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렬의 공간과 공감] 조지아의 황금시대, 바르지아 동굴 도시

2025. 1. 6.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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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렬 건축가·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에 있는 조지아는 로마·비잔틴·몽골·페르시아·오스만, 그리고 러시아의 침략과 정복에 시달려왔다. 강대국 사이에 낀 지리적 약점에도 불구하고 잠깐 황금기가 있었으니 타마르 여왕(재위 1184~1231년) 치세였다. 현재보다 두 배 이상으로 영토를 넓혔고 외교와 교역으로 탄탄한 부를 쌓았다. 주변국들은 “조지아의 농부는 귀족 같고, 귀족은 왕자 같다”고 부러워했다.

여왕의 아버지 기오르기 3세는 셀주크 터키를 방어하기 위해 므트크바리 강변 절벽에 동굴들을 파서 요새로 만들었다. 타마르가 어린 시절 삼촌과 함께 이 동굴 요새에 왔다가 길을 잃어 “아저씨, 여기 있어요”라는 뜻으로 외친 “아크 바르지아”가 동굴의 이름이 되었다. 여왕은 이곳을 더 정교한 요새로 확장하고 동굴 수도원과 교회를 굴착해 종교적 기능까지 부여했다.

119개 동굴을 13층으로 복잡하게 뚫어 만든 수천 개의 방에 거주도 가능했다. 15개의 교회와 수도원을 조성했고, 25개의 와인 저장소, 제빵소와 식당, 목욕탕과 도서관, 대장간과 저수조 등 장기 방어에 필요한 온갖 시설을 완비했다. 모든 방을 계단과 터널로 미로같이 연결하고 강변에 숨겨진 비밀 입구를 통해서만 출입할 수 있었다. 평소에는 700여 수도사들의 수도원이었지만 유사시에 5만 명의 인근 주민들이 입보하는 방어기지가 되었다. 동굴들은 암벽 내부를 뚫어서 몇 개의 전망 발코니를 제외하고 외부에 감추어졌으나 13세기 대지진으로 외벽이 무너져 동굴의 단면들이 노출되었다.

타마르는 절벽의 한 발코니에서 강변에 운집한 전사들에게 감동적 연설로 전의를 북돋워 셀주크를 무찌를 수 있었다고 한다. 바르지아는 수백 차례의 외침과 이슬람권의 포위 속에서 기독교 독립국을 유지해 온 조지아의 은근과 끈기의 상징이다. 동굴 도시 중앙의 성모승천교회에 그려진 타마르 여왕, 조지아인들은 광개토왕과 선덕여왕과 세종대왕을 합친 위대한 성군으로 기억한다.

김봉렬 건축가·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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