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치 제안 받았지만…지금은 가족 위해 희생할 때" 천재 유격수, 베어스와 영원한 이별 아니다 [은퇴 인터뷰②]
(엑스포츠뉴스 김근한 기자) 천재 유격수는 베어스와 영원한 이별을 고하지 않았다. 하지만, 제2의 인생을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다. 21년 동안 야구를 위해 자신을 희생했다면 당분간은 가족들을 위해 희생하는 시간을 보내고자 한다.
두산 베어스 유격수 레전드로 유니폼을 벗은 김재호는 2004년 1차 지명으로 팀에 입단해 10여 년의 오랜 백업 생활을 거쳐 주전 자리에 올라섰다. 백업의 설움과 주전의 간절함을 제대로 경험한 선수다. 그 과정에서 김재호를 버티게 한 건 가족들과 팬들의 믿음과 응원이었다.
다음은 김재호와의 현역 은퇴 관련 일문일답.
-10년 동안 백업 생활을 거친 뒤 10년 동안 주전 자리를 지켰다.
오래전부터 베어스 팀 색깔이 그랬다. 투수는 빨리 1군에 올라가서 활약했는데 야수는 처음부터 1군에 올리기보다는 2군에서 다듬는 시간이 비교적 길었다. 결국, 진득하게 그 기회를 기다리다가 오는 순간 잡는 것도 그 선수의 실력이다. 그래도 10년은 정말 길었다(웃음).
-그 긴 기간을 믿고 기다린 아내에게 고마움도 크겠다.
아내가 내 옆에서 정말 큰 희생을 했다. 내가 야구를 못할 때부터 항상 내 곁에 있어줬다. 아내가 그때부터 항상 '잘 될 수 있다고 믿으니까 만나고 있지'라고 말해줬다. 힘든 순간마다 그런 말을 듣고 내 편이 있다는 생각에 힘을 얻을 수 있었다.
-야구선수 아내로서 쉽지 않았을 텐데.
프로야구선수는 1년 내내 집 밖에 나가 있으니까 아내가 더 힘들 수밖에 없다. 항상 외롭고, 아이들을 홀로 키우는 시간이 많지 않나. 우린 아이들을 3명이나 돌봐야 하고(웃음). 21년 동안 내가 야구를 하기 위해서 가족들이 희생했다면 이제는 내가 가족들을 위해 희생할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스트레스도 크게 받았을 텐데 아내에게 정말 고맙단 말을 전하고 싶다.
-올 시즌 도중엔 부친상도 겪었다.
아버지께서 야구선수로 길을 밀어주시고 정말 큰 도움을 주셨었다. 그런데 야구선수로서 마지막 모습을 보여드리지 못한 게 안타깝고 속상했다. 은퇴식 때 아버지가 계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도 들더라. 최근 몇 년 동안 힘든 일이 많았으니까 더 아쉬움이 크다.
-이제 아버지 입장에서 아들이 야구선수를 하고 싶다고 하면 마음이 어떨까.
셋째가 운동 신경이 조금 있는 것 같기도 하고(웃음). 아들이 하고 싶다고 하면 고민하지 않을까. '너는 무조건 야구선수가 돼야 해'는 아니라고 본다. 물론 하고 싶어한다면 과감하게 도전해야 한다. 나도 처음엔 실패를 맛보고 나중에 결실을 맛볼 수 있었다. 실패가 두려워서 시작도 안 하는 건 미련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일을 하든 실패라는 경험이 있어야 마지막 순간 성공에 도움이 된다.
-향후 지도자의 꿈도 있는 건가.
앞서 구단과 현역 은퇴 얘기를 나누면서 지도자 생활에 대한 얘기도 나왔다. 구단에서 말해주신 코치 제안에 정말 감사했지만, 앞서 말했듯 지금은 가족들을 위해 희생할 때라고 생각했다. 또 무턱대고 코치를 시작하기보다는 야구 공부를 하면서 시야를 넓힐 시간도 필요하다. 내가 진짜 마음이 준비됐고, 자신이 있을 때 해야 하지 않을까. 야구를 31년 동안 했는데 인생 처음으로 야구가 아닌 다른 고민을 할 수 있으니까 신중하게 판단하겠다. 물론 두산 베어스와는 언젠가 다시 만날 날이 올 것으로 믿는다.
-두산 베어스 박정원 구단주와 한 약속을 지켰다고 들었는데.
몇 년 전에 2024년까지만 1군에서 잘 뛰어달라고 격려를 해주셨는데 그래도 마지막 구단주님과의 약속을 잘 지킨 듯해 홀가분하다(웃음). 구단주님께서 우리 야구단에 정말 큰 애정을 쏟아주셨다. 어려울 때에도 팀에 큰 투자를 해주신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앞으로도 두산 베어스에 큰 관심과 사랑을 주셨으면 좋겠다.
-선수 생활 동안 감사한 이들도 너무 많겠다.
선배님들이 다 야구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말씀하시더라. 왜냐하면 나만 생각하면 되니까. 감독님과 코치님들, 그리고 구단 프런트 직원분들까지 다 선수들을 위해 신경 써주시지 않나. 일일히 다 이름을 말하지는 못하지만, 그동안 내 야구 인생에서 인연을 맺은 모든 분에게 감사드린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세대교체 흐름 속에 떠나는 마음도 남다르겠다.
두산 팬들이 걱정이 많으실 텐데 후배들이 그런 우려를 씻도록 잘 컸으면 좋겠다. 어떻게 보면 구단과 팬 모두 7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 때 그 시절을 이제 잊어야 한다. 이제는 바뀌어야 하는 베어스에 적응해야 하고, 또 다른 시선으로 팀을 바라봐야 하는 시대가 왔다. 다른 세대의 팀을 만들어야 하는 과정은 그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다.
-그만큼 긴 인내심이 필요한 시간이다.
팀이 어려울 때 비난보다는 같이 힘들어하고 격려를 해주시면 더 좋지 않을까. 2015년부터 팀 전성기를 함께한 팬들도 있지만, 최근 새롭게 입문하신 젊은 팬들도 있다. 그런 팬들께서 어린 선수들을 더 너그럽게 지켜봐 주시고, 따듯하게 응원을 해주셨으면 좋겠다. 우리 세대가 2010년대 중반에 해냈듯 지금 어린 선수들도 꼭 해낼 수 있다고 믿는다. 다들 어렵다고 말할 때 '미러클 두'를 보여줄 거다. 내가 아는 두산 베어스는 그런 팀이다.
사진=김근한 기자/엑스포츠뉴스 DB
김근한 기자 forevertoss88@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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