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의 연장수당, 이제까지 도둑맞고 있었습니다
[이동철 기자]
▲ 근로기준법이 연장근로에 1.5배의 가산율을 적용한 이유는 사용자에게 잔업에 따른 임금 지급 부담을 줘 장시간 노동을 억제하기 위해서입니다. 자료사진. |
ⓒ 픽사베이 |
양씨는 보통 하루에 3시간씩 한주에 4일 12시간 정도 잔업을 합니다. 한 달로 따지면 52시간이 됩니다. 양씨의 월 기본 노동시간이 1주 40시간씩 한 달에 평균 4.34주 약 170시간이므로 한 달 잔업 시간이 기본 근로 시간의 3분의 1에 육박합니다.
연장근로 수당은 근로기준법 제56조에 따라 통상임금에 1.5배를 가산하여 지급합니다. 근로기준법이 연장근로에 1.5배의 가산율을 적용한 이유는 사용자에게 잔업에 따른 임금 지급 부담을 줘 장시간 노동을 억제하기 위해서입니다.
연장근로수당 낮추려는 기형적 임금체계
노동 현장에서는 이러한 연장근로 가산제도가 기형적으로 작동합니다. 계절적 요인 등으로 일거리가 늘어나면 활용하게 되어 있는 연장근로가 일상화된 것입니다. 주문이 늘어나는 등 연장근로 사유가 발생해 연장근로를 하는 것이 아니라, 적정 인력보다 적은 인력을 유지하면서 기존 노동자를 연장근로 시켜 인건비를 줄이려 합니다. 노동자 역시 임금 총액이 늘어나기 때문에 암묵적으로 이러한 장시간 노동 관행은 오래도록 우리나라 주요 산업에 자리 잡았습니다.
이는 연장근로 등 초과 노동의 가산 기준이 되는 통상임금이 낮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자동차를 비롯해 대한민국의 주요 산업체의 임금구조를 보면 최저임금 수준의 기본급에 식대와 정기 상여금, 그리고 연장근로와 같은 시간 외 수당으로 임금 총액이 구성됩니다.
여기에서 연장근로 시 가산율이 적용되는 통상임금에는 원칙적으로 기본급과 식대, 정기 상여금이 포함되어야 합니다. 소정근로시간이라고 하여 1일 8시간, 한주 40시간의 법정 근로시간 이내의 범위에서 근로계약을 통해 일하기로 정한 시간을 노동하면 무조건 지급되는 임금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많은 노동 현장에서 식대와 정기 상여금을 통상임금 산정에서 제외합니다. 한 달에 최소 며칠 이상 재직해야 지급한다는 이른바 '재직자 조건'이 붙어 있기 때문입니다.
회사입장에서 식대와 정기 상여금은 기본급에 포함되어 책정된 기본 인건비입니다. 소득세법에 따라 20만 원까지는 비과세가 되기 때문에 식대로 이를 분리한 사업장이 대부분입니다. 기본급이나 다름없는 정기 상여금에는 '지급일 당시 재직 중인 자에게만 지급한다' 혹은 '15일 이상 재직한 자에게 지급한다'는 등의 요건이 붙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재판부는 이러한 재직자 요건이나 재직 일수 요건이 붙은 정기 상여금은 고정성이 없기에 통상임금 산정에서 제외된다는 취지의 판결을 했습니다.
기본급만으로 구성되는 낮은 통상임금에 1.5배를 가산해 봐야 회사 차원에서 연장근로를 시키는 데 부담이 없습니다. 노동자들은 더욱 많은 수당을 위해 정말 열심히 연장근로를 해야 합니다.
양씨가 1일 약 11시간씩 수요일을 제외하고 1주일에 52시간씩 한 달을 일하고 받는 월급은 세전 약 380만 원입니다. 기본급 약 206만 원, 식대 20만 원, 여기에 연장근로수당 약 77만 원에 정기 상여금으로 기본급의 600%를 설, 추석, 여름휴가 포함 15개월로 나눈 약 82만 원을 매월 받습니다. 연장근로수당이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 임금의 약 20%가 넘습니다. 휴일근로를 하게 되면 30%가 넘어갑니다.
한국의 장시간 노동의 구조적 원인이 여기에 있습니다. 원래 기본급으로 통상의 노동에 대한 가치로 줬어야 하는 임금을 연장근로수당을 낮추기 위해 각종 편법으로 기본급에서 분리해 포도송이처럼 주렁주렁 헝클어 놓은 기형적 임금구조는 노동자의 기본적 노동의 가치를 왜곡합니다.
지난해 12월 19일 대법원 전원합의체 재판부는 2013년에 제시한 법리를 뒤집고 '재직자와 재직 일수 등의 요건이 붙은 정기 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라는 취지의 판결을 했습니다. 이른바 '고정성' 요건이 사라지게 된 것입니다.
통상임금이란 연장근로수당 등 법정수당을 산정하기 위한 도구이므로 정상적으로 일할 것을 전제하여 지급하기로 한 소정 근로에 대한 대가는 통상임금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이 이번 판결의 요지입니다. 이 기준에 따르면 소정 근로를 온전히 제공하면 모두에게 지급하기로 정한 식대나 정기 상여금은 재직자나 재직 일수 요건이 붙었더라도 이제부터는 통상임금에 포함되어야 합니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근로기준법'이 통상임금을 정한 정책 목표에 부합하는 판결입니다. 근로기준법 제56조에서 사업주에게 연장 및 야간, 휴일근로를 시키면 통상임금의 1.5배를 가산하도록 정하고 이를 위반한 사업주에게 3년 이하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정한 이유는 명확합니다. 초과 노동에 임금 부담을 지워 사업주가 노동자의 건강과 자유를 제약하는 장시간 노동을 억제하기 위함입니다.
▲ 대법원 |
ⓒ 이정민 |
최근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앞으로 양씨의 연장근로수당은 월 약 37만 원 이상 늘어 납니다. 연장근로 1시간에 가산율을 적용하는 시급이 기존에 9860원(기본급 206만 원/209시간)에서 약 1만 4700원(기본급+식대+정기 상여금/209시간)으로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회사로서는 양씨에 대해 연장근로를 시키면 인건비가 기존에 비해 약 30% 이상 증가하지만, 이는 달리 말하면 이제까지 양 씨의 연장근로는 30% 이상 저평가되었다 볼 수도 있습니다.
대법원이 이번 판결에서 지금까지 근로기준법에 아무런 규정이 없는데도 임의로 '재직자' 혹은 '재직 일수'를 요건으로 정기 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해 온 기업의 꼼수를 바로잡은 것까지는 좋았습니다. 그런데 판결 법리의 적용 범위를 제한한 것은 아쉽습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새로운 법리가 이 판결 선고일 이후의 통상임금 산정부터 적용된다고 판결했습니다. 새로운 법리를 전면적으로 소급 적용하면 "종전 판례를 신뢰하여 형성된 수많은 법률관계의 효력에 바로 영향을 미침으로써 법적 안정성을 해치고 신뢰 보호에 반하게 된다"라는 이유 때문입니다. 유려한 문장으로 설명했지만, 기업의 부담을 고려했다는 말로 이해됩니다.
지금까지 연장 노동에 대해 사업주로부터 30% 이상 가치 절하 당해온 노동자들의 처지에서 이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노동조합이 있는 일부 소수 노동자만 회사를 상대로 정기 상여금을 포함한 통상임금 재산정을 청구했을 뿐입니다. 노조도 없고 먹고살기 바빠 신경 쓸 겨를이 없던 양씨를 비롯한 다수 노동자는 이전 기간 정기 상여금이 반영 안 된 통상임금 산정으로 연장근로수당을 제대로 받을 권리가 훼손되어도 좋다는 뜻인가요?
양씨는 이제 52시간 연장근로를 꽉 채우지 않아도 됩니다. 연장근로가 조금 줄더라도 기본급에 해당하는 통상임금이 늘어 임금 총액이 유지될 수 있습니다. 이번 대법원의 통상임금 판결을 계기로 연장근로수당을 낮추려고 꼼수로 정기상여금과 식대 등을 기본급에서 분리해 온 관행을 없애 임금체계를 단순화하고 기본급을 현실화해야 합니다. 그래서 노동자들의 연장근로에 대한 가치가 정당하게 평가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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