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찾은 두코바니 원전, 그곳에 ‘KHNP’가 걸려 있었다

신준섭 2025. 1. 6. 0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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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 배출 없는 미래, 한국이 이끈다]
⑨ 원전으로 선회한 유럽을 가다
지난달 17일(현지시간) 찾은 체코 트레비치 시 두코바니 원전본부. 사진은 체코전력공사(CEZ)가 신규 원전 2기가 들어서게 될 부지에 세워 둔 안내판. 왼쪽 첫 번째 안내판에는 체코어로 '미래를 위한 에너지'라는 표어가 써져 있고, 그 옆 조감도가 그려진 안내판 우측 하단에 한국수력원자력(KHNP) 로고가 적혀 있다.


체코 수도인 프라하에서 동남쪽으로 160㎞가량 떨어진 거리에 위치한 트레비치시는 에너지 도시로 잘 알려져 있다. 이곳에 위치한 두코바니 원전은 각 510메가와트(㎿) 원자력발전소 4기를 가동 중이다. 체코 내 전체 원전 설비용량이 4.29기가와트(GW)인 점을 감안하면 체코 원전 절반 이상이 이곳에 있는 셈이다.

지난달 17일(현지시간) 프라하에서 차로 2시간여 거리인 두코바니 원전을 찾았다. 국민일보는 2022년 10월 이곳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와 분위기가 사뭇 달라져 있었다. 2년 전 포도 농사를 짓던 땅에는 체코전력공사(CEZ)가 세운 안내판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오는 3월 본계약을 앞둔 신규 원전 부지라는 점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신규 원전 규모도 2년 전과 많이 달라졌다. 2022년만 해도 체코 정부는 두코바니에 신규 원전 1기를 건설하겠다는 구상을 내비쳤다. 하지만 지난해 우선협상대상자로 한국수력원자력을 선정하면서 신규 원전 규모가 2기로 늘어났다. 현장에 서 있는 안내판에는 한수원이 본계약 이후 건설할 신규 원전 청사진이 그려져 있었다. 청사진 하단에는 한수원 영문 약자인 KHNP 로고도 눈에 띄었다. 이곳에 1000㎿급 원전 2기가 건설되면 두코바니는 명실상부한 체코 최대 원전 단지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한국으로 치면 충청도에 해당하는 수도와 비교적 가까운 지역에 신규 원전을 짓고 있지만 현지 반응은 좋은 편이다. 페트라 흐르바츠코바 트레비치 기술고등학교 교장은 신규 원전 건설이 학생들 진로에 도움이 될 것으로 평가했다. 흐라바츠코바 교장은 “우리는 지금도 CEZ의 중요한 파트너”라며 “두코바니에서 근무하는 게 목표인 학생들도 있다”고 말했다.

가동 중인 두코바니 1~4호기 모습.


트레비치시 관계자들도 기대가 크다. 파벨 파찰 트레비치시 시장은 “1980년대에 두코바니 원전을 지을 때만 해도 2만5000명이었던 인구가 4만명이 됐다”며 “신규 원전 건설은 경제 성장과 일자리에 중요하다”고 말했다.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한 파찰 시장은 안전 문제와 관련해 지역사회의 반발은 없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체르노빌·후쿠시마 때문에 부정적 인식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장기적으로 원전은 책임 있게 운영만 한다면 좋은 에너지”라고 평가했다.

특히 한수원과 대우·두산 등 ‘팀코리아’가 지역 사회에 끼치는 영향력을 높게 평가했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국의 정치적 상황에 대한 우려도 크지 않았다. 토마스 트제티나 상원의원은 국민일보와 인터뷰에서 “(한국의 탄핵 정국이) 원전 건설에 미칠 영향은 없을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국민일보 2024년 12월 19일자 20면 참조).

2023년 기준 40% 수준인 원전 비중을 50% 이상으로 늘리겠다는 체코 정부의 구상은 소형모듈원전(SMR)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2050년까지 SMR을 10기 이상으로 늘릴 계획이다. 이를 위해 2034년 또 다른 원전 단지인 테믈린 원전 부지에 첫 번째 SMR을 건설하겠다는 목표도 세웠다. 원전 및 재생에너지를 연계하는 송배전망 사업도 가시화했다. 체코 정부는 지난해 5월 향후 10년간 송배전망 확충 및 스마트화에 193억 유로(약 29조2690억원)를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체코가 원전을 확대하고 있는 것은 경제적 요인이 크다. 5일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 프라하 무역관에 따르면 체코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제조업 비중이 22%에 이르는 제조업 강국이다. ‘S’ 로고로 유명한 완성차 브랜드 스코다의 고향이기도 하며 현대차 역시 체코에 제조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GDP 대비 무역 비중 역시 140%로 수출 강국이기도 하다. 지난해 상반기 기준 무역수지 흑자는 151억 달러다. 이는 세계 6번째 무역강국인 한국의 지난 한 해 전체 무역수지 흑자(518억 달러)의 29.2%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제조업이 강한 만큼 전력 소비가 많을 수밖에 없다. 실제 체코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직격탄을 맞았다. 이후 에너지 안보와 탄소 배출 저감이라는 두 가지를 달성할 수 있는 원전으로 눈을 돌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향후 전력 수요 증가도 원전 확대의 이유가 되고 있다. 체코는 모빌리티와 반도체, 산업 자동화 등 다양한 차세대 첨단 산업에 중점 투자할 계획이다. 산업 정책 등을 통해 지난해 2만9000달러 수준인 1인당 GDP를 더 끌어올리기 위해서도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필수적이다.

체코 국내에서 발전을 담당해온 화력 발전의 채산성 악화 역시 원전 활성화의 또 다른 배경이다. 체코 내 화력발전은 탈석탄 정책 발표 이후 채산성이 감소하며 2030년 전후로 모두 문을 닫을 예정이어서 이를 대체할 만한 에너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다. 체코 정부가 계약 기간 내에 건설을 완료하는 팀코리아를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한 것도 이 같은 이유가 작용했다.

탈원전을 외쳤던 유럽 국가들도 하나둘 원전 확대 정책을 발표하고 있다. 독일과 오스트리아를 제외한 모든 국가가 원전에 긍정적인 입장으로 바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의 빅테크 기업인 구글이나 마이크로소프트가 SMR에 투자하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알린 데 클루아조 국제원자력기구 원자력에너지부 부국장은 “이는 유럽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평가했다.

트레비치(체코)=글·사진 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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