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원작, 일본에서 만든 애니메이션의 진짜 의미
[김성호 평론가]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콘텐츠의 시대다. 호소력 있는 이야기라면 얼마든지 그 틀을 바꾸어 가며 거듭 생산되고 소비된다.
애니메이션은 일찍이 한국이 일본을 따라잡을 수 없으리라 여겼던 분야다. 저변에 깔린 만화산업을 토대로, 개중 성공한 작품을 다시 TV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하는 일은 그저 몇몇 작화가의 노동집약적 작업만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기획부터 구성, 마케팅, 연출, 나아가 파생상품 판매에 이르기까지 지난 수십 년간 쌓아온 일본 애니메이션 산업의 저력을 한국은 감히 흉내 내지 못했다.
그리하여 지난 시대 적잖은 기간 동안 한국 만화가들은 일본 애니 산업의 하청 역할을 맡아 수행해 왔다. 적어도 직접 그리는 작화 작업에 있어서 한국 만화가가 일본에 비해 역량이 부족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쌓은 실력이 아주 허튼 것은 아니어서 오늘날 한국은 아동을 대상으로 한 애니, 또 3D 등 첨단 기술이 활용된 애니에 있어서는 일본과 겨뤄볼 만한 작품을 내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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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 혼자만 레벨업> 스틸컷 |
| ⓒ 애니맥스 |
추공의 동명 웹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이 작품은 흔치 않은 한미일 합작투자 작품으로 제작돼 지난해 1기를 선보였다. 나카시게 슌스케가 총감독으로 나서 일본 업체가 전반적인 제작을 책임지는 가운데, 일부 작화를 한국 업체가 나누어 맡는 방식으로 제작했다.
작품은 통상적인 만화 원작 애니가 그러하듯 웹소설을 그대로 애니화했다. 주인공인 성진우를 비롯해 등장인물 모두가 한국 이름으로 불리는 건 물론이고, 시공간 모두가 원작과 마찬가지로 한국으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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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 혼자만 레벨업> 포스터 |
| ⓒ 애니맥스 |
서로 다른 두 차원이 맞닿은 덕분일까. 세상엔 기존엔 확인된 바 없던 '마력'이 존재하고, 이 힘에 눈 뜬 소수의 사람들이 헌터가 되어 마수를 제압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살아간다. 게이트가 열리면 헌터협회가 위험수위에 맞는 실력의 헌터들을 섭외해 파견하고, 이들이 마물을 제압하고 게이트를 닫는 식으로 세상은 게이트 없던 시절과 얼마 다르지 않은 일상을 영위하는 것이다.
<나 혼자만 레벨업>은 마치 전형적인 롤플레잉 게임을 하는 듯한 구성으로 커다란 성공을 거둔 작품이다. 게이트와 던전, 마물들부터가 판타지 소설이며 게임에서 흔히 마주하는 전형적 설정인데, 그를 현실세계와 절묘하게 접붙인 것이 이 작품의 기본적인 얼개다. 작품은 여기에 한 가지 특별한 설정을 더 하는데, 통상 수련을 통해 역량이 강해지는 보통의 이야기와 달리 여기선 타고난 마력이 고정값으로 정해져 어떠한 노력에도 변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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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 혼자만 레벨업> 스틸컷 |
| ⓒ 애니맥스 |
<나 혼자만 레벨업>의 승부수는 흥미롭게도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소위 기연을 통해 극 중 다른 이들과는 달리 주인공인 성진우만 역량을 기를 수 있게 된다. 제목 그대로 다른 이들은 처음 설정된 각자의 값대로 평생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데, 주인공만이 수련을 통해 갈수록 강해져 세계관 최강자의 반열도 노려볼 수 있을 정도가 된다.
공평하지 않은 세상에서 고생고생하며 사는 평범한 이가 웬일로 공평하지 않은 규칙으로부터 수혜를 보는 것, 이것이 우리 대중들이 <나 혼자만 레벨업>으로부터 해방감과 쾌감을 느끼고, 응원하게 되는 이유다. 비단 극 중 성진우만이 아니라 세상의 흔한 영희·철수 모두가 공평하지 않은 세상으로부터 대개는 손해만 보아온 현실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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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 혼자만 레벨업> 스틸컷 |
| ⓒ 애니맥스 |
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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