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작동한 ‘정당정치’, 비상계엄 못 막았다 [신년 기획]

황인성 2025. 1. 5.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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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뉴스-고려대 정치연구소 공동 정책 토론회
높아진 정당정치 위상…작동 여부엔 강한 의문
“존재감 상실 여당 계엄에 책임…정치 무개념 대통령 만들어”
극단 유튜브에 밀려 중심 놓친 정당정치
쿠키뉴스는 고려대 정치연구소와 함께 지난해 12월13일 고려대 정경관에서 ‘한국 정당정치, 어디로 가는가’라는 주제로 정치 토론회를 열었다. 사진=유희태 기자

현대 정당론을 체계화한 아일랜드 정치학자 피터 메이어(Peter Mair)는 “현대 민주주의에서 정치는 곧 정당정치”라고 말했다. 그만큼 현대 정치에서 정당의 위상과 중요성이 크다는 의미다.

다만 학계에서는 정당정치의 위기를 얘기하고 있다. 정당의 역할이 과거에 비해 커지고 정치의 중심에 서 있지만, 제대로 작동되지 못해 여러 문제를 양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해 연말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든 12·3 비상계엄은 정당정치 위기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는 결과물이라는 파격적인 해석도 나온다. 정당이 제 기능과 역할을 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쿠키뉴스는 고려대 정치연구소 SSK 양극화연구센터와 함께 지난해 12월13일 고려대 정경관에서 ‘한국 정당정치, 어디로 가는가’라는 주제로 정치 토론회를 열었다. 12·3 비상계엄 사태가 발생하기 전 기획됐는데 실제 토론회는 계엄 이후 탄핵 가결 이전에 열렸다. 이 때문에 12·3 비상계엄에 대한 정치학자들의 날카로운 비판과 각자의 해석들도 들을 수 있었다. 

토론회는 김동훈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좌장을 맡은 가운데 강우진(경북대)·권혁용(고려대)·문우진(아주대)·윤왕희(성균관대)·이정진(국회입법조사처)·장선화(고려대)·조계원(고려대) 등이 토론자로 나섰다. 총 2부로 나눠 진행돼 1부에서는 한국 정당정치의 현주소를 진단하는 시간을 가졌고, 2부에서는 이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들을 논의했다.

“여당 권위주의 계승 행태 보여”
“극단주의자 걸러내는데 실패”
“정치인이기를 포기한 대통령”

‘한국 정당정치’를 진단하는 1부 토론회에서는 지난해 12월3일 발생한 비상계엄 사태에 대한 정치학자들의 냉철한 비판과 분석이 펼쳐졌다.

비상계엄 사태가 발생한 배경에 정당정치의 실패가 있다는 데 대체로 공감했으며, 이날 토론회가 꽤 의미가 있다는 사실에도 동의했다.

강우진 경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한국 정당정치의 위기는 최근 들어 나타난 현상이 아니라 과거부터 일상화되어 왔다고 주장했다. 사진=유희태 기자

첫 토론자로 나선 강우진 경북대 교수는 “12·3 비상계엄 사태가 발생하기 전부터 정당정치의 위기는 일상화돼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표는 정당에 대한 국민의 낮은 신뢰라고 강조했다. 그는 2004년 이후 거대 양당이 최소 20회 이상의 비대위 체제를 맞이한 사실을 언급하면서 그간 한국 정치에서 정당들은 위기 또는 아주 예외적인 상태가 마치 ‘노멀(normal)’인 것처럼 지속되어 왔다고 꼬집었다. 겉으로는 정당이 체계를 갖춰가는 듯해 보이고 있지만, 정당 제도화 수준은 아직 지지부진하다는 것이다.

권혁용 고려대 교수는 한국 정당정치의 위기를 12·3 비상계엄 이전과 이후로 나눠 설명했다. 권 교수는 “계엄 이전에는 자신의 진영만 맞고 상대 진영은 틀렸다는 ‘정치적 부족주의(部族主義)’가 대표적인 정당정치의 위기 요인으로 꼽혔으나 계엄 이후 이 논의의 범주를 벗어났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현재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상태가 아니다. 권위주의 계승 정당으로서 현 집권당 모습을 여실히 보고 있다”며 “21세기에 접어들며 한국의 정당정치를 진보와 보수로 나눠 논의했는데 다시 돌아가 민주와 반민주의 구도를 생각해 볼 때”라고 강조했다. 지난달 12월7일 윤석열 대통령의 첫 탄핵안 표결 때, 의원들의 표결 불참을 당론으로 정한 국민의힘을 겨냥한 비판적 발언으로 여당이 권위주의를 계승한 채 반민주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꼬집은 것이다.

한국 정당정치를 오랜 기간 연구해온 문우진 아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당이 시민사회와 국가를 잇는 중간자적 역할을 해야 했지만 그동안 충분치 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사진=유희태 기자

문우진 아주대 교수는 비상계엄 사태를 윤석열 지도자 한 사람의 문제로 치부하기보다는 구조적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당내에서 적절한 후보를 찾지 못해 국민적 지지를 받는 외부 인사를 찾아 세웠고, 이는 정치의 개인화 현상으로 볼 수 있다고도 진단했다.

또 그는 정당이 시민사회와 국가를 잇는 연결고리 역할을 해야 하지만 이를 하지 못한 데에서 여러 문제가 양산됐다고 평가했다. 문 교수는 “정당이 우리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야 했지만, 현대사의 여러 사건을 거치며 그러지 못했다”며 “정당이라는 외형은 그럴싸하게 갖췄지만, 정작 정당이 해야 할 역할은 하지 못했다. 또 이를 제도화하는 데도 실패했다”고 말했다.

조계원 고려대 교수는 이번 비상계엄은 (제왕적) 대통령제가 가진 취약성에 더해 한국 정당정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을 때 얼마나 위험한 상황이 만들어질 수 있느냐를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라고 평가했다. 한국 정당이 정당 기반의 좋은 후보를 만들어내지 못한 채 대중의 지지를 받는 외부인을 추대하는 형식으로 후보를 내왔다면서 이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성공 모델 이후 반복되는 패턴을 보인다고 분석했다.

장선화 고려대 교수는 정당이 극단주의자를 걸러내는 일종의 문지기 역할을 해야 하나 그러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뿐 아니라 미국의 트럼프의 사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사진=유희태 기자

장선화 고려대 교수는 조 교수와 마찬가지로 정당이 ‘극단주의자를 선거 전에 걸러내는’ 문지기(gatekeeper)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점을 꼬집었다. 또 적극적 소수에 의한 정치 쏠림 현상도 짚었다. 장 교수는 “여러 정당은 당의 공직자 후보 선출 과정에 국민 전체의 의견을 반영한다는 차원에서 ‘오픈 프라이머리(Open primary)’를 시행하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실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적극적 소수인 경우가 많다”며 “특정 정치인을 지지하는 사람들 일명 ‘팬덤’에 의한 정치 쏠림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했다.

이정진 국회입법조사처 정치의회팀장은 정치 양극화를 한국 정당정치의 위기 요인이자 비상계엄의 배경으로 꼽았다. 이 팀장은 “20대 국회에 4개의 정당이 진출해 다당제가 실현될 거라는 작은 기대가 있었다”며 “정치 양극화는 아주 오래된 일은 아니다”라고 전제했다.

이어 그는 “21대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이 과반을 획득하며 정치 양극화가 추진되기 시작했고, 20대 대선과 22대 총선을 거치며 더 심화됐다”며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정치 양극화와 같은 모습들이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그는 19대 대선 당시 3명의 보수 후보가 출마했던 사실을 언급했다. 이 팀장은 “19대 대선 당시 홍준표, 유승민, 안철수 등 세 명의 보수 후보가 출마했다. 이들의 표를 합산하면 문재인 후보의 표보다 훨씬 많았지만 합치지 못해 패했다”며 “이후 보수는 그 진영 내에서도 다양한 목소리가 사라지고 양극화되는 경향을 보여왔다”고 했다. 

윤왕희 성균관대 교수는 12·3 비상계엄 사태를 언급하며 여당이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여당이 대통령을 견제해야 했지만 하지 않았거나 못했다는 것이다. 사진=유희태 기자

윤왕희 성균관대 교수는 정당정치의 위기를 설명하며 여당의 책임론을 강조했다. 윤 교수는 “대통령에게 제일 성가신 존재는 사실 야당이 아닌 여당이어야 한다”며 “대통령도 자신의 의지 또는 어떤 정책적인 것을 관철 또는 구현하려고 하면 상대를 충분히 설득하고 타협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여당이 알려주고 (윤 대통령이) 정치인으로 자리매김하도록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의 거듭되는 담화를 보면 현 대통령은 정치인이라고 규정하기조차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나아가서 정치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든다”며 “일각에서는 계엄을 막지 못한 국무위원의 잘못을 말하기도 하지만 그들은 법 제도적으로 보면 스텝에 지나지 않는다. 결국 여당이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는 말로 정리된다”고 설명했다.

“‘밀실 거래’도 정치의 영역”…정치 회복 필요성 공감
“정당 내 다양성 확보돼야 정치양극화 해소…시민사회와 소통 노력해야”
“유튜브에 침탈된 여론·정책”

2부 토론회에서는 한국 정당정치가 가진 위기 요인을 제거하고, 발전하는 대안을 제시하는 시간으로 채워졌다. 

일상화된 정당정치 위기를 주장한 강우진 교수는 제도적 통제 장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국민들이 대통령제를 선호해 당분간 현 제도를 유지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집중된) 대통령의 권한을 민주 제도 내에서 어떻게 잘 통제할 수 있는지 심도 있는 고민이 필요하다”면서 “중앙 집중적인 정당 구조를 개선시켜 지역 대표성을 끌어 올리는 방안 등도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혁용 고려대 교수는 정당정치 위기를 극복한 근본적인 대안으로 정치 복원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정치가 실종된 가운데 대화와 협력하는 정치 본연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의미다. 사진=유희태 기자

권혁용 교수는 진정한 의미의 정치 복원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는 “국회의원들이 모두 기득권 엘리트처럼 보이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다 처단되어야 할 대상은 아니다”라며 “정당 간 경쟁, 갈등과 타협, 밀실 거래까지 모든 게 사실은 정치의 영역”라며 “누군가에게는 추악해 보이는 것들도 사실 민주주의 정치라는 점을 모두가 인식하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대화와 협력을 이끌어내지 못한 여야의 정치 실종을 겨냥한 비판인 셈이다.

문우진 교수는 정당 내 다양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최근 정치권에서 늘 문제가 되는 정치 양극화 해소 방안으로 다양성 확보가 꽤 긍정적일 수 있다고 봤다. 문 교수는 “(양극화에 집중된 상황에서) 다양한 균열이 있으면 양극화 현상은 좀 약해질 수 있지 않겠느냐”며 “시민사회의 다양한 집단들이 당내 진입할 수 있고 그들의 대표성을 지난 인물이 국회의원 등에 선출된다면 이들은 자신이 대표하는 집단의 이익을 위해 입법 또는 의정 활동을 할 것이다. 곧 이는 당내 권한이 당 대표나 주요 정치인들에게 집중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조계원 고려대 교수는 12·3 비상계엄은 대통령제가 가진 취약성에 더해 한국 정당정치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아 벌어진 결과물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극단적 유튜브 등의 등장으로 정당이 제 기능과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짚었다. 사진=유희태 기자

조계원 교수 역시 다원화 회복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그는 반다원화 되는 최근의 정치의 현실의 문제를 짚으면서 “개인화된 채널인 유튜브가 과거에 정당이 담담했던 동원, 정책을 제안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더 나아가 이들이 극단화되면서 다원주의적 가치를 깨버렸는데 이를 복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구당 부활 등을 통한 정당 내부의 건전화·건실화가 필요하다고 부연했다.

장선화 교수는 권력 구조 개헌과 지구당 부활, 원내 교섭단체 기준 완화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그는 “상호 극한 대립의 상황에서 양당제가 취약하다는 관점에서 보면 이제 다른 통치 체제로의 전환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며 “또 지구당 부활 등의 방식으로 중앙의 권한을 나눠줄 필요가 있고, 원내 교섭단체 요건을 완화해 소수 정당이 의회에서 캐스팅보트 역할을 할 수 있게 하는 방안도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정진 국회입법조사처 정치의회팀장은 정당정치의 위기 요인으로 정치 양극화를 꼽았다. 사진=유희태 기자

이정진 팀장은 12·3 비상계엄 해제 후 이어진 탄핵 절차에서 국회의원의 표결권을 통제한 당론 채택이 과연 옳은 것인지에 대해 강한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국회의원은 개인의 양심에 따라 자율적으로 표결하게 되어 있다”며 “정당이 자신의 당원인 국회의원에 대해 어디까지 규제할 수 있는 것인지 문제제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국회 경비대가 국회의장과 국회의원의 국회 출입 자체를 막는다는 것이 과연 적절한지 여부를 두고 국회 차원의 논의가 있었다며 정치의 사법화 경향에 대해서도 경계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윤왕희 교수는 “정당은 이름만 남겨진 브랜드와 같다”는 표현을 썼다. 그는 정권 획득을 위한 결사체인 정당이 정작 정치를 위해 쓰이지 못하고 단지 경선 과정에 표를 행사하기 위한 용도로만 쓰이고 있다며 이제는 정당의 진정한 역할을 고민할 때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국회의원의 자율성과 정당 규율 사이의 조정이 필요하다고도 목소리 높였다. 당이 국회의원들을 강하게 통제하면서 극단에 가까운 의견들만 주로 대변되고 있다며 이는 정당정치를 훼손시킬 수밖에 없고 또 민주주의 훼손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황인성 기자 his1104@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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