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참상 알린 김준태 시집, 43년 만에 복간
[홍성식 기자]
▲ 김준태 시인. |
ⓒ 김준태 페이스북 |
지금까지 그랬듯 앞으로도 족히 100년은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옮겨 다닐 김준태의 시는 여전히 젊고 뜨겁다.
그는 1980년 5월 광주를 절절하게 노래한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를 썼다가 해직된 사람이다. 목숨을 걸고 참혹한 역사와 현실을 두려움 없이 노래할 수 있는 몹시 드문 작가인 것. 그의 용기와 빼어난 시편들은 20세기 많은 문학청년들에게 스승으로 역할했다.
김준태의 탁월한 시집 가운데 하나인 <나는 하느님을 보았다>가 지난 달인 12월 중순 복간됐다. 43년 만에, '도서출판 생명과문학'에 의해서다.
1981년 책이 첫 출간될 때 김준태 시인은 "시는 열정이고 사랑의 극치이며, 희망인 동시에 신뢰"라고 말했다. 시간이 흘렀다 해도 이 문장에 담긴 선명한 진실성은 바뀌지 않았을 게 분명해 보인다.
평론가 김치수 "잠든 우리의 의식을 깨우는 충격"
그렇다면, 열정과 사랑, 희망과 신뢰로 행간의 여백을 메운 <나는 하느님을 보았다>를 다시 접한 이들은 어떤 감상과 평가를 남겼을까?
"시인은 고향의 사물을 통해 사람을 만나고 고향을 만나며 그 고향을 통해 사람에 대한 사랑에 도달한다. 다시 말하면 사람에 대한 사랑 없이는 고향을 찾을 수 없고 '하느님'을 볼 수가 없는 것이다. 대단히 거친 것처럼 보이는 그의 시적 표현들은 언제나 두 개의 강렬한 이미지들이 맞부딪침으로 인해 끊임없는 불꽃을 튀게 만들고 있고,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의 잠든 의식에 충격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김준태의 시를 해석한 문학평론가 김치수의 말이다(출판사 책소개 참조). 여기에 김 평론가는 이런 견해를 덧붙인다.
"김준태의 시에 나타나고 있는 서사시적인 요소는 우리 삶의 고향을 되돌려 주는 강렬한 이미지와 그 이미지를 이끌고 가는 전통적인 리듬으로 요약될 수 있다."
시집에 실린 동명의 시는 이렇게 시작된다.
'1980년 7월 31일
저물어 가는 오후 5시
동녘 하늘 뭉게구름 위에
그 무어라고 말할 수 없이
앉아 계시는 하느님을
나는 광주의 신안동에서 보았다…'
당연지사 시는 은유와 상징 없이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1981년 30대 중반이었던 김준태가 도심 한복판에서 본 '하느님'은 무엇의 은유이고 상징이었을까? 시의 마지막 부분을 읽어보면 누구나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군사 독재가 지배하던 어둡고 우울했던 그 시절. 시인 김준태는 어떤 상황이 와도 '절망하지 않고, 미움을 이유로 울지 않으며' 살겠다고 다짐한다. '목숨이 붙어있는 하찮은 것들 모두를' 소중히 여기겠다고 약속한다. 그랬기에 '사람이 만든 것이라면/ 입 맞추고 입 맞추고 또 입 맞추고 살아가리라'고 환하고 뜨겁게 맹세할 수 있었다.
나는 43년 전 김준태의 다짐과 약속, 그리고 맹세가 지켜지고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 43년 만에 복간된 김준태 시집 <나는 하느님을 보았다>. |
ⓒ 생명과문학 |
운문만이 아니라 산문 쓰기에도 능한 김 시인은 <백두산아 훨훨 날아라> <세계 문학의 거장을 만나다> 등도 출간하며 독자의 폭을 넓혔다.
고등학교 교사, 대학 초빙교수, 언론사 부장 등을 거친 그는 제10대 5·18기념재단 이사장을 지냈다.
이번에 복간된 생명과문학판 <나는 하느님을 보았다>엔 주목해 읽을 만한 작품이 여럿이다. 그 가운데 '사람 노래', '할아버님 생각', '벌판에 서서' 등을 추천하고 싶다.
끝으로 한 가지를 덧붙인다. 시 '나는 하느님을 보았다' 첫머리엔 마하트마 간디의 말이 인용돼 있다. 이런 문장이다.
"인간성에 대한 신뢰를 잃어서는 안 된다. 인간성이란 바다와 같은 것이어서, 설령 바닷물의 한쪽이 더럽혀진다 해도 그 바다 전체가 더럽혀지지는 않는 것이다."
사람에 대한 믿음만 있다면 결코 세상 전체가 모두 더러워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종교와 닮은 강고한 신념.
김준태와 마하트마 간디만이 아닌 세상 사람들 대부분이 간직한 이 신념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해줄 '하느님'은 2025년 오늘, 어디 있을까? 시집을 덮으며 든 의문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경북매일신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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