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파국적 갈등에 대한 두려움

2025. 1. 7. 00:49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박상훈 정치학자

정치를 해서는 안 되는 경력(검찰총장)을 가진 사람에게 정치를 지배할 야심을 갖게 한 것부터가 잘못이었다. 그는 역대 대통령 가운데 최다 득표(1640만 표)를 얻어 대통령이 되었다. 문재인 대통령을 만든 득표수(1340만 표)보다 훨씬 많았다. 그때 민심은 윤석열에게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당황스러운 일이다. 그때 그의 벼락 성공이 지금 그의 몰락으로 끝나가고 있다.

「 긴 정치 실종이 낳은 비극적 결과
심화되어 온 증오와 적대의 정치
정치는 공존 가능한 경쟁이어야
절박해진 여야의 정치적 책임성

2022년 3월 8일 서울광장에서 진행된 마지막 유세에서 지지를 호소하는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후보. 뉴스1


윤석열의 성공 이전에 ‘긴 정치의 실종’이 있었다. 여야 정당이 민주주의를 책임 있게 운영했더라면, 정치 경험이 전무한 강권적 국가기구의 수장을 대통령으로 만드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정치란 무엇일까. 이탈리아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에 따르면, “적대하는 갈등을 공존 가능한 이견으로 전환하는 것”이 정치다. 갈등이 이견이 되어야 토론하고 조정하고 협상하는 방법으로 사회를 분열 대신 통합으로 이끌 수 있기 때문이다. 영국의 정치학자인 버나드 크릭의 정치 옹호론은 더 흥미롭다. 그는 정치를 가리켜 “증오 없는 싸움”으로 정의한다. 어느 사회나 “서로 옳다고 믿는 신조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공동의 변화를 만드는 특별한 실력”을 필요로 하는데, 그런 실력의 발휘가 증오의 방법으로 이루어질 수는 없기 때문이다.

정치가 ‘선호의 다양성’에 토대를 둔 인간 활동이라면, 반(反)정치는 이견이나 차이를 관용하지 못하는 ‘증오의 정치’를 뜻한다. 증오의 정치는 형용모순이다. 그런데 윤석열 이전에 한국 정치는 이미 증오와 적대를 특징으로 했다. 여야는 있으되 여야 사이에 정치는 없었다. 여야는 자신들의 지지자를 향해 열정을 동원하며 서로에게 등을 돌리는, 정치 아닌 정치를 했다. 윤석열은 그런 증오의 정치가 배태해낸 인물이다.

그는 정치를 우습게 여겼다. 그러다가 총선에서 야당이 압승하자 정치를 향해 화를 냈다. 부정선거가 아니고는 이해할 수 없다는 망상에도 이끌렸다. 그때부터 그는 정치가 너무 싫었다. 이재명의 야당도 싫었지만, 여당 대표인 한동훈은 더 싫었다. 국회는 “패악질”로 보였다. 마침내 그는 “이게 나라냐”며 정치로부터 국가를 구하겠다는, 분노에 찬 결심을 했다. 비상계엄 시도는 실패했다. 그런데 윤석열은 박근혜와 달랐다. 그는 정치와 정면으로 싸우는 선택을 했다. 그가 계엄을 “국민만 바라보고” 또 “국민 여러분만 믿고” 내린 구국의 결단으로 규정할 때는 섬뜩한 마음이 들었다. 그의 말에는 새로운 적대의 씨앗이 숨겨져 있었다. 그는 자신의 위기와 국가의 위기를 동일시했다. 자신의 분노를 국민의 분노로 전치시켰다. 한마디로 극우 포퓰리즘을 향한 의지를 가감 없이 드러냈다.

윤석열 대통령의 체포영장 유효기간 만료일인 6일 오전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에 국민의힘 의원들이 대기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극단적으로 양극화된 여야의 정치 환경 때문에, 윤석열의 도발이 하나의 에피소드로 끝나지 않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게 된다. 국힘당이 윤석열과 결별해 온건보수의 길을 선택하면 좋으련만 그럴 가능성은 줄고 있다. 민주당은 자신들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내란동조’ 세력으로 몰아가는 나쁜 선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여야 어디를 봐도 정치가 복원될 여지는 없어 보인다. 시민사회의 적대적인 분열은 나날이 심화하고 있다. 지금의 상황이 지속된다면 ‘거리의 정치’만이 아니라 ‘극우의 공간’도 확장되기 쉽다.

8년 전의 대통령 탄핵은 온건보수까지 포괄하는 시민 대연정이자 정치 대연정의 형태로 전개되었다. 이번에는 더 양극화되고 더 배타적인 적대를 동반하고 혐오를 자극하는 상황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그때는 사회적 합의에 가깝게 탄핵과 파면을 마무리했다. 그럼에도 그 이후 정치 양극화와 사회의 분열은 심해졌다. 이번에는 훨씬 더 나쁜 상황에서 같은 일을 반복해야 한다.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가 훨씬 더 위험해 보인다. 여야의 정치적 책임성이 이번만큼 더 절실히 요청되는 때도 없는 것 같다.

인간이 천사라면 정치는 필요치 않을 것이다. 정치 없이도 꼭 필요한 사회적 협력을 유지하기에 어려움이 없을 테니 말이다. 천사를 데려와 정치를 맡길 수 있다면 정치 문제로 걱정할 일은 없을 것이다. 천사의 정치는 선의로 가득하고 이타적일 것이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인간은 천사가 아니다. 대립과 증오 대신 공존과 평화의 방법으로 갈등을 해결해 갈 정치의 기예가 발휘되지 않으면, 우리는 서로에 대해 야수가 될 수 있다. 지금 상황은 그 방향으로 치닫고 있다.

한편에는 무정부 상황으로 향하는 낭떠러지가 있다. 다른 한편은 극단적 갈등으로 떨어지는 낭떠러지다. 정치의 복원이라는 좁은 오솔길을 낼 수 없다면 예기치 않은 파국적 상황을 만날 수 있다. 대선 또한 증오 없는 경쟁이 아니라 증오와 적대가 극대화된 난장판이 될 수 있다. 지금 상황을 평화적으로 관리해낼 정치적 실력을 먼저 발휘해야 대선도 있고 승리도 있다. 대선 승리만 생각하는 것은 안이한 꿈이다. 무책임한 일일 수 있다. 상황은 생각보다 나쁘다.

박상훈 정치학자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