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설마했지만... 윤석열과 추종세력의 '불편한 진실'
[강명구 기자]
▲ 지난 2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통령관저 인근에서 보수단체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과 체포 반대 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태극기와 성조기 등을 흔들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 이정민 |
도대체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요? 많은 분들이 이번 사태를 윤석열 개인이나 일부 소수 세력의 일탈적 망상으로 치부하려 합니다. 어느 정도 이해할 만한 심정입니다. 우리 사회 전체에 뿌리 깊은 문제가 있다는 불편한 진실을 인정하고 마주하는 것은 분명 고통스러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시각은 문제의 본질을 호도할 위험이 있습니다. 이번 사태는 단순한 개인의 일탈이 아닌, 군부독재의 권위주의적 유산이 한국 보수 세력의 정치적 유전자에 깊이 각인되어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이들의 반민주적, 반헌법적 행태를 '보수'라는 이름으로 용인하며, 민주주의의 한 축으로 인정하고 타협하며 협력해야 한다고 믿어왔습니다. 새가 보수와 진보의 양 날개로 난다는 비유가 흔히 쓰였듯 말이죠.
이제는 현실을 직시할 때입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보수세력의 극우화 징후를 일시적 일탈이나 무시해도 될 백색소음 정도로 여겨왔지만, 더 이상 그럴 수 없습니다. 구체제와의 단호한 결별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024년 12월 14일 본인의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뒤 한남동 관저에서 대국민담화를 하고 있다. |
ⓒ 대통령실 제공 |
천동설 시대의 금성 위상 변화나 뉴턴 물리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었던 수성의 궤도처럼, '예외적 현상'으로 취급된 관찰들이 결국 새로운 이론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토머스 쿤이 지적했듯, 과학혁명은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던 기본 가정들을 근본적으로 의심하고 새로운 관점에서 현상을 바라볼 때 가능했습니다.
마찬가지로, 한국 정치의 패러다임 전환을 위해서는 그동안 '예외적 현상'이나 단순한 일탈로 치부하며 외면해 왔던 것들을 재고해야 합니다. 지난 수십 년간 우리는 심각한 반민주적 행태들을 일부 보수세력의 '일탈'이라는 이름으로 예외 취급해 왔습니다. 예외들이 반복되면 그것은 더 이상 예외가 아니라 본질입니다.
1997년 전두환, 노태우에 대한 사면은 결정적 전환점이었습니다. 12.12 군사반란과 5.18 광주 학살의 주역들이 '국민 화합'이라는 미명하에 석방되면서 과거 청산은 미완으로 남았고, 이는 반민주 세력이 되살아날 토대가 되었습니다.
이후 반민주 세력은 더욱 대담해졌습니다. 5.18 왜곡이 공공연히 이뤄졌고, 군부독재는 '산업화의 영웅'으로 미화됐습니다. '유신'은 '조국 근대화'로 포장되었고, 광주 학살은 '불가피한 진압'으로 둔갑했습니다. 과거사 진상규명은 '정치보복'으로 매도되었고, 피해자들의 명예회복은 계속 미뤄졌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민간인 사찰과 언론 장악을 시도했고, 국정원과 기무사령부는 노골적으로 선거에 개입했습니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세월호 진실이 은폐되고 국정농단으로 헌정 질서가 훼손됐으며, 계엄 계획까지 드러났지만 제대로 된 조사나 처벌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이 모든 반민주적 행태들은 매번 '개인의 일탈'이나 '예외적 사건'으로 치부되어 왔습니다. 검찰권력의 비대화도 보수정부 시기의 예외적 현상으로 간주했습니다.
원인 없는 결과 없듯이, 12.3 내란 사태는 이런 '예외 취급'의 필연적 귀결입니다. 이번에도 이들은 같은 논리를 펴고 있습니다. '국가위기'를 명분으로 4700여 명의 군경을 동원했고, '안보'를 내세워 정적 제거 계획까지 세웠습니다. 비상계엄이라는 극단적 수단을 동원하면서도, 이를 '불가피한 선택'으로 포장하려 했습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번 시도가 개인의 망상이 아닌, 조직적 움직임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군과 검경, 국정원 지도부가 내란에 가담했습니다. 이후 극우 개신교계와 반공이념단체는 조직적으로 정당한 법집행을 방해하고 있고, 여당 지도부마저 이를 옹호하고 있습니다. 이는 반민주적 기득권 체제가 얼마나 견고하게 자리 잡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이제 한국 정치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진정한 혁신은 이런 '예외들'의 본질을 직시하고, 우리의 이른바 '보수'에 대한 기본 가정과 정의 자체를 다시 생각하는 데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더 이상 이러한 행태들을 일부 보수의 '일탈'이나 '예외'로 치부해서는 안 됩니다.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세력에 대한 단호한 법적 처벌과 반민주적 기득권 체제의 해체만이 이 악순환을 끊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이번보다 더 위험한 위기를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 지난 2024년 11월 13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워싱턴에서 열린 하원 공화당 회의에서 연설하고 있다. |
ⓒ 연합뉴스 |
시기적으로도 부적절했습니다. 트럼프 후보의 당선으로 새 행정부 출범을 앞둔 시점에서, 한국 대통령의 비상계엄 시도는 미국의 신뢰를 잃는 극단적 선택이었습니다. 트럼프 1기 출범 당시 박근혜 탄핵으로 주한 미국대사직이 1년 반 동안 공석이었던 것처럼, 2기를 앞두고 또다시 비상계엄과 탄핵 정국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트럼프의 시각에서 보면, 한국은 자신의 두 임기 시작을 모두 정치적 혼란으로 맞이한 동맹국일 것입니다. 두 번에 걸친 탄핵 정국은 한국이 과연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인지에 대한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게 만들 수밖에 없습니다.
트럼프의 대외 행보를 보면 더욱 뼈아픕니다. 대선 전에도 아소 전 총리와의 만남을 갖고, 지난 12월에는 아베 전 총리의 부인을 정중히 맞이하고, 재일교포 손정의 회장의 1000억 달러 투자 약속에 2000억 달러로의 증액을 역제안하는 등 일본과의 관계는 돈독히 하고 있습니다.
반면 윤석열 정부는 반중, 반북 기조를 내세우면 군부독재식 통치도 용인받을 수 있을 것이라 오판했습니다. 이는 미국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몰이해를 보여줍니다.
방송인 김어준씨에 따르면 비상계엄 계획에 북한군으로 위장한 암살조의 주한미군 공격 가능성까지 포함되었다고 합니다. 나아가 북한을 자극해 국지전을 유도하려 했다는 계획도 드러났습니다. 이는 동맹국에 대한 적대 행위이자 국제법 위반으로, 한국의 외교적 고립을 초래할 수 있는 위험한 발상입니다.
진정한 한미동맹은 민주주의 가치의 공유, 법치주의 존중, 그리고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합니다. 비상계엄과 같은 극단적 조치는 이 모든 가치를 훼손하며 동맹의 근간을 흔듭니다. 한미동맹은 결코 특정 정파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결국 '안보는 보수'라는 오랜 신화가 허구였음이 드러난 셈입니다. 정권 유지를 위해 국가 안보를 위협하고, '동맹 강화'를 외치면서도 동맹의 기본 가치를 무너뜨린 이번 사태는 단순한 외교적 실수가 아닌, 국익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는 중대한 과오입니다.
▲ ‘윤석열 즉각퇴진 사회대개혁 4차 범시민대행진’이 지난 2024년 12월 28일 오후 서울 광화문앞에서 윤석열퇴진 비상행동 주최로 열린 가운데, 참가자들이 응원봉 불빛을 밝히며 행진을 시작하고 있다. |
ⓒ 권우성 |
'윤석열 현상'은 개인의 특성을 넘어, 보수 정치에 깊이 뿌리 박힌 권위주의적 사고방식과 비민주적 태도, 권위에 대한 맹종의 문화를 보여줍니다. 이는 단순히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의 문제가 아닌, 정치 구조 전반의 문제입니다. 민주적 가치와 법치가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구조적 문제에 대한 명확한 이해와 혁신이 필요합니다.
12월 3일의 비상계엄을 좌절시킨 깨어 있는 시민의 힘은 이를 위한 희망입니다. 류혁 법무부 감찰관의 용기 있는 사직, 계엄군의 소극적 저항, 국회 보좌관들의 기지 있는 대응, 그리고 2030 세대의 적극적인 참여는 민주주의를 지키는 진정한 힘이 무엇인지 증명했습니다.
12·12 사태와 달리, 이번 위기에서 우리 시민들은 깨어 있었습니다. 이는 우리 사회가 과거의 교훈을 배우고 성장했음을 보여줍니다. 이제 우리는 개인의 용기와 시민의식을 바탕으로, 더욱 강한 민주주의를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민주주의는 완성형이 아닌 진행형입니다. 그리고 그 여정의 주인공은 바로 깨어 있는 시민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번 사태가 우리에게 남긴 가장 큰 희망이자, 새로운 출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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