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 그 생존자들의 이야기
[황용하 기자]
"모든 것이 불타버렸다. 사람들은 옷이 타서 벗겨진 채로, 머리가 그을리고 곤두선 채로 돌아다녔다. 얼굴은 너무 부어올라서 누가 누구인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입술도 부어올라 말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피부는 손톱 끝에서부터 벗겨져 안쪽이 드러난 장갑처럼 손에 매달렸고, 진흙과 재로 인해 새까맸다. 마치 손에서 검은 해초가 늘어진 것처럼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급우들이 살아있어서 스스로 돌아올 수 있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하지만 곧이어 파리떼가 몰려와 화상 부위에 알을 낳았고, 그 알들이 부화하여 피부 속에서 애벌레가 꿈틀대기 시작했다. 그들은 고통을 참지 못하고 울부짖으며 애원했다. '제발 이 구더기들을 제 피부에서 빼주세요.'
구더기들은 피와 고름을 먹고 점점 커져 꿈틀거렸다. 나는 맨손으로는 도저히 손을 댈 수 없어 젓가락을 가져와 하나씩 집어냈다. 하지만 피부 속에서 계속 부화했다. 나는 몇 시간을 구더기들을 급우들의 피부에서 빼내는 데 보냈다."
-치에코 키리아케는 히로시마의 담배 공장에서 일하다가 휴식을 취하던 중이었다. 당시 그녀는 15세였다.-
끝나지 않은 1945년 8월 6일과 9일
히로시마 도심의 적십자 병원 대기실은 항상 붐빈다. 이들 중 많은 이들은 일반적인 의료 기록을 가진 환자가 아니다. 그들은 80년 전 미국의 원자폭탄 (원폭) 공격에서 살아남은 피해자들이다. 지금도 이 병원에서는 매일 평균 180명의 폭발 생존자, 즉 히바쿠샤(被爆者)를 치료하고 있다.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8월 9일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폭은 남녀노소를 가릴 것 없이 약 20만 명을 죽이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남겼다. 히로시마에서는 7만 6000개의 건물 중 병원과 학교를 포함한 5만 개가 완전히 파괴되었고, 나가사키에서는 폭발 지점으로부터 약 2.5km 이내의 거의 모든 주택과 도시 기반 시설이 파괴되었다.
수치상으로 한국은 세계 2위의 원폭 피해국이다. 한국원폭피해자협회의 자료에 따르면 두 도시에서 전체 피폭자 수는 약 74만 명이고 이 가운데 약 23만 명 정도가 사망했다. 하지만 한국인 수치를 보면 10만 명의 피폭자 중 사망자는 5만 명으로, 사망률이 전체의 그것보다 훨씬 높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강제 징용되어 군수 공장에서 일하고 있던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원폭이 떨어졌던 군수 공장 인근에 거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술적 진보의 상징으로서의 핵무기
미국인들은 이러한 참상을 깊이 숙고하지 않았다. 미국에서는 원폭 투하가 전쟁을 끝낸 영웅적인 행위로 칭송받았다. 이는 투하 직후 여론조사 기관 갤럽이 미국인의 85%가 일본에 원폭을 투하한 결정을 지지했다고 발표한 점에서 알 수 있다. 심지어 수십 년 후까지도 핵무기의 군사적 위용과 미국의 희생에 대한 담론이 지배적이었다. 대부분의 미국인들에게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폭은 1941년 12월 일본의 진주만 공격으로 참전 후 4년간 치열한 전투 끝에 승리로 가는 길을 의미했다. 또한, 미국을 수 세대에 걸쳐 지정학적 강대국으로 자리 잡게 할 기술적 진보를 상징했다.
하지만 미국의 폭격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것은 핵전쟁의 종결을 의미하지 않았다. 단지 인류가 핵무기라는 족쇄에 채워지기 시작한 것에 불과했다. 1945년부터 2017년까지 핵보유국들은 대기, 지하, 수중에서 2000회 이상의 핵실험을 진행했으며, 대부분은 외딴 지역에서 이루어졌다. 이러한 대기권 실험에 사용된 핵폭탄 중 일부는 일본에 투하된 폭탄보다 훨씬 더 강력했으며, 수천 명의 사람들에게 질병을 일으키고 그들을 삶의 터전에서 내몰았다. 그들의 후손들은 여전히 신체적, 심리적, 경제적, 문화적 피해를 겪고 있다.
지금도 미국, 중국, 러시아와 같은 국가들은 핵무기 현대화에 수조 달러를 투자하고 있다. 이에 반해 2026년 2월 만료 예정인 미-러 간 신전략무기 감축협정(뉴 스타트, New START)을 비롯하여 한때 핵전쟁 위험을 낮추던 많은 안전 장치들이 사라지고 있으며, 이를 복원하는 데 필요한 외교적 노력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아직도 핵무기를 국가 안보를 책임지는 기술적 진보의 상징으로 여기는 행태가 지속되는 듯하다. 과거의 망령을 잊은 채 핵보유국은 또 다른 핵폭발을 감당하려 하는가?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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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히로시마 평화 기념공원을 방문한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과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 |
| ⓒ NBC NEWS 캡처 |
또한, 오바마 전 대통령은 다시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물을 책임이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비극은 비단 1945년 핵무기의 사용에서만 일어나지 않았다. 핵무기 사용이 아닌 수천 번의 핵무기 실험으로 인해 고통 받아 온 지구 반대편의 또 다른 이들이 있다. 그들의 이야기는 2편에서 다루기로 한다.
*참고 자료
- 정욱식. <핵과 인간: 아인슈타인에서 김정은·트럼프·문재인까지> (서해문집, 2018), pp. 54~66
- 한국원폭피해자협회. (온라인), (http://wonpok.or.kr/)
- Kingsbury, Kathleen, Hennigan, W.J. and Cohen, Spencer. "Are Americans Ready to Understand Aug. 6?" < The New York Times >(온라인), 2024년 8월 6일;
(https://www.nytimes.com/interactive/2024/08/06/opinion/hiroshima-nagasaki-atomic-bombing.html)
- Donnelly, Kristin and Vinograd, Cassandra. "Obama Becomes 1st Sitting U.S. President to Visit Hiroshima" < NBC NEWS >(온라인), 2016년 5월 27일; (https://www.nbcnews.com/news/world/obama-becomes-1st-sitting-u-s-president-visit-hiroshima-n5814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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