제안했다. 절대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었다. 난 요리에 취미 없는 엄마니까.

"먹고 싶은 요리 10가지 말해 봐."

내가 먹고 싶고, 배우자가 원하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요리 메뉴를 골라 카톡으로 보냈다. 찜닭, 닭갈비, 볶음밥, 짜장밥, 카레밥, 곤드레밥, 소불고기, 제육볶음, 잡채, 김밥, 리조또, 삼계탕, 부대찌개, 고등어조림 등등.

보내고도 살짝 민망함이 몰려왔다. 동생이 흑백 요리사도 아닌데 말이다. 그녀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겠지?

"아따 많구나. -_-"

동생의 답변을 보니 긍정의 신호다. 하루 불 싸질러 흑(黑)빛 요리사가 되겠다는 전투력이 보여 마음에 들었다.

"올 때 집에 있는 파, 미역, 지퍼백, 아이스박스 챙겨 와."

무려 15가지 메뉴를 한번에

나는 집에서 차로 25분 거리의 현장, 동생 집에 도착했다. 현관문을 열자 배송 온 게 잔뜩 쌓여 있었다.
▲ 식재료 도착 
ⓒ 우재인
'오늘 작업량이 만만치 않겠군.'

놀고 있던 어린 조카에게 인사하며 주방으로 향했다. 이미 그녀의 공장은 돌아가고 있었다.

"빨리 좀 오라니까."

뭔가 심기가 살짝 불편해 보였다. 감자를 깎고 물기를 빼고 있는 그녀를 애써 모른 척했다.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아침의 여유만은 즐기고 싶었다.

"조카~ 이모 커피 한 잔 내려 줘."

이미 이모에게 익숙해져 있던 초1 조카가 커피 한 잔을 말아왔다. 폭탄주 말 듯, 커피 추출액과 미지근한 물을 적당히 섞어서 말이다. 커피 한 잔을 스읍하고 동생에게 물었다.

"그래서 오늘 작업해야 할 게 뭔데?"

동생이 감자를 손에서 내려놓고 거실로 왔다.

"집에서 맨날 찔끔찔끔 요리하는 거 너무 귀찮고 시간도 뺏기고. 오늘 한 달 치 먹을 것 다 만들어서 냉동실에 쟁여놔야겠어."
"넌 맨날 뭘 그리 쟁여놓냐?"
"왜? 엄청 편해. 오늘 냉동실 터질지도 몰라."

뭔가 작업량에 압도되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이라도 줄행랑을 쳐야 하나 싶었다. 그녀가 오늘 작업할 메뉴를 보여주었다.

_닭 : 닭갈비, 찜닭, 닭곰탕, 닭 크림 스튜
_돼지 : 제육볶음
_소 : 소불고기
_햄 : 부대찌개, 햄 볶음밥
_채소 : 볶음밥, 짜장밥, 카레밥, 김밥, 잡채
_콩류 : 배추된장국
_해조류 : 미역국

저 펼쳐지는 베리에이션(variation)을 보라. 닭 하나로 4가지 요리를 한 번에, 채소를 썰어 오늘은 볶음밥, 내일은 짜장밥, 모레는 카레밥. 생각해 보니 환상적이다.

_무려 15가지 메뉴
_한 달 치 7인(3인 가족 + 4인 가족)의 식사량

이 어마어마한 작업량 앞에서 잠시 주춤했다. 언제나 그렇듯 요리를 잘 못하는 나는 후방으로 빠졌다.

"뭐 하면 돼?"

그녀의 작업 지시를 따르기만 하면 된다. (감자껍질) 깎으라면 깎고, (양파껍질) 벗기라면 벗기고, (당근) 썰라면 썰고, (양념) 저으라면 저으면 되었다.
▲ 당근채 한 가득 
ⓒ 우재인
▲ 썰고 또 썰고 
ⓒ 우재인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구닥다리 AI 로봇처럼 움직였다. 팔도 후들거리고 어깨도 욱신거리고 허리도 펴지 못한 채 3시간이 흘렀다.
▲ 각종 재료 준비 
ⓒ 우재인
▲ 카레 재료 섞기 
ⓒ 우재인
▲ 잡채 재료 섞기 
ⓒ 우재인
재료 손질이 어느 정도 끝난 후, 그녀는 휴대폰을 보면서 양념장을 만들었다. 간장 넣고, 참기름 넣고, 고춧가루 넣고, 얼린 마늘 넣고, 설탕 넣고, 후추 넣고를 반복했다. "잘 저어~ 가라앉는 것 없이." 나는 설탕이 잘 녹을 수 있도록, 마늘 덩어리가 고루 퍼지게 저었다. 내 나름대로는 말이다.
▲ 요리 양념 준비 
ⓒ 우재인
▲ 닭갈비 양념 
ⓒ 우재인
▲ 찜닭 양념 
ⓒ 우재인
감자는 살짝 익혀 넣고, 햄은 데쳐 넣고

양념이 완성되고 난 후 손질은 끝났다. 이제부터 진짜 '밀키트 가내수공업'이 시작되었다.

"잡아."

지퍼백을 펼쳐 재료를 담기 시작했다. 나는 또 시키는 대로 담기만 했다.

"찜닭이야. 닭 넣고, 감자 넣고, 당근 넣고, 양념 넣고."
"옙."

"3:4로 양 조절해서 넣어. 3 봉지씩."
"예썰!"

그렇게 15가지 요리를 지퍼백에 담았다.
▲ 닭크림스튜 포장 
ⓒ 우재인
동생의 치밀함에 놀랐다. 감자는 익는 시간이 오래 걸리니 살짝 익혀서 넣었고 햄과 어묵은 미리 데치거나 씻어서 물기를 빼놓았다. 거기에 부대찌개용 콩 통조림, 버터 네 큐브씩, 삶은 당면, 파와 마늘, 양념장까지 한꺼번에 다 넣어서 패킹하는 모습에 '대박'이란 말이 절로 나왔다. 그냥 이건 말 그대로 나 같은 요린이에게 딱인 '인스턴트 가정식 밀키트'였다.
▲ 가정식 밀키트 완성 
ⓒ 우재인
동생과 함께 만든 것들을 아이스박스에 꽉꽉 채워 집으로 왔다. 재료비가 20만 원 정도 들었다고 해서 나눌까 하다가 다 입금해줬다. 우리 식구 한 달 쟁여 놓을 요리를 한 것이니까.

냉동실 구석구석 채워 넣으니 보는 것만으로도 배가 불렀다. 한 달간 요리 걱정은 안 해도 되겠단 생각에 콧노래가 절로 났다. 지퍼백에 네임펜으로 이름을 쓰고 커피를 대령한 조카까지 3인 1조가 만들어낸 귀한 열매였다.

오늘도 한 덩이 꺼내서 10분 만에 요리 하나를 완성했다.

"이건 혁명이야!"

다가오는 방학 준비 끝! '돌밥돌밥'의 스트레스에서 해방시켜 준 동생에게 이 글로 고맙다고 전하고 싶다. 다음 달에도 만납시다.
▲ 가정식 밀키트 활용 
ⓒ 우재인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카카오브런치스토리에도 실립니다.이 기사는 카카오브런치스토리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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