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훈 칼럼] 새해 결심, 전두엽 건강을 지키자
새해 아침이 밝았지만 사방은 캄캄하다. 희망을 품어야 하는 연초이지만 선동, 편가르기, 헛된 몸싸움으로 세상은 어지럽다. 위기의 출구는 보이지 않는다. 지난 한 달 위기 진단과 해법이 쏟아졌지만 지금은 정밀한 사회과학의 시간이 아니다. 학자들은 그동안 대통령제의 폭주, 정당정치와 팬덤 정치의 타락을 경고해 왔지만, 사회과학이 체제 위기를 막는 데 기여한 바는 없다. 마찬가지로 알량한 법률 지식은 지금의 헌정 위기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 공수처, 여당-야당, 대통령 변호인단의 어지러운 밀고 당기기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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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노와 충동이 민주주의를 위협
스마트폰 중독, 전두엽 약화시켜
감정 조절하는 전두엽 기능부전
소통과 품위의 시민성 회복해야
」
법과 정치, 제도 이전에 우리의 정신적 자세부터 돌아볼 때다. 위기의 뿌리를 찾는 일이나 해법의 모색은 모두 요즘의 정신적 위기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한마디로 말해 12·3 헌정 위기의 뿌리에는 스마트폰 중독에서 비롯된 정신활동의 위기가 자리 잡고 있다.
스마트폰 특히 유튜브 중독(한국인 스마트폰 사용 시간의 3분의 1이 유튜브 시청 시간이다)은 정신활동의 핵심인 뇌의 전두엽 기능을 위축시킨다. 한국인들의 스마트폰 사용 시간은 하루 평균 210분이나 되는데, 이는 세계 평균 165분보다 무려 25% 높은 수치다(2023년 기준). 유튜브 중독에 따른 전두엽의 위축은 두 가지 문제를 낳는다. 첫째, 복잡한 상황을 이해하고 문제 해결을 모색하는 사고 능력의 퇴보. 둘째, 분노와 불안, 우울 등의 감정을 통제하는 능력의 퇴보.
필자는 12·3 헌정 위기의 격발, 그리고 이어지는 극단 세력의 준동에는 전두엽의 위기가 작용하고 있다고 본다. 12월 3일 밤의 계엄령은 민주사회의 복잡하고 무한 인내심을 필요로 하는 문제 해결 과정을 아예 뒤엎으려는 극단 선택이었는데, 놀랍게도 여당 외곽의 극단 세력은 이를 두둔하고 있다. 전두엽이 맡아야 할 문제 해결 능력의 포기이고 상대 진영에 대한 분노 조절의 실패다. 12월 4일 새벽 계엄 해제를 주도함으로써 명분을 쥔 거대 야당과 극렬 지지자들에게도 전두엽 위축 문제는 어른거린다. 2024년 4월 총선 이후 여야 대화 실종과 극한 대치는 거대 야당의 문제 해결 능력이 고장 났음을 가리켜왔다.
먼저 유튜브와 전두엽, 그리고 민주주의의 위기부터 살펴보자. 플라톤 이래로 민주주의의 타락을 경계해 온 이들은 민주주의의 성패는 정치 주체인 시민들의 덕성과 품성에 따라 좌우된다고 보았다. 이 점에서 오늘날 스마트폰 중독의 섬뜩한 귀결에 경종을 울린 이가 니콜라스 카(Nicholas Carr)다. 카는 스마트폰을 많이 사용하고 온라인 정보에 탐닉하는 사람들일수록 전두엽은 약화한다고 역설한다. 스마트폰 중독자들은 정신없이 쏟아지는 온라인 정보로 인해 뇌에 과부하가 걸리게 된다. 그에 따라 온라인에서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자극적인 내용을 찾는 뇌의 뉴런은 활성화되지만, 숙고하고 사색하고 하나의 이슈에 집중하는 전두엽의 뉴런들은 활력을 잃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스마트폰과 유튜브에 빠진 뇌는 피상적 사고를 벗어나지 못하고 점차 충동적으로 변해간다는 것이다.
노년학 전문가 정희원도 유튜브의 과도한 사용이 전두엽의 활동을 약화한다고 경고하고 있다. 숏츠 등의 자극적 영상은 쾌락 호르몬인 도파민의 급격한 분비를 가져온다. 하지만 도파민이 늘었다 줄어드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쌓이는 스트레스가 전두엽의 위축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는 지인들 모임에서 나와서도 유튜브에서 보고 들은 단편적 내용을 되새김질하다가 호응을 얻지 못하면 불현듯 화를 내는 이들을 종종 마주친다.
그렇다면 어떻게 전두엽을 되살릴 수 있을까? 어떻게 유튜브로부터 뇌를 보호하고 문제 해결 능력과 감정 조절 능력을 회복할 수 있을까? 그동안 이런저런 방안들이 제시됐다. 일주일에 하루 스마트폰 끄기. 휴가 때 스마트폰 끄기 등등.
필자가 강조하는 방안은 생경하겠지만, 갓난아기를 정성으로 키우는 부모들의 태도에서 실마리를 찾아보자는 것이다. 어려서부터 스마트폰 영상에 노출된 아기들의 두뇌 발달이 더디고 타인과의 정서 교감이 뒤처진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자주 눈을 마주치고 말을 걸어주는 양육자들과 자란 아이들이 안정된 정서와 교감 능력, 즉 전두엽이 고루 발달할 가능성이 크다.
새해 우리가 시작할 일은 마치 어린아이처럼 공동체 시민으로서의 첫걸음을 다시 연습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호기심 가득한 어린아이처럼 상대방 얘기에 귀 기울이는 연습을 해보자. 더 많이 듣고 말은 적게 하는 습관을 길러보자. 충동적인 폭력에 저항하고 온정의 실천으로 귀감이 되었던 마하트마 간디와 넬슨 만델라의 표정이 어린아이들 같았던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민주주의의 건강은 시민들의 전두엽 건강에 달려 있다. 새해에는 종종 스마트폰을 끄고 간디와 만델라의 미소를 지어보자. 전두엽이 살아나야만 우리는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분노와 충동, 극단주의를 제어할 수 있다.
장훈 본사 칼럼니스트·중앙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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