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제왕적 대통령제 한계 도달… 개헌 필요”

정당팀 2025. 1. 5.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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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뉴얼 대통령제] ① 권력 구조 손볼 때 됐다
12·3 비상계엄 사태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를 계기로 1987년 개헌 이후 유지돼 온 지금의 정치 체제는 중대 기로에 섰다. '5년 단임 대통령제'를 근간으로 하는 헌법의 시효가 다 됐다는 인식도 확산되는 중이다. 동시에 정치 양극단화를 유발하는 선거제도 개편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국민일보는 현행 대통령제·선거제의 문제점과 개혁 방안, 권력 구조 리뉴얼의 방향성 등을 모색하는 시리즈를 5회에 걸쳐 보도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대통령 한 명의 문제로 국가 정치·사회·경제 전반이 흔들릴 수 있음을 여실히 보여줬다.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한을 견제하고 분산하는 일이 시대적 요구로 다시 부상한 것이다. 이 주제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해 온 정치인, 평론가, 법학 전문가들도 개헌 필요성에 동의한다는 의견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다만 구체적인 개헌 시기와 권력 구조 개편 방식을 두고는 의견이 다양하게 갈렸다. 예기치 못한 계엄·탄핵 사태로 정국 혼란상이 극심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역설적으로 열린 개헌 논의의 장을 그대로 흘려보내서도 안 된다는 목소리가 크다.

국민일보가 전문가 40명에게 개헌 필요성에 대한 입장을 물은 결과 35명이 “동의한다”고 응답했다. 4명은 “동의하지 않는다”고 답했고, 1명은 판단을 유보했다. 국민일보는 지난달 23일부터 지난 5일까지 원로 정치인 10명, 정치학자 12명, 정치평론가 8명, 법학자 10명을 인터뷰했다.


개헌 필요성에 동의한 전문가들은 대부분 5년 단임 대통령제가 가진 한계를 주요 이유로 꼽았다. 문희상 전 국회의장은 “87년 체제 이후 제6공화국에서 나온 8명의 대통령이 전부 실패했다”며 “대통령 간선제가 직선제로 바뀌면서 우리는 민주화가 완성됐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대통령 책임제’가 ‘제왕적 대통령제’로 바뀌어 버렸다”고 지적했다. 정의화 전 국회의장은 “이번 비상계엄과 대통령 탄핵소추 사건은 그동안 우리가 개헌을 하지 못하고 대통령제를 고집해 온 데 따른 ‘대통령제의 저주’”라고 규정했다.

12·3 비상계엄 사태는 대화와 타협이 실종된 현 권력 구조의 폐해가 고스란히 드러난 사례로 꼽혔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정치학자는 “야당은 계속해 특검·탄핵으로 공격하고 대통령은 계엄으로 맞받아버리니, 이런 권력싸움 속에서 등 터지는 건 결국 국민”이라며 “대화·타협이 없는 대통령제는 의미가 없는 제도”라고 말했다. 이재묵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현행 대통령제의 승자독식적 구조 탓에 정권을 쥔다는 것의 의미가 너무 커져버렸다”며 “양쪽 진영이 사활을 걸고 싸울 수밖에 없고, 양극화와 극단적 대립이 지속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권노갑 김대중재단 이사장은 “전두환이 여야나 재야와의 합의 없이 단독으로 만든 헌법을 민주정부가 불가피하게 받아들였던 게 지금까지 이어진 것”이라며 “군사독재의 찌꺼기가 지금까지 이어진 상황 자체가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너무 부끄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개헌으로 가는 첫 관문은 예측 가능한 로드맵을 짜는 것이다. 개헌이 필요하다는 대전제에는 인터뷰에 응한 40명의 전문가 중 35명이 동의했지만 타당한 개헌 시점을 두고는 의견이 제각각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이 이제 막 시작됐고, 파면 여부에 따라 조기 대선 여부 등 주요 정치 일정이 요동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재판 선고 시점과 그 결과에 따른 차기 정치 구도 변동 가능성도 상존한다.


개헌에 적극적인 정치원로들은 가급적 신속한 논의 전개와 결론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12·3 비상계엄 사태와 대통령 탄핵소추로 개헌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진 '골든타임'을 흘려보내선 안 된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정치원로 10명 중 4명은 탄핵심판 선고 후 가장 가까운 시점에 치러지는 전국 단위 선거에서 개헌 국민투표를 동시에 치를 수 있도록 개헌 논의에 속도가 붙어야 한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 탄핵심판이 올 상반기 중에 인용된다면 60일 후 치러지는 조기 대선이 기점이 되고, 탄핵 기각으로 윤 대통령이 남은 임기를 채우게 될 경우 2026년 6월 지방선거가 기점이 되는 시나리오다. 정치적 일정과 관계 없이 '가능한 한 빨리' 해야 한다는 의견(3명)이 뒤를 이었다.


정치학자와 법학자들 사이에서는 개헌 시점에 대한 신중론이 우세했다. 정치학자·정치평론가·법학자 30명 중 13명이 차기 정권 출범 이후를 적당한 개헌 시점으로 꼽았다. 헌법을 바꾸는 중대 문제인 만큼 충분한 숙의 과정이 필요하고, 현재 국면에서 야당이 개헌에 동의할 가능성이 낮다는 이유를 들었다.

노기호 군산대 법학과 교수는 "개헌을 하려면 권력 구조뿐 아니라 기본권 등 논의해야 할 민감한 사안이 많다"며 "오랫동안 숙고해야 하고, 국민 여론도 살펴야 하기 때문에 차기 정권이 들어서기 전까지 결론을 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회옥 명지대 정치학과 교수는 "일단 개헌의 방향이나 범위 등에 대해 공론화 작업을 계속 진행한 뒤 개헌안에 대한 완성도가 높아지면 차기 정권이 시작되고 정국이 안정적인 상태에서 개헌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개헌 반대 또는 유보 입장을 밝힌 5명의 전문가들은 윤 대통령 탄핵심판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의 개헌 논의가 자칫 '정략적 물타기'로 흐를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개헌 필요성에 동의한 전문가 중에서도 보다 진지하고 성숙한 논의를 담보하기 위해서는 계엄·탄핵 정국 수습이 우선돼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정치적 일정과 개헌 논의를 연결지어서는 안 된다는 의견도 있었다. 윤성이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개헌을 정략적인 이유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 개혁을 위해 순수하게 진정성을 갖고 한다면 지금 한국 사회에 필요한 합의안이 나오는 때가 개헌의 시점이 돼야 한다"며 "개헌은 다른 정치적 일정에 맞춰서 할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정치부 정당팀 jukebox@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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