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아름다운 죽음" 시신 1500구 부검한 그의 깨달음
" 인간에게 아름다운 죽음이란 존재할까요 "
지난 20년간 시체 1500여 구를 부검한 법의학자 유성호(52·서울대 의대 법의학교실) 교수를 만나 이렇게 물었다. 그의 답은 뭐였을까. 죽음이 ‘일상’인 그가 생각한 죽음의 의미는 보통 사람들과 다르지 않을까.
유 교수는 SBS ‘그알’(그것이 알고 싶다) 자문과 각종 방송·강연을 통해 법의학을 대중에 널리 알려 왔다. 학교에선 2013년부터 10년 넘게 서울대 교양과목〈죽음의 과학적 이해〉를 맡아 청년들에게 ‘죽음’을 가르치고 있다. 강의 정원은 30명에서 시작해 지금은 100명을 훌쩍 넘겼다. 수강 신청 경쟁은 여전히 치열하다고 한다. 20대 청년들은 왜 그의 ‘죽음학’ 강의에 몰려들까. ‘죽음학(thanatology)’은 학문적으로 명확하게 규정돼 있진 않다. 그가 몸담은 법의학을 비롯해 장례지도학·종교학·철학 등 죽음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분야가 연결된 ‘느슨한 울타리’와 같다. 그가 죽음을 둘러싼 다양한 문제를 연구하며 전하고자 한 건 무엇일까.
유 교수는 부검대에 올랐던 수천 명의 죽음을 마주하며 “삶과 죽음이란 찰나의 경계를 끊임없이 고민해 왔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깨달은 건 직업인의 소명, 그 이상이라고 했다. 보통 의사와는 조금 다른 삶을 사는 의사, 법의학자로서 유 교수는 자신의 직업에서 무엇을 배웠을까. 잔혹한 죽음도 자주 접할 수밖에 없었을 텐데 우울과 무기력에 휩싸이진 않았을까.
유 교수는 자신을 죽음 앞에서 “빛도 없이 등장하는 카메오” “지나가는 사람”이라고 칭했다. 그는 한 명의 ‘객(客)’으로서 말없이 누워 있는 고인들의 마지막 길에 어떤 도움을 주고자 했을까. “죽음을 통해 역설적으로 삶을 배운다”는 유 교수에게 이제 죽음은 정말 익숙한 일이 됐을까.
Q : 이제 ‘죽음’은 익숙한가.
보통사람들은 사랑하는 가족을 먼저 떠나보낼 때 보통 죽음을 처음 접하기 때문에 심정적으로 굉장히 힘들다. 이걸 흔히 ‘2인칭 시점’이라고 말하는데, 나는 ‘3인칭 시점’에서 지금껏 일면식이 없던 분들의 죽음을 접한다. (그런데) 나이가 들고, 경험이 많아질수록 3인칭에 머물지 않고 2인칭·1인칭화, 즉 나의 죽음까지 생각하게 될 때가 많아서 젊었을 때보다 느끼는 감정은 더 깊어진다.
법의학 교수로선 죽음을 객관화할 수밖에 없다. 모든 죽음에 공감하며 2인칭·1인칭화한다면 인간적인 연민이나 슬픔을 느낄 순 있지만,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하기 위해 3인칭 시점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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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 명의 시체 부검에서 법의학자가 깨달은 점
Q : 삶과 죽음의 경계에 대한 고민도 많았을 듯싶다.
많은 법의학자가 이런 이야기를 한다. ‘인간이 생명체로서 우주에 존재하는 게 정상이냐, 아니면 인간이 우주에 오랫동안 존재하지 않았던 게 정상이냐’. 사실 인간이란 존재는 장구한 우주 역사에서 찰나에 존재하지 않나. 그 찰나 동안 인간은 삶과 죽음을 고민한다. 만약 우주의 긴 역사 속에서 인간이 존재하지 않은 상황이 정상적인 것이라면, 찰나에 불과한 인간의 삶이라는 게 얼마나 소중한가 싶다. 나는 늘 ‘삶과 죽음엔 경계가 있고, 그 경계는 순식간에 내게 다가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현재의 삶이 더 소중하게 여긴다.
Q : 시신을 마주했을 때 삶과 죽음의 경계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할 텐데.
이런 게 많이 느껴진다. ‘찰나의 순간이지만, 그때 고인이 이런 선택을 했더라면….’ 사고사를 접할 때 특히 그렇다. 수많은 우연이 겹쳐져 고인이 나의 부검대 위에 올라온다. 그걸 보면 삶과 죽음의 경계는 명확한데, ‘그 경계는 정말 찰나고, 그 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오는구나’ 싶다.
유 교수는 직업인으로서 늘 죽음을 마주한다. “가족들은 아버지의 이런 직업에 대해 걱정이 없느냐”고 묻자 유 교수는 “가족들은 사실 관심이 없다”며 웃었다. 그는 “(가족들이) 치열한 직업인의 삶에서 무엇인가를 공유(share)한다는 건 사실상 어려운 일”이라며 “그저 돈 벌어오는 직업인, 생계형 아버지로 대할 뿐 법의학자로 대하진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법의학자, 사회‘물’을 조금 더 먹은 의사
의사로서도 그는 여느 의사와 다른 삶을 산다. 살아 있는 환자보다 말없이 누워 있는 고인, 유족, 경찰, 검사, 판사를 더 자주 만난다. 때론 이런 삶이 버겁진 않았을까. 그는 “그렇게 싫지만은 않다”고 했다. 유 교수는 “그런 것에 스트레스받는 성격도 아니고, ‘의사 중에 사회‘물’을 조금 더 먹을 수 있지 않나’라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Q : 다른 의사들보다 소셜(social)하지만, 법의학 역시 분야 자체가 매우 좁다.
그럴 수밖에 없다. 어쩔 수 없는 직업의 특성은 분명 있다. ‘망자’를 만나는 건 사실 굉장히 스페시픽(specific·특정)한 일이고, 시야가 좁아질 수밖에 없는 아쉬움과 안타까움 같은 건 있다. 대신 그 분야 전문가로서 깊이가 깊어진다는 거로 갈음해야겠지. 그래도 난 (일반 의사들보다) 좀 낫다고 생각한다.
유 교수는 죽음과 관련한 여러 책과 글도 자주 접한다고 했다. 또 사람들이 남긴 죽음과 관련한 여러 글을 허투루 보기 어렵고, 자세히 읽고 고민하게 되는 일종의 ‘직업병’도 생겼다고 했다.
Q : 힘들거나 우울해진 적은 없나.
그럴 성격이면 관둬야지. 직장인으로서 일상적인 우울감은 누구나 들지 않나. 그리고 항상 우울과 행복은 오가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직업과 연결해 우울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짧지만 행복하고 보람된 순간도 있다. 그걸 그때그때 잘 찾으려 노력한다.
Q : 그런 순간은 언제인가.
이런 얘기 하면 비웃을 수도 있는데, 법원에서 어떤 사건 자문이 온 적이 있다. 가해자가 칼로 자신의 배우자를 손상입혔는데, 처음엔 피해자가 “배우자가 가해했다”고 주장했다가 마음이 약해져선 “자해했다”고 말을 바꿨다. 그래서 검찰이 그 가해자를 일단 기소하고는 내게 ‘이게 자해인지, 아닌지 사진을 보고 맞히라’고 했다. 이런 사건이 되게 많다. 사진 한 장으로 범인을 맞히라는 게 황당할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최선을 다한다. 결국 법정에 가서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소견을 말했더니, 피고인이 순순히 범행을 인정했다. 그때 잠깐 ‘내가 (범인을) 맞히는구나’ 하고 기분이 좋았다. 물론 현장에선 좋지만 무표정으로 있고, 집에 오면서 ‘가해자가 원한을 품는 거 아닌가’ 혼자 망상도 하고….
Q : 망상이 아니라 진짜 위협이 될 수도 있지 않나.
가끔은 겁난다. ‘정인이’ 사건 때도 재판에서 검사가 “췌장이 이렇게 두 동강 날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고 물어 법의학적 소견을 밝히니, 그 가해 부모가 갑자기 고개를 딱 들더니 째려봤다. 그래서 같이 째려보다가 기가 약해져서 다시 땅을 봤던 기억이 난다. 무섭기도 한데, 뭐 어쩌겠나. 그냥 객관적으로 말할 뿐인데.
잔혹한 죽음을 자주 접했으니 인간에게 염증을 느끼지 않았을까 싶지만, 그는 “성선설을 더 신뢰한다”고 했다. 그는 “유영철 같은 진짜 악한 사람이 물론 있지만, 우리가 출근길에 마주하는 대다수는 보통의 착한 사람에 속한다”며 “착한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에 우리 사회가 굴러가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Q : 자신을 “빛도 없이 등장하는 카메오”라고 평한 적이 있다. 어떤 의미인가.
부검대 위에서 마주하는 분들은 살아 계실 때 나를 뵌 적이 없고, 돌아가시고 처음 뵌 분들이다. 나는 그들에게 말하자면 ‘지나가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분들이 인생에서 마지막으로 남길 말, 예를 들어 범죄 피해자라면 억울함이나 안타까운 사연에 가슴 아파해 주고 뭔가 해줄 수 있는 사람이 결국 내가 아니겠느냐란 마음으로 일한다.
(계속)
“법의학자들은 만나면 늘 얘기한다, 앞으로 이 문제가 이슈될 거다” 그들이 목격한 죽음의 사회적 징후는 뭘까요.
‘그것이 알고싶다’에 출연하면서 왜 많은 부분을 빼고 얘기할까요.
그가 생각하는 죽음은 무엇인지, 이어지는 내용은 아래 링크를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48131
〈VOICE:세상을 말하다〉 더 많은 기사를 보시려면?
“노인들 영양제 의미 없다” 노년내과 의사 욕 먹을 소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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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내림’ 한국의 4대 저주술…욕해도 무속 찾는 이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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