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자 독점하는 권력… 보복 정치만 반복

김판 2025. 1. 7. 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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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뉴얼 대통령제] ② 5년 단임제 무엇이 문제인가


국민일보와 최근 인터뷰한 40인의 전문가들은 1987년 헌법을 기반으로 하는 현행 권력 구조가 협치보다는 정쟁을 부르는 진앙으로 변질됐다고 지적했다. 승자가 권력을 독점하지만 책임정치를 위한 장치는 부재하고, 그로 인해 정치 양극화를 양산하는 흐름이 고착화됐다는 것이다. 대선에서 한 표라도 이기면 행정수반으로서 일방적 국정 통할이 가능한 구조는 여야 모두 집권에 사활을 거는 권력지향형 정치에 빠지도록 했다.

현행 대통령제에서는 의회 권력과의 충돌 가능성도 상존한다. ‘여대야소’의 상황에선 정권에 대한 견제와 감시가 쉽지 않고, ‘여소야대’의 정국에선 대결의 정치가 펼쳐지는 것이다. 이처럼 5년 단임 대통령제는 현실적 한계가 분명하다는 게 여야 정치원로들의 공통된 평가였다.

정의화 전 국회의장은 이를 ‘대통령제의 저주’라고 규정했다. 너무 큰 권한을 갖게 된 대통령이 제때 적절히 견제받지 못하다 보니 정권이 끝나면 매번 실패한 대통령으로 기록됐다는 것이다. 승자독식은 결국 독이 든 성배라는 의미다.

문희상 전 국회의장은 “현재의 대통령제가 권력 독점 구조인 탓에 (대선 이후) 상대방에 대한 보복이나 제거 작업이 이뤄지고, 그러다 보니 정치가 ‘죽기 살기’로 흘러간다”며 “제도적 틀을 바꿔야 한다”고 개헌 필요성을 강조했다. 유준상 국민의힘 상임고문도 “(제도적 민주화 이후에도) 결국 상대를 이기고, 상대를 죽이는 정치만 존재해 왔다. 서로 협상하고 타협하는 협치의 정치는 이미 실종됐다”고 말했다.

실제 한국 정치사를 돌아보면 정권이 바뀔 때마다 사정 기관을 총동원해 경쟁 정당을 향한 ‘보복의 정치’가 반복돼 왔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제왕적 대통령제를 해소하지 않고서는 양극단의 진영 대결 정치를 멈출 수가 없고 여야 협치를 근본적으로 불가능하게 한다”고 진단했다.

선거 승리에만 집착하는 정치가 낳는 부작용도 심각하다. 이재묵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그 사람의 정치 철학이나 이념·가치 지향보다는 순간적 인기가 있느냐 없느냐, 대선에서 승산이 있느냐 없느냐를 가지고 (정당에서 후보를) 섭외한다”며 “그 결과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인물이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지적했다.

지금의 정치 체제에서는 대통령에게 제때 ‘정치적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한계도 있다. 양승함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는 “민주주의는 책임을 물어야 하는데, 현행 체제는 책임을 물을 기회가 없다”며 “집권하고 한 2~3년 하다가 레임덕이 오면서 끝나버리는 ‘아주 나쁜 정치’가 돼 버렸다”고 비판했다.

대통령 임기 중간에 실시되는 전국단위 선거 역시 정권에 대한 중간평가 성격을 넘어 사활을 건 대결의 장으로 뒤바뀐다. 김은주 한국여성정치연구소장은 “4년에 한 번씩 있는 총선에서도 사실상 선택지는 두 개밖에 없는 실정”이라며 “중간중간 국민이 개입해 평가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니 자꾸 정치가 광장으로 나가게 된다”고 말했다.

대선에서 패한 야당은 이후 대통령과 집권여당을 ‘쓰러뜨려야만 하는 대상’으로 여기는 적대 정치에 집중하게 된다. 익명을 요구한 한 법학과 교수는 “야당으로선 대통령이 이끄는 정부가 잘못돼야 자신들이 정권을 얻을 수 있는 상황이 된다”며 “대통령 견제 의미에서 (유권자들이) 여소야대를 만들어 놓으면, 차기 집권을 위해 정부와 국가가 망하도록 유도한다. 이는 견제를 넘어서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황태순 정치평론가는 “총선과 대선의 시점이 계속 어긋나면서 여소야대 국면에서는 대통령이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현행 대통령제는) 국정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기에 한계가 명확하다”고 말했다.

반대로 집권여당이 다수당이 돼 의회 권력까지 쥐는 ‘단점 정부’의 경우 대통령이 무소불위의 권한을 휘두를 수 있게 된다. 한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대통령 4년 중임제를 통해 대선과 총선을 동시에 치르자는 의견도 많지만, 이는 권력 분립의 원칙이 무너질 수 있다는 위험성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를 낼 것”이라고 경고했다.

정치 실종에 따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현행 제도하에서는 상대를 적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여야 간 대화와 타협이 힘들다”며 “서로 대화·타협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민주주의 정치의 본연을 어떻게 찾을 수 있는가에 개헌 논의의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교수는 “현행 체제가 문제가 많다고 해서 새로운 권력 체제로 바꾸었을 때 또 다른 문제가 생기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며 “새로운 체제의 문제점까지 고려하는 신중한 대안 제시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김판 기자 p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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