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를 위한 탈시설, 모두를 위한 지역사회돌봄
[조경애]
기자말 |
최근 '서울특별시 장애인 탈시설 및 지역사회 정착지원에 관한 조례'(이하 서울시탈시설지원조례)가 폐지되는 등 장애인 탈시설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국제적으로는 탈시설이 장애인의 권리로 인정받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오세훈 서울시장이 공공연히 "장애인의 탈시설과 자립생활엔 천문학적인 비용이 든다"는 취지의 인터뷰를 하는 등, 비용 문제를 이유로 시설 수용을 확대하려는 움직임이 정당화되고 있습니다. 이는 장애인의 권리를 숫자나 비용으로만 보는 잘못된 접근입니다. 탈시설은 보호가 아닌 존엄과 권리의 문제로 다뤄져야 합니다. 탈시설을 둘러싸고, 특정 탈시설 반대 세력들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퍼지고 있습니다. 이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탈시설의 볼륨을 더욱 높이고자 본 기획 연재를 시작합니다. |
▲ (재)돌봄과미래와 연세대 글로벌정책 및 관리인력양성팀이 공동 주최로 2023년 3월 28일 '전국민돌봄보장' 정책세미나를 개최했다. |
ⓒ (재)돌봄과미래 |
노인돌봄 정책에는 2008년 도입된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가 있다. 현재 장기요양등급 인정자수는 109만 7913명이며, 1년 동안 요양서비스 이용자는 재가 이용자 121만 3624명, 시설 이용자 20만 9190명이다. 재가에서 가족을 돌보는 요양보호사도 16만 3000명에 이른다.(2023.12.31.기준). 이 외에도 많은 고령자가 요양병원에 입원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요양병원은 1393개소(2023년기준)이며, 병상수는 노인인구 1000명당 35.6개로 OECD 평균 3.9개와 비교하면 9배나 많다. 요양병원이 급증하면서 돌봄이 필요한 노인이 요양병원 입원을 선택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1960년대생의 돌봄 인식은 '우리 사회에서 돌봄은 반드시 필요하다'에 98%가 응답했다. 노년에 돌봄이 필요할 때 원하는 곳은 '살고 있던 집' 52%, '노인요양시설' 22%, '실버타운' 20% 순으로 나타났다. 요양시설에 입소해야 할 때 선호하는 곳은 '공공' 52%, '민간' 17%, '잘 모르겠다' 31%로 나타났다((재)돌봄과미래, 2024). 또한 우리나라 중장년층 중 절반은 부모님이 돌봄이 필요할 경우 돌보겠지만 자녀는 자신을 돌봐주지 않는 돌봄 끼인 세대상황에 처해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재)돌봄과 미래, 2023).
초고령사회를 앞두고 폭발적으로 터져나오는 노인돌봄 욕구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의 노력이 시작되었다. 문재인 정부는 2018년부터 지역사회돌봄 정책을 수립하여 16개 기초지방자치단체에서 선도사업을 시작했다. 윤석열 정부도 지역사회돌봄을 국정과제로 삼아 시범사업을 계속하였고 광주시와 대전시, 경기도에서도 지역사회돌봄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리고 지난 21대 국회가 끝나갈 시점인 2024년 2월 29일 국회 본회의에서 '의료·요양 등 지역 돌봄의 통합지원에 관한 법률(돌봄통합지원법)'이 통과되었다. 이 법에 따라 제도 시행의 준비기간을 거쳐 2026년 3월 27일부터는 전국 모든 지방자치단체에서 지역돌봄통합지원을 시행하게 될 것이다.
▲ (재)돌봄과미래 임원들이 장애인 탈시설 지원주택 '프리웰지원주택' 현장 방문하여, 장애인 지원주택의 현황과 과제에 대한 발표를 듣고 장애인과 노인을 위한 지원주택 정책방향을 논의했다. |
ⓒ (재)돌봄과미래 |
"노쇠, 장애, 질병, 사고 등으로 일상생활 수행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살던 곳에서 계속하여 건강한 생활을 영위하도록 의료·요양 등 돌봄 지원을 통합·연계하여 제공하는 데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국민의 건강하고 인간다운 생활을 유지하고 증진하는 데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하였다(제1조).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살던 곳에서 생애말기까지 건강하고 존엄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고 지역돌봄을 수행할 책무를 규정하였다(제4조).
"통합지원 대상자"란 노쇠, 장애, 질병, 사고 등으로 일상생활 유지에 어려움이 있어 복합적인 지원을 필요로 하는 노인, 장애인 등으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람으로 정하고 있다(제 2조 2항). "통합지원"이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장이 보건의료, 건강관리, 장기요양, 일상생활돌봄, 주거, 그 밖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분야의 서비스 등 직접 또는 연계하여 통합적으로 제공하는 것"이라고 규정하였다(제2조 1항).
"일상생활돌봄"에는 가사활동 지원 서비스, 이동지원 서비스, 보조기기에 관한 서비스, 주간 또는 야간 통원 서비스, 정보통신기반 서비스, 주거 공간의 확보·제공 또는 주거 환경 개선 등 주거지원 서비스, 퇴원 또는 퇴소자의 지역사회 복귀 지원 서비스 등을 명시하고 있다(제18조). 또한 통합지원 대상자의 가족, 보호자 등의 신체적·정신적 건강 유지·관리를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의무 조항을 두었다(제19조).
위와 같이 주요 법 조항만 보더라도 돌봄 대상자의 범위부터 여러 조항들이 모호하며 구체적인 내용은 시행령과 시행규칙에 위임하고 있다. 앞으로 시행령과 시행규칙에 담겨야 할 내용에 대해 돌봄 당사자를 대표하는 각계 각층이 정책결정에 참여하는 노력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장애인돌봄에 대한 정책을 돌봄통합지원제도에 어떻게 담을 것인가에 대한 연구와 논의가 시급하다. 첫째, 장애인 중 고령장애인이 약 143만 명(53.9%)으로 등록장애인 264만 1896명의 절반이 넘으며 매년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노인과 장애인이 혼자서 일상생활을 하기 어려운 점에서는 많은 부분 공통적인 돌봄욕구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노인돌봄이 갖추어지면 장애인에 확대하기만 하면 될 것인가.
둘째, 2023 등록장애인 현황 통계에 따르면, 65세 이전에는 지체장애, 발달장애(특히 지적장애), 청각장애가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반면, 65세 이상에서는 지체장애, 뇌병변장애, 청각장애, 시각장애 순으로 나타났다. 이는 고령층에서 노화성 질환으로 인한 장애 발생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65세 미만의 장애인은 얼마나 어떤 돌봄욕구를 가지고 있을까. 노인성 질환 등으로 장애가 발생하더라도 장애등록을 하지 않은 노인의 돌봄욕구는 노인장기요양서비스로 충분한가.
셋째, 장애인은 고령자에 비해 사회적 활동과 참여의 욕구가 높을 것이고, 장애 유형이 다양한 만큼 장애 유형별로, 심한 정도별로, 장애의 원인별로 다양한 욕구와 복합적인 욕구를 가지고 있다. 장애인 특성에 따른 장애인의 돌봄욕구를 파악하여 그에 맞는 돌봄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때 장애인을 위한 돌봄통합지원법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넷째, 법에는 명시적으로 장애인을 돌봄통합지원 대상자로 명시하고 있지만, 정부가 추진중인 시범사업에 장애인은 대상이 아니다. 2025년 시범사업에는 반드시 장애인도 돌봄 대상에 포함하여 장애인의 돌봄 욕구를 파악하고 돌봄서비스를 제공할 체계를 준비해야 할 것이 아닌가.
▲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과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 등 8개 단체가 2024년 7월 19일, ‘모두를 위한 탈시설 토크 콘서트’를 열고 탈시설한 발달장애인 당사자뿐만 아니라 정신장애 당사자, 청소년의 탈시설, 노인의 탈원화, 시설 중심이 아닌 지역사회 내 의료지원 체계를 말하는 이들과 만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다. |
ⓒ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
장애인활동지원 수급자는 15만 1259명이다(2023년 기준). 심한장애인 97만 8634명 중에서도 15% 정도만 해당된다. 장애인활동지원제도 시행으로 장애인의 지역사회 내 거주와 참여 기회가 확대되었지만, 여전히 수급자 확대, 활동지원 시간의 확대, 의료서비스 욕구 해결, 활동지원사의 역량 강화 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장애인이 65세가 되면 활동지원서비스는 중단되고 노인장기요양 대상자가 되어 활동지원서비스가 대폭 줄어들어 당사자의 고충이 심각하다. 다행히 기존 활동지원 수급자는 65세 이후에도 유지하도록 변경되었지만, 65세 이후에 새롭게 장애인 등록을 하는 경우에는 활동지원서비스를 받을 수 없다. 두 제도 운영에서 나타나는 제한점이 돌봄통합지원법의 시행을 통해 노인이든 장애인이든 당사자의 돌봄욕구를 충분히 해결하는 방향으로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누구나 지역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주택이라는 공간과 돌봄서비스가 결합된 주거환경이 필요하다. 우선 고령자의 주택개조 지원을 대폭 확대할 필요가 있다. 노쇠하여 일상생활이 어려운 고령자에게 안전하고 편리한 주거 환경이 부족하면 어쩔수 없이 시설 입소를 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보행기와 휠체어 이동이 가능하도록 문턱 없애기, 미끄럼 방지, 안전손잡이 등은 물론 각종 보조기기를 제공하여 최대한 살던 집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주택개조만으로 내 집에서 살기가 어려울 경우에는 주거와 돌봄서비스가 결합된 지원주택의 공급을 확대해야 한다. 지원주택을 마련하여 시설에서 지역사회로 나오도록 지원하는 것 뿐만 아니라 지역사회 돌봄을 충실하게 지원하여 원하지 않는 시설 입소를 막는 것도 탈시설화라 할 수 있다.
국토교통부와 보건복지부는 장애인의 탈시설과 자립생활을 위한 지원주택 공급, 고령자가 지역사회에서 살 수 있는 지원주택의 공급을 위해 협력함으로써 돌봄통합지원법의 시행을 준비해야 한다. 서울시가 장애인지원주택 조례를 폐지한 것은 현 정부의 국정과제를 도외시한 시정이다. 서울시는 돌봄통합지원법에 따라 고령자와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안전하게 자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주거정책을 새롭게 짜야 할 것이다.
지역돌봄통합지원은 돌봄이 필요한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새로운 돌봄제도가 될 것이다. 혼자 생활하기 어려운 고령자와 장애인이 집으로 찾아가는 의료, 간호, 복지, 요양 등 다양한 방문서비스와 주야간보호서비스를 이용하며 생활하게 될 것이다. 가족돌봄 중심에서 사회적 돌봄 중심으로 변하는 것이다(탈가족화). 내 집과 지역사회에서 살아가기 어려운 상황이 되면 시설이나 병원에 입소하거나 입원하여 집중적인 의료, 요양서비스를 받고 나서 집으로 퇴소, 퇴원할 것이다(탈시설화). 시설돌봄과 병원의 질과 수준이 높아져야 하고 집으로 찾아가는 지역돌봄 통합지원이 충분해야 가능하다. 돌봄 가족이 없어서나 집에서 살 형편이 안되서 시설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기능상태와 욕구에 맞춰 집이나 병원, 주거서비스 기관 등을 오가며 돌봄을 받을 수 있게 될 것이다(순환적 돌봄).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민간기관들과 협력하여 지역돌봄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을 상상하며 누구도 배제하지 않고 보편적인 돌봄권을 보장하는 지역돌봄통합지원제도를 만들도록 요구하고 협력해나가야 한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조경애씨는 (재)돌봄과 미래 사무처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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