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1위 영광은 어디로... 왜 속편은 성공하지 못했나

김성호 2025. 1. 5. 16:48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 919] 넷플릭스 <지옥> 시즌2

[김성호 평론가]

▲ 지옥 시즌2 스틸컷
ⓒ 넷플릭스
배우가 가진 힘에 대해 생각한다. 자연인인 배우가 극본 속 배역을 입고 카메라 앞이나 무대 위에 설 때 얼마만큼 다른 사람이 되는지를. 생김과 표정, 몸짓과 목소리, 문자로는 결코 다 잡아낼 수 없는 미묘한 요소들에 대하여 배우는 얼마나 전문가인가를 곱씹는다.

사람들은 흔히 '이번에도 홍길동이네', '김서방은 어디서도 김서방이야'하고 말하기를 즐긴다. 말하자면 배역을 연기하는 배우가 앞선 영화와 뒤선 영화 모두에서 같은 사람처럼 보인다는 뜻이겠다.

특히 다작을 거듭하는 몇몇 배우들을 볼라치면 그들이 진지하게 배역에 몰입하는 순간까지도 적잖은 관객이 그를 배우가 아닌 스타며 연예인쯤으로 여기는 건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다. 배우가 가진 이미지가 고스란히 작품에 투영돼 작품 본래의 배역으로 온전히 여길 수 없도록 하는 것, 그건 배우가 작품에 미칠 수 있는 가장 잘못된 영향일 테다.

그러나 그 반대도 얼마든지 존재한다. 저 배우는 온갖 광고에 출연해 잡스런 이미지를 노출하고, 또 이 배우는 사생활이 난잡해 보는 이를 불편케 하는데도, 어떻게 된 영문인지 작품 가운데선 그렇고 그런 잡스런 얘기가 조금도 생각나지 않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 자기가 맡은 배역이 되어서는 언젠가는 방구석 히키코모리였다가, 또 언제는 세상 무서울 것 없는 대단한 인간이 되기도 하고 마침내는 저를 보고 있는 나를 경악케 하였다가 눈물짓게도 하는 것. 배우가 해낼 수 있는 가장 멋진 일이 있다면 보는 이로 하여금 자연스레 믿도록 하는 것일지 모르겠다. 그가 말하고 느끼는 모두가 하나하나 진실이라고 말이다.

유아인 떠난 두 번째 지옥도

넷플릭스 시리즈 <지옥> 시즌2를 보며 거듭 떠올린 건 한 명의 배우였다. 오늘의 <지옥>이 있기까지 결정적이라 해도 좋았을 존재감을 보였지만, 시즌2가 가히 세계적 주목을 받으며 공개된 뒤엔 사라져서 찾을 수 없게 된 이 말이다. 말하자면 전엔 있었고 지금은 없는 배우 유아인의 존재가 그가 떠난 시리즈 가운데 짙게 남아 있었다.

지난 시즌, 그가 연기한 건 새진리회 교주 정진수다. 새진리회가 무엇인가. 어느날 갑자기 지옥의 사자들이 차원을 넘어 현세로 와서 사람들을 살해하는 일이 공공연히 벌어지니, 기존의 가치며 질서가 순식간에 설 자리를 잃었다.

폭도들이 난립하는 가운데서 '이렇게 살아 무얼 하느냐'는 허무와 이때다 싶어 혹세무민하는 무리가 곳곳에서 일어나는 말세의 풍경이 이 나라 한 가운데 버젓이 펼쳐진다. 그 와중에 가장 주목할 만한 행보를 보인 이가 정진수, 불행해 죽고자 찾은 티베트 고원에서 훗날 한국을 뒤덮을 지옥의 시연을 목격했다던가.

먼저 봤고 먼저 알았다는 선견과 선지의 이야기는 종교의 주된 관심이다. 세상에 진리와 그렇지 못한 것이 있다고 여기는 종교적 인식 가운데, 참인 것을 보고 알았단 건 그 자체로 권위가 된다. 그리하여 세상에 많은 종교적 인물들이 깨달음을 얻었다거나 천당에서 내려왔다거나 하는 것일 텐데, 정진수가 하는 것도 그와 얼마 다르지 않은 일이다.

글로벌 1위 영광 뒤 등장한 익숙한 속편
▲ 지옥 시즌2 스틸컷
ⓒ 넷플릭스
<지옥> 첫 번째 시즌은 혼란의 카오스였다. 어쩌면 OTT 가운데 대장이라는 넷플릭스에서 단숨에 글로벌 1위를 차지한 비결이 여기에 있다 해도 과언은 아니었을 테다. '갑자기 괴물이 나타나 인간을 습격한다'류의 이야기를 넘어서 세계관과 신앙, 과학과 가치들이 무너진 시대상을 상상해 구현해낸 것이 가히 파격적이며 충격적이었다.

<지옥>이 아닌 다른 작품에서는 만날 수 없었던 구체적 혼란상과 함께 이해관계가 서로 다른 인간들이 벌이는 이합집산의 아귀다툼이 우리네 사는 사회와 인간의 본질을 알도록 했다.

세상엔 편한 일이 있는가 하면 고된 일도 있다. 어지르고 늘어놓는 것은 쉬운 일에 속하고 반듯하게 정리하는 건 어려운 일이라 할 수 있겠다. 말인즉슨, 무너진 세계를 그려내는 것이 아무리 어려울지라도 현상을 넘어 그 저변에 깔린 원리원칙까지를 충실히 수습해 풀어내는 것은 더욱 어려울 밖에 없단 얘기다. 첫 시즌이 맡았던 게 보여주는 것이라면, 두 번째 시즌은 설명하고 납득시켜야 했으므로, 그 무게는 다를 밖에 없다.

시즌1이 시연을 당해 죽은 이가 다시 일어나는 결말로 끝맺었으므로, 시즌2는 부활한 이의 이야기를 다루어야 했다. 작품은 지난 시즌에 죽은 정진수 의장이 새로 일어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풀어낸다. 달라진 점이라면 죽었을 땐 유아인이 연기했던 정진수가 부활하고 보니 김성철로 바뀌어 있었다는 점일까.

<지옥> 시즌2는 사자의 시연, 그러니까 다른 차원의 사자가 나타나 인간의 죽음을 예고한 뒤 그 목숨을 거두어 가는 일을 두고서 현세에 지은 죄에 대한 심판이라 이야기하던 새진리회가 힘을 잃은 세상을 보인다. 지난 시즌에 그린 이야기에서 갓 태어난 아기가 시연을 받게 된 모습이 널리 알려지며 그간 시연을 죄에 대한 응답이라 홍보해온 이들이 설 자리를 잃었다. 새진리회가 처한 상황이 꼭 그리 난처하여서 2대 교주는 길을 가다 폭도에게 납치돼 구타를 당할 뻔하는 지경이 된다.

모두 여섯 편의 에피소드는 부활한 정진수가 저처럼 부활했다는 박정자(김신록 분)를 만나 제가 알고자 하는 것을 물으려는 이야기로 흘러간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너무 단순한 구조여서 이 이야기 가운데 전편에 등장했던 여러 인물은 물론이고, 정부요인 등 새로운 인물까지를 끼얹어 그들 간에 심화되는 갈등을 전면에서 다뤄내려 한다.

그러나 막상 지옥이 무엇이며, 시연당한 인물들이 그곳에서 어떤 경험을 하고 부활했는지, 그로부터 오늘 세상이 받게 되는 영향은 또 무언지, 무엇보다 대체 왜 시연이 이뤄지는 것인지 등에 대해선 단 하나의 궁금증도 제대로 답하지 않는다.

속편은 왜 성공하지 못했나
▲ 지옥 시즌2 스틸컷
ⓒ 넷플릭스
무엇보다 지난 시즌에선 사회 전반의 혼란상을 입체적으로 그려냈다면, 이번 시즌은 새진리회와 화살촉, 이를 관리하려는 정부의 모습만이 등장할 뿐, 보통사람들의 삶이 지옥의 사자와 시연 따위에 어떤 모습으로 영향을 받는지를 얼마 드러내지 않는다. 쫓고 쫓기며 싸우고 화해하는 몇 안 되는 인물들 간의 이야기로 남겨질 뿐이다.

결국 본론이라 할 것이 얼마 없는 시즌2는 개별 인물에게 기대어 이야기를 풀어갈 밖에 없다. 그러면 그럴수록 더 적은 서사로 더 많은 분량을 감당해야 하는 배우들의 부담만 커지게 되는데, 가뜩이나 지난 시즌 같은 배역을 맡은 앞의 배우가 연기력의 정점을 지냈다 해도 좋을 시기의 유아인이었고 보니 오늘의 정진수, 김성철에게도 난감한 노릇일 밖에.

<지옥> 시즌2가 글로벌 시청 수 1위에까지 오른 지난 시즌에도 불구하고 처참한 성적을 거두고 물러난 데는 이 같은 영향이 없지 않을 테다. 전편에 비해 캐릭터는 약해지고 뿌렸던 떡밥조차 거두지를 못하는데, 이미 지난 번에 보여준 시각적 충격은 더는 놀랍지가 않다. 그럴수록 선명해지는 것은 유아인이라는 걸출한 배우의 부재인데, 이는 비단 이 시리즈뿐 아니라 한국 영화계가 잃어버린 아까운 것이 무엇인지를 새삼 일깨우고 있는 것이다.
▲ 지옥 시즌2 포스터
ⓒ 넷플릭스

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