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가족 매달려 한달 400만원 벌이"…애달픈 편의점 블루스
[SPECIAL REPORT] 고단한 현실
매출 20%가 빠졌습니다. 한숨이 나왔습니다. 지난달 30일 서울 은평구의 한 편의점. 매출 상황을 점검하던 이재천(62)씨가 “이거 대체 왜 이러는 거요”라며 아내 김미향(55)씨를 불렀습니다. 김씨가 “옴짝달싹 못하는 12월”이라고 운을 떼자 이씨는 “안심 못하는 2025년”이라고 받았습니다. 부창부수가 따로 없었습니다. 걱정은 되지만, 예전에도 그랬듯 함께 극복해 보자는 다짐이 느껴지기도 했고요.
그런데 취업 준비를 하며 이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24세 청년은 어떻게 됐을까요. 이 취준생 대신 들어온 29세 남성은 왜 단기직 알바만 전전할까요. 또 편의점 창업을 고민하는 60대 은퇴자, 편의점 물품을 실어나르는 화물기사, 편의점 삼각김밥으로 한 끼를 때우는 택배기사까지. 편의점이란 공통분모를 가진 이들은 우리네 옆집 아저씨·아줌마인 이씨와 김씨처럼 모두 ‘보통 사람들’입니다.
그중엔 소외에서 벗어나고 편견을 극복하자는 이들도 있습니다. 어려운 상황에도 한 줄기 희망을 부여잡고 일어서려는 분들도 있고요. 평범해서 되레 만나기 힘들었던 이들, 그럼에도 꼭 만나보고 싶었던 보통 사람들의 특별한 이야기를 중앙SUNDAY가 을사년 새해를 맞아 들어봤습니다.
매출 20% 뚝 “가장 추운 겨울” …애달픈 ‘편의점 블루스’
김씨가 점주고 이씨는 인건비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무급 가족종사자’로 뛰고 있습니다. 김씨는 저녁 근무 바통을 남편에게 넘기고 퇴근했습니다. 이씨는 “지난해 11월엔 주말마다 250만원 넘게 매출을 올렸는데 12월 들어서는 200만원 넘기기도 힘들다”며 “사람들이 통 움직이지 않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편의점 목이 좋습니다. 서울 은평구에서 매출 톱10 안에 든다네요. 하지만 이곳도 불경기라는 매서운 바람을 피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고깃집 사장도 “12월 매출 30% 빠져”
Q : 전해 12월과 비교하면요.
A : “마찬가지네요. 여기는 북한산 입구라 주말엔 그래도 좀 더 되는 편인데 역시 20% 정도 떨어졌어요. 그러니 계절적 특수성은 없다고 봐야죠. 모든 편의점이 이런 상황이라고 본사 관계자가 전하더군요.”
Q : 상품 가격이 전반적으로 올랐으니 매출도 올라야 하는 것 아닙니까.
A : “그렇죠. 가격 인상에서 ‘성역’으로 부르는 자체 브랜드(PB) 상품들도 7~10% 올랐으니까요. 손님들이 사지 않는 거로 무언의 항의를 하는 것 같습니다.”
하루 매출 200만원이면 많아 보입니다. 하지만 이씨는 “본사 납입금과 인건비·임대료·세금 등을 빼면 우리 가족에게 남는 건 한 달 400만원”이라고 했습니다. ‘은평구 톱10’ 치고는 생각보다 적습니다. 이씨는 그러더니 김밥과 샌드위치 제조일자를 유심히 살펴봤습니다. 그중 몇 개를 카운터에 툭툭 놓았고요.
Q : 유통기한이 임박한 거죠?
A : “네. 그런데 손님들이 안 사가니 이런 폐기물 처리가 많아졌어요. 보통 하루 3만원 안팎으로 잡는데 12월엔 하루 평균 폐기하는 상품 총 가격이 5만5000원 정도네요. 두 배에 가깝죠. 불경기에도 그나마 선방한다는 저희 같은 소매점이 이런데 외식업은 어떻겠습니까.”
이씨 말대로 외식업도 찬바람입니다. 서울 중구의 한 고깃집 사장도 “12월 매출이 20~30%는 빠진 것 같다”고 했으니까요. 한국신용데이터에 따르면 비상계엄 사태가 있던 지난해 12월 첫째 주 외식업 신용카드 매출은 전년 동기보다 9%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지난해 12월 소비자심리지수도 88.4. 한 달 새 12.3포인트나 빠져 이태원 참사 직후인 2022년 11월의 86.5 이후 가장 낮습니다. 소비자들이 경제 상황을 매우 비관적으로 보고 지갑을 닫고 있다는 징표입니다. 이들 부부를 처음 만나고 싶었던 때는 지난해 5월. 소비자심리지수가 98.4로 떨어졌을 때인데 당시보다 10포인트나 빠져 버렸습니다.
최철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고물가와 내수 침체 와중에 계엄·탄핵 사태가 터졌고 여객기 참사까지 덮치면서 소비 위축 현상이 지속할 가능성이 커졌다”며 “이 같은 추세는 고용 불안정을 가속화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인터뷰 도중 편의점의 새벽을 지킬 ‘알바생’ 박모씨가 출근했습니다. 박씨는 10년간 편의점 알바로 삶을 꾸려왔습니다.
Q : 알바만, 그것도 편의점에서만 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A : “편의점은 상품이 규격화돼 있기 때문에 손님 항의도 적은 편이라 일하기 편해요. 취객은 빼고요(웃음).”
Q : 삶이 불안정하진 않습니까.
A : “정규직은 생각도 안 하고 있어요. 스트레스와 열정페이 속으로 자진해서 들어가기 싫습니다. 필요한 만큼만 벌어서 쓰는 프리터족이라고 자처하며 살고 있어요.”
이 편의점에는 취준생도 한 명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기성준(24·가명)씨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습니다. 학원→편의점→학원 동선을 2년 가까이 되풀이했다는 그는 “취업을 위해 대학도 그만뒀는데 잘 안 됐다”고 전했습니다. 그는 지난 가을부터 “쉬고 있다”고 했습니다.
통계청의 지난해 11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특별한 이유 없이 일이나 구직 활동을 하지 않는 ‘쉬었음’ 인구는 242만 명. 1년 새 17만9000명 증가했습니다. 기씨와 같은 청년층(15~29세·6만2000명)이 가장 많이 늘었습니다. 청년층 실업률은 5.5%. 전체 실업률 2.2%와 차이가 큽니다. ‘그냥 쉼’ 인구는 이 실업률에 잡히지도 않습니다.
‘프리터족’인 박씨 같은 청년 비정규직도 갈수록 늘고 있습니다. 지난해 8월 기준 160만4000명입니다. 2년 전보다 3만1000명 늘었습니다. 전체 비정규직 중 45.2%로 통계를 내기 시작한 2003년 이후 최대 비율입니다. 편의점 알바 등 시간제(주 36시간 미만) 근무가 부추겼습니다. 지난해 청년 임금노동자가 2년 전보다 6.6% 줄어드는 동안 정규직은 12.5% 감소하고 시간제는 10% 늘었으니까요.
김성희 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는 “청년들이 갈 만한 일자리가 필요한 상황”이라며 “정부가 불안한 일자리를 양질의 일자리로 만드는 데 힘을 쏟아야 할 때”라고 강조했습니다.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으려는 본인의 노력도 따라야 하겠습니다. 경기도 고양시의 새내기 환경관리원(미화원) 조영규(27)씨를 다음날 새벽 어스름에 만났습니다.
Q : ‘청년 환경관리원’이 되셨네요.
A : “네. 3년간 소방공무원 채용 시험에서 미끄러졌습니다. 세 번째 낙방 뒤 목표를 과감히 바꿨죠. 대학에서 소방학을 전공했지만 아쉬움과 자존심은 버려야죠. 환경관리원이 되려고 20대 1 경쟁률을 뚫었습니다.”
Q : 20대 1이요?
A : “최근 저 같은 청년들이 많이 도전합니다. 몸은 힘들지만 ‘안정적’이니까요. 생활비는 벌어야 해서 편의점 알바로 버티며 공부했고요.”
취준생에게 편의점 알바는 인기가 높습니다. 누군가에겐 ‘생존의 단물’ 같은 곳이기도 합니다. 은퇴한 김모(61)씨는 2차 베이비부머의 맏형 격인 1964년생입니다. 편의점 창업을 꿈꾸지만 녹록지 않습니다. 최근 집 앞에 하나, 다니던 회사 앞에 하나가 사라지는 걸 봤으니까요.
이재천씨가 조언을 해줍니다. “편의점 운영은 절대 편하지 않다. 임대료와 인건비 상승으로 우리도 접은 경험이 있다. 본사와의 계약 조건에서 밀리면 사장보다 알바가 돈을 더 벌게 되는 농담 같은 현실에 부닥쳐 1년 버티기도 힘들다”고요. 초고령화 사회. 하지만 아직도 일할 수 있는 은퇴자들. 청년 일자리와 은퇴 후 일자리의 상충을 어떻게 조율할 수 있을까요. 숙제입니다.
50대 택배기사 “오늘은 18시간 일해요”
택배기사 이채연(53)씨와 화물기사 유영배(42)씨는 만나고 싶었지만 만나기 힘든, 대한민국에서 가장 바쁜 사람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지난달 31일 아침 이들은 주중 가장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Q : 왜 화요일에 가장 바쁜가요.
A : 이채연=“월요일에 물류창고에 물건이 들어오고 화요일에 우리가 실어나릅니다. 오늘은 새벽 5시부터 밤 11시까지 18시간 일해요. 다른 날보다 5~6시간 많습니다.” A : 유영배=“화물기사 중 젊은 편이라 편의점에 물건을 갖다 주는 ‘정식 업무’를 본 뒤 알바로 다른 화물 운송도 해요. 다른 기사보다 두 배 일하는 셈이죠.”
Q : 식사는 하십니까.
A : 이=“잘해야 하루 한 끼입니다. 그것도 편의점 삼각김밥을 운전석에서 먹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상은 했지만 만남은 짧았습니다. “인터뷰하는 이 시간도 돈”이라며 급히 떠났습니다. 오전 9시. 은평구 편의점의 알바생 박씨가 퇴근하고 점주인 김씨가 출근할 시간. 김씨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새해요? 힘들지만 믿고 다시 뛰어야죠. 그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요?” 누굴 믿는다는 건지 알 수는 없지만 되묻진 않았습니다. 24시간 여는 편의점에서 출발해 24시간 동안 만난 사람들. 을사년의 ‘편의점 블루스’는 과연 어떻게 바뀌게 될까요.
김홍준 기자 rimr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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