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략이 낳은 반쪽짜리 공수처… 내란죄 수사서 청구서 날아왔다

이경원 2025. 1. 7.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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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정부서 공수처 출범 시킨 민주당
尹체포 실패에 “처장 탄핵”
곳곳서 법적 미비점 노출
오동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이 7일 오전 정부과천청사 내 공수처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오동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은 지난달에만 다섯 차례 국회에 불려나왔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오 처장을 야단치듯 하며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강력한 수사를 주문했다.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가 공수처에 윤 대통령 사건을 이첩한 이후에는 국회의 언성이 더욱 높아졌다. 고검장 출신 박균택 민주당 의원은 검찰과 경찰이 수사를 할 때는 서로 속도 경쟁을 하면서 신속하게 일이 진행됐다”며 “국민들이 나름 시원함을 느꼈을 텐데, 묘하게 공수처가 검찰의 사건을 이첩받고 경찰과 합동수사본부를 구성하면서부터 속도가 너무 느려졌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남의 사건’을 망쳐 놓겠다는 이야기인데 용납할 수 있겠느냐”고도 했다. 공수처가 정작 사건을 넘겨받은 뒤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다는 비난이었다. 박지원 민주당 의원은 오 처장을 향해 “당신은 채 상병(해병대원 순직 사건) 수사 때도 ‘잘 알겠습니다’ ‘검토하겠습니다’(라고만 하고) 아무것도 안 했지 않느냐”고도 말했다. “공수처의 앞날이 어두울 것 같다” “어떻게 그렇게 뻔뻔하느냐” “쫄지 말고 체포영장 들고 가라”는 말들이 쏟아졌다. 오 처장은 “귀한 말씀 감사하다”고 답했다.

공수처가 자초한 것

“의지를 믿어 달라”던 오 처장은 윤 대통령 체포영장 유효기간인 6일까지 결국 집행을 해내지 못했다. 이에 민주당에서는 “오 처장을 탄핵하겠다”는 말까지 나왔고, 이 대목에서만큼은 여야가 오랜만에 한마음이 됐다는 웃지 못할 말도 퍼졌다. 내란 혐의에 대한 검·경·공의 중복 수사, 공수처의 사건 이첩 요구와 윤 대통령 체포 실패, 정치권의 노골적인 압박과 비난을 다 바라본 법조계에서는 “공수처 설계 때부터 제기됐던 ‘정치의 사법화’ 문제가 국가적 중대사에서 되돌아오고 있다”고 씁쓸해 하는 반응이 나왔다.

현직 대통령 수사라는 초유의 사건에서, 공수처는 현재까지 높은 점수를 받지 못하고 있다. 오 처장이 “검찰, 경찰의 수사권·주도권 다툼에 대해서 이첩요구권을 행사했고 또 나름대로 성과를 거뒀다”고 항변했으나 현실은 정반대에 가깝다. 공수처는 현직 대통령의 체포영장을 발부받은 최초의 수사기관으로 기록됐지만 결국 집행에 실패하며 과정에서의 논란만 부각됐다. 서울중앙지법이 아닌 서울서부지법으로 청구한 것은 ‘판사 쇼핑’ 뒷말을 낳았다. 지휘권 없이 경찰력 동원을 시도한 점도 절차상 흠결로 지적된다.

경찰은 공문 한 장으로 통보된 ‘영장 집행은 경찰, 수사는 공수처’가 어처구니없다는 반응이었다. 65년 투쟁 끝에 문재인정부에서 검사 지휘 폐지라는 형사소송법 개정을 이끈 경찰로서는 따를 리가 만무했다. 애초 형소법은 확장 해석이 허용되지 않는다. 절차마다 다툼을 이어가는 윤 대통령 측이 이 대목을 그냥 넘어갈 리가 없었다. 윤 대통령 측은 “공사 중 일부를 하청주듯 다른 기관에 수사를 일임할 수 없다”며 “경찰이 ‘공수처의 시녀’로 위법한 영장 집행에 나설 경우 경찰공무원들에게 직권남용을 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비상계엄 사태의 충격과 후폭풍 속에서 부각되지 않았으나, 인권친화적 수사기관을 표방하는 공수처에게 ‘조사 없는 영장 청구’가 적절하냐는 비판도 있었다. 공수처는 검찰이 이미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을 조사해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가 예정됐던 지난달 10일 김 전 장관의 사전구속영장을 ‘예비적 청구’했었다. 두 수사기관이 동시에 한 사람을 구속영장 청구하는 일은 전례를 찾기 힘들다. 독자적 조사 내용이나 수사 역량이 없으면서 의지만 보이려 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당시 야당은 “검찰은 손 떼고 공수처로 사건을 넘기라”는 요구를 반복했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국민 앞에 드러난 국회의 공수처 압박과 오 처장의 태도는 공수처의 설립 취지에 맞지 않는다는 평가가 많다. 한 의원이 오 처장을 향해 “고개만 끄덕이면 속기록에 남지 않는다”며 윤 대통령 체포를 약속하는 ‘예’ 대답을 받는 장면도 전파를 탔다. 공수처가 기존 행정조직에서 독립된 형태로 설치된 이유는 정치적 중립성과 직무상 독립성의 보장이었다. 권력분립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문제가 제기됐지만, 헌법재판소는 “정치적 환경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조직적 지속성을 보장받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며 공수처법을 합헌으로 판단했었다.

7일 오전 정부과천청사 내 공수처가 입주하고 있는 건물 앞에 포토라인이 설치돼 있다. 연합뉴스
정쟁 속에 빚어진 공수처

고검장 출신 변호사는 “검찰의 경우 수사 중에는 총장이 국회에 나가는 일도 없다”며 “더구나 ‘긴급체포 검토’ ‘출국금지’ 등 수사와 관련한 말은 함부로 하지 않는 법”이라고 말했다. 그는 “법사위원들의 압박과 공수처장의 민낯까지, 이 모든 것이 ‘정치의 사법화’의 한 단면”이라고 덧붙였다. 정청래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은 지난해 10월 국정감사 당시 오 처장이 옆자리의 심우정 검찰총장보다 왜소해 보인다며 방석과 새 의자를 갖다줬고, “이제 검찰청과 공수처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고 말했다. 지금 민주당은 공수처의 무능을 탓하고 오 처장의 탄핵을 거론한다.

정치권의 수사 주문과 공수처의 역량 부족이 맞물린 결과는 비상계엄 사태 이후 또다른 소모적 갈등이다. 국민의힘이 추천했던 오 처장이 윤 대통령을 봐주려고 했다느니, 검찰이 공수처에 사건을 이첩한 것에도 이유가 있다느니 하는 것들이다. 결국은 수사기관의 ‘퍼포먼스’가 정치권의 입맛에 맞지 않아 발생하는 억측들이다. 오 처장은 여러 차례 공개적으로 수사 의지를 천명했고, 공수처장의 타 수사기관에 대한 사건 이첩요구는 해당 수사기관이 응해야 하는 의무 규정이다.

공수처는 출범 이전부터 정치적 목적과 결부돼 설계된 한계를 지니고 있으며, 그 수업료가 하필 역사적 사건 속에서 청구됐다는 말도 나온다. 이석연 전 법제처장은 과거 공수처 출범 때 “검찰개혁을 바라는 순수한 국민적 열망과 검찰에 대한 집권세력의 증오가 만났다”며 “필요하지만, 시기적으로 잘못 우리에게 왔다”고 평가했었다. 2019년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수사 당시 서초동 검찰개혁 집회의 구호는 ‘공수처 설치, 조국 수호’였다.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는 2021년 김진욱 전 공수처장이 취임했을 때 “공수처와 민주당은 협업 관계”라고 말했다.

공수처의 탄생 자체가 한국 정치의 양극단화를 부른 계기로 꼽히기도 한다. 국회미래연구원은 2019년 공수처법 제정을 둘러싼 여야 간 폭력 충돌 이후 ‘정치 양극화가 없는 국회’의 모습은 볼 수 없게 됐다고 분석한다. 패스트트랙 정국 당시 전체 국회의원의 3분의 1을 넘는 109명이 고발됐다. 여야의 완만한 합의는커녕 폭력적 사태 속에서 만들어진 공수처는 ‘반쪽짜리’로 평가됐고, 심지어는 ‘사생아’라는 말도 들었다. 오 처장이 인사청문회에서 가장 큰 성과라 평했던 손준성 검사장의 ‘고발사주 의혹’ 1심 유죄 판결은 지난달 6일 2심에서 무죄로 뒤집혔다.

극단적 대립의 정치적 환경 속에서 거대 양당은 사건에 따라 수사기관을 과도하게 독려하다 이내 비난하길 반복한다. 과거 검찰에 대해 그랬고 이제는 공수처를 두고도 마찬가지다. 정치권이 정작 공수처의 안착을 위한 제도적 개선에 게을렀다는 지적도 계속된다. 수사 대상자와 대상범죄의 조정, 수사 전념이 가능한 인력 구성, 구성원에 대한 신분보장 등이 미비하다는 것이다. ‘시스템’의 부재로 일어나는 인력 이탈, 그에 따른 수사역량 부족을 마냥 공수처의 책임으로 탓하기 어렵다는 항변도 오래 전부터 제기됐다.

지난달 검찰과 공수처는 비상계엄 사태 피의자들의 구속 기간을 최대 20일로 하고 각각 10일씩 나눠 쓰기로 협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공수처가 공소제기는 검찰이 해야 할 사건을 이첩받아 구속 수사할 경우, 공수처에 허용된 구속 기간이 10일인지 1회 연장해 20일인지, 이후 또다시 검찰도 1회 연장해 20일을 더 수사할 수 있는지, 법조인 누구도 말하지 못했었다. 인권 수사를 부르짖는 정치권이 만든 공수처법에 정작 인신구속 기간과 관련한 아무런 규정이 없었기 때문이다. 오 처장은 7일 출근길에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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