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계엄의 밤' 시민들의 다급했던 목소리 "전쟁 났나"
[복건우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3일 저녁 기습적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국회 주변에 등장한 무장한 계엄군에게 시민들이 항의하고 있다. |
ⓒ 권우성 |
"가짜뉴스죠? 나도 믿기지가 않아서 지금." (2024년 12월 3일 밤 10시 32분 다산콜센터 민원 녹취록 일부)
"서울 시내에 장갑차가 나오는 게 맞아요?" (12월 3일 밤 11시 47분)
"전두환 그때 시절도 아니고 무슨 느닷없이." (12월 3일 밤 11시 50분)
"5.18이 벌어지고 있어요. 군인이 국민을 탄압해요." (12월 4일 새벽 0시 32분)
"심장이 쿵쾅쿵쾅 뛰어서 전화 드렸는데요. 어제 새벽 계엄 선포한 것 때문에 제가 너무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아서. 하루 종일 일도 안 잡히고 잠도 안 오거든요." (12월 4일 오후 8시 21분)
긴박한 밤이었다. 12·3 비상계엄으로 시민들은 '믿을 수 없는' 불안 속에서 '잊을 수 없는' 공포에 시달렸다. 그날의 계엄은 5.18 민주화운동을 상기시켰다. 누군가는 죽음을 생각할 만큼 두려워했고, 누군가는 잠 못 이룰 만큼 힘들어했다. 앞선 시민들의 민원(다산콜센터 문의 내역)은 '내란죄 피의자' 윤석열 대통령이 이 사회에 남긴 '계엄 트라우마'에 대한 증언이기도 했다. 계엄이 시민들에게 어떤 혼란과 교착을 가져오는지가 이 민원에 생생하게 담겼다.
8일 <오마이뉴스>는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서울시 120다산콜재단으로부터 제출받은 '계엄 관련 다산콜센터 문의 내역 및 건별 녹취록'을 전수 분석했다. 비상계엄의 막전막후, 2024년 12월 3일 밤 10시부터 4일 자정까지 다산콜센터에 접수된 문의 중 '계엄' 단어로 검색되는 내용을 모았다. 다산콜센터는 서울시에 대한 민원 신고와 행정 상담을 제공하는 기관이다.
첫 통화(3일 밤 10시 32분)부터 마지막 통화(4일 밤 11시 27분)까지 총 179건의 문의가 들어왔고, 비상계엄이 선포된 3일 밤 10시 30분부터 계엄이 해제된 4일 새벽 1시 사이에 대부분의 통화가 집중돼 있었다. 녹취록 내용은 시민들과 다산콜센터 상담사 간 대화였다.
▲ 윤석열 대통령이 2024년 12월 3일 저녁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4일 서울 국회의사당에서 계엄군이 국회 본청으로 진입하고 있다. 2024.12.4 |
ⓒ 연합뉴스 |
시민: "선생님이 봤을 때도 지금 심각한 상황인가요. 제가 이해가 잘 안 돼가지고."
상담사: "교과서에서만 봤던 그런 상황이라서. (...) 도움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12월 3일 밤 11시 53분)
비상계엄이 선포된 직후 불안을 호소하는 시민들의 민원이 빗발쳤다. 다산콜센터에 전화한 시민들은 "가짜뉴스죠. 나도 믿기지가 않아서"(3일 밤 10시 32분)라며 사실관계를 확인하거나, "어디 도망가야 하나"(밤 10시 56분), "군대가 내려오지 않을까. 지금 너무 불안하다"(밤 11시), "지금 무슨 전쟁 났나요. 북한에서 쳐들어온 거예요"(밤 11시 6분) 등의 반응을 보였다.
상담사도 비상계엄 당시 상황을 정확히 알지 못하는 듯했다. "저희도 뉴스 속보와 문의 전화로 확인했다"라고 답변하거나 "서울시에서 내려온 지침이나 공지가 없다", "정부 민원 콜센터(110)로 문의해 보셔야 한다"라는 안내만 반복할 뿐이었다.
3일 밤 11시 포고령이 발령된 뒤인 11시 20분에는 "만약에 서울 올라가면 제가 죽을 수도 있나요"라며 두려움을 호소하는 한 시민의 민원이 접수되기도 했다. 그가 "사람 죽이는 일 없었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하자 상담사는 "저도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전화 받으시는 분도 총 맞고 죽을 수 있으니까 조심해요"(3일 밤 11시 30분)라며 통화 말미 상담사에게 걱정을 전한 시민도 있었다.
집회의 자유부터 출근·등교 등 일상생활에 대한 우려도 쏟아졌다. "집회가 안 된다는 얘기가 있던데 맞나요"(3일 밤 11시 29분)라는 문의에 이어 "국민들은 회사도 직장도 못 가는 거예요"(3일 밤 10시 41분), "내일 아이들 학교로 갈 수 있나요"(3일 밤 10시 58분), "가스나 전기 끊길 일 없겠죠"(4일 새벽 0시) 등 전화가 계속됐다.
이들의 우려는 직업을 가리지 않았다. "내일 대중교통 통제나 운행 중단은 아직 없죠. 제가 버스 운행을 해야 하는데"(3일 밤 11시 35분), "서울 어느 구청에서 근무하는 공무원인데요. 계엄령 관련해서 출근이나 공문 내려온 게 있나요"(4일 새벽 0시 29분), "제가 여행사 하고 있는데요. 공항은 문제가 없는 거죠"(4일 새벽 0시 47분) 등의 문의가 이어졌다.
곧 출국을 앞둔 이들도 불안해하긴 매한가지였다. "10일 뉴욕 가는데 못 가는 거예요"(3일 밤 11시), "내일 일정대로 출국 가능한가요"(3일 밤 11시 23분), "우리 아들이 귀국해 있는데 내일 출국해야 해요"(3일 밤 11시 50분) 등 녹취록에는 당시의 혼란스러운 상황이 담겼다.
▲ 윤석열 대통령이 긴급 담화를 통해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2024년 12월 3일 밤 여의도 국회의사당 위에 헬기들이 떠 있다. |
ⓒ 연합뉴스 |
윤 대통령과 정부를 향한 비판도 내내 이어졌다. "서울시에 군대 진입하나요. 대통령이 좀 제정신이 아닌 것 같은데."(3일 밤 11시 20분) "국민들이 자기 끌어내릴까 봐 저녁에 아무것도 못 하게 비상계엄하고. 미친놈 아니에요."(3일 밤 10시 57분) "윤 대통령이 정치를 하는 게 우스워 죽겠어요."(4일 새벽 0시 45분)
서울시를 향한 질타도 치솟았다. "이렇게 불안하게 만드는데 서울시에서 안전 문자 하나가 없어요. (...) 편안하게 지금 오세훈이 자고 있단 얘기죠"(3일 밤 11시 19분)라는 비판에 이어, 대통령 관저 옆에 산다는 한 시민은 상담사와 이런 얘기를 주고받았다.
"지금 윤 대통령 서울에 살지 않나요. (...) 근데 서울시에서 아무런 발표가 없는 게 말이 안 되잖아요. 집회도 안 된다고 지금 언론에서 나오고 있는데. (...) 서울시에서도 어떤 입장을 내야 하지 않겠어요. 저 사람(윤 대통령) 용산구 한남동 살잖아요. 저희 아파트 옆에 살잖아요. 저 사람도 서울시민인데 서울시에서 발표를 내셔야죠." (12월 3일 밤 11시 49분)
윤건영 민주당 의원은 "온 국민이 놀란 가슴을 부여잡았던 계엄 당일 콜센터 신고들을 보면 어처구니없는 계엄 선포가 국민에게 얼마나 큰 공포와 불안을 떠넘겼는지 생생하게 알 수 있다"라며 "국민을 '계엄 트라우마'에 시달리게 하는 심각한 사태를 저질러 놓고도 윤석열씨와 여당이 아직까지 제대로 된 반성도 사과도 없다는 점이 더욱 참담하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윤석열씨는 황당한 궤변을 대며 체포영장에 응하지 않고 경호원 뒤에 숨을 게 아니라 지금이라도 당장 제 발로 나와 수사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 그것만이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는 길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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