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때문에 해고되는 시대, 점토로 만든 애니매이션의 자신감
[최해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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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월레스와 그로밋: 복수의 날개> 스틸컷 |
| ⓒ 넷플릭스 |
대체할 수 없는 일이 아니라, 대체돼서는 안 되는 일
<월레스와 그로밋: 복수의 날개>는 내용 면에서부터 명료하게 인공지능의 오남용을 지적한다. 영화는 언제나처럼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는 발명가 '월레스'와 그의 절친 겸 반려동물 '그로밋'의 사이가 틀어지면서 시작한다. 월레스가 그로밋의 정원 일을 도와주겠다며 정원사 로봇 '노봇'을 만든 것이다.
노봇은 그야말로 '캐릭터로 구현된 인공지능' 그 자체다. 그로밋이 꽃과 나무로 개성 있게 가꾸어 놓은 정원을 몰개성한 풀밭으로 만들어 놓는 장면은 '척 봐도 AI가 만든' 그림을 뽑아내는 생성형 인공지능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월레스와 그로밋: 복수의 날개>는 인공지능에 대한 조롱뿐 아니라 그 위험성에 대한 경고도 확실히 한다. 작중 노봇은 지나치게 긴 충전 시간과 소음으로 그로밋의 수면을 방해하는데, 이는 AI가 가져온 '에너지 위기'를 묘사하는 장면이 분명해 보인다.
영국 바클리스 투자은행과 미국 에너지 관리청(EIA)의 연구에 의하면, 생성형 AI는 현재도 미국 전기 생산량 전체의 3.5%라는 큰 비중을 소모하고 있으며, 2030년에는 9%에 달하는 에너지를 소비할 것으로 보인다. 국가의 에너지 중 10분의 1에 가까운 양이 오로지 인공지능을 위해 쓰이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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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월레스와 그로밋: 복수의 날개> 스틸컷 |
| ⓒ 넷플릭스 |
영화는 자신의 '발명품'을 통해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던 월레스가 그로밋에게 사과하면서 끝난다. 월레스는 인공지능에 일상을 떠넘기는 정도가 심각해져 그로밋을 쓰다듬는 일까지 로봇에게 맡길 정도였는데, 마지막에는 그동안의 행보를 반성하며 손으로 직접 그로밋을 쓰다듬어 준다.
로봇이나 월레스나 거친 손길로 그로밋을 쓰다듬는 건 매한가지지만, 그로밋은 자기 친구의 쓰다듬기에 더 행복해한다. 여기서 '쓰다듬'을 '인간의 일'로 해석할 수도 있어 보인다. AI가 '결코 대체할 수 없는 일'이 있다고 호언장담하던 과거의 영화들과 달리, <월레스와 그로밋: 복수의 날개>는 AI가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음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 대신 우리에게 창작과 일상, 서로에 대한 사랑 등 '결코 대체돼서는 안 될' 일들을 지켜나가자는 메시지를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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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월레스와 그로밋: 복수의 날개> 포스터 |
| ⓒ 넷플릭스 |
<월레스와 그로밋> 시리즈는 1972년 설립된 애니메이션 회사 아드먼(Aardman)에서 제작돼 왔다. 이들은 점토 모형을 조금씩 움직여 가며 영상을 만들어 내는 전통적 스톱모션(stop-motion) 양식을 고수해 왔는데, 2023년에는 제작에 필요한 특수 점토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밝혔다. 거기다가 텔레비전 프로그램 < Lloyd Of The Flies >(로이드 오브 더 플라이즈)의 흥행 실패로 당해 72만 달러에 달하는 손해를 보면서, 20개의 일자리를 '잘라내는' 대대적 예산 감축을 시행해야 했다.
다행히도 아드먼은 추후 프로젝트에 사용할 점토를 새 공급사에서 받기로 한 것으로 밝혔고, 본작 <월레스와 그로밋: 복수의 날개>도 관객과 평단 모두에게 좋은 평을 받으며 스튜디오의 '재기의 발판' 역할을 톡톡히 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AI로 인한 창작가들의 고통은 단번에 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슈렉> 시리즈로 유명한 드림웍스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는 70명에 달하는 노동자를 해고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디즈니의 픽사 역시 전체 근무자의 14%와 계약을 중단하는 행보를 보인 바 있다.
이러한 작금의 상황에서, 애니메이션 종사자들의 손으로 직접 제작된 <월레스와 그로밋: 복수의 날개>의 비평적 성공은 자리를 위협받고 있는 창작가들에게 그나마 위안이 되는 소식이다. AI를 동반한 영화 제작은 훨씬 간편하겠지만, 관객들은 사람이 직접 만든 '작품'을 보고자 한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AI의 위협이 더욱 구체화되고 있는 신년, <월레스와 그로밋: 복수의 날개> 시청을 통해 아직 건재한 '점토 애니메이션'의 힘을 확인해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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