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항공 참사, 해외 전문가들이 조류 충돌보다 주목한 것

김성욱 2025. 1. 3. 0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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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 참사 키운 세 가지 원인... 과징금1위·보잉 737-800 랜딩기어·콘크리트 둔덕

[김성욱 기자]

 1일 오전 전남 무안군 무안국제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현장에서 탑승객 유가족들이 사고 여객기 잔해를 살펴보고 있다.
ⓒ 연합뉴스
아직 블랙박스는 열리지 않았지만, 179명이 숨진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는 여러 위험한 조건들이 복합적으로 맞물려 벌어졌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제주항공을 비롯한 저가항공 산업 전반의 양적 성장에 못 미친 안전 관리 부실 ▲랜딩기어(착륙 바퀴) 미작동 등 보잉 737-800 기체 자체의 결함 가능성 ▲무안공항 활주로 가까이 설치돼 참사를 키운 '콘크리트 둔덕'을 방치한 국토교통부·한국공항공사의 안전 관리 실패 등 크게 3가지 요인이 참사의 구조적 배경으로 꼽히고 있다.

① '안전' 둔감한 저가항공… 제주항공, 항공안전법 위반 과징금 1위
 1일 오전 전남 무안군 무안국제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현장에서 미국 국가교통안전위원회(NTSB)와 연방항공국(FAA), 보잉사 관계자들로 구성된 미국 조사단이 국토부 사고조사관과 현장 조사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장영근 전 한국항공대학교 항공우주기계공학부 교수는 2일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이런 대형 참사는 복수의 복합적 원인들이 구조적으로 겹쳐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라며 "아직 규명돼야 할 빈칸이 많은 참사 초기 단계지만, LCC(Low Cost Carrier, 저가항공사)가 정비 등 안전 문제에 충분한 비용을 투자할 수 없다는 근원적 한계를 노출한 것이 핵심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현재 한국에는 총 9개의 저가항공사가 있다. 이는 우리보다 면적이 98배 넓은 미국과 같은 숫자로, 세계 공동 1위다. 이미 지난 2023년에 국내항공사 국제선 이용객 4720만 명 중 저가항공 이용객(2419만 명)이 대한항공·아시아나 등 대형항공 이용객(2300만 명)을 앞지른 상황이다.

참사를 낸 제주항공은 급성장한 국내 저가항공 중에서도 업계 1위 업체다. 제주항공은 국내 저가항공 사업이 시작된 지난 2005년 설립돼, 지난해 매출 1조 7240억 원·영업이익 1698억 원으로 1위를 달렸다. 업계에 따르면, 저가항공은 초기 투자 비용이 커 마진을 남기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고, 흑자로 전환된 후로는 운항을 하는 대로 이익이 되는 구조라고 한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국내 저가항공 업체가 난립해 출혈 경쟁이 심화되면서 운항 횟수도 늘어나는 추세"라며 "특히 크리스마스 시즌이 낀 연말에는 모객이 늘기 때문에 정비 등 안전에 들어가는 시간이 더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이번에 참사가 난 제주항공 여객기는 참사 직전 48시간 동안 총 8개 공항을 오가며 13차례나 운항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2월 27~28일 이틀 사이 짧게는 38분, 길게는 5시간 46분에 달하는 중·단거리 비행을 반복한 것이다. 지난해 3분기 기준, 제주항공 여객기 1대당 월평균 가동 시간은 418시간으로 국내에서 가장 길었다.

제주항공의 안전에 빨간 불이 켜져 있었다는 건 다른 통계로도 드러난다. 최근 5년간 항공안전법 위반으로 납부한 과징금 내역에서 제주항공이 1위(37억 3800만 원)였다. 이어 이스타항공(28억 6000만 원)·티웨이항공(24억 3900만 원)·대한항공(16억 2000만 원)·진에어(13억 5900만 원)·에어서울(2억 1000만 원)·에어부산(2000만 원) 순이었다.

여객기의 평균 기령 역시 14.4년으로 제주항공이 가장 오래된 비행기를 돌리고 있었다. 티웨이항공은 13년, 진에어는 12.7년, 아시아나는 12.3년, 대한항공은 11.3년이었다. 이번에 참사가 난 비행기의 기령은 15년이었다.

낡은 비행기를 모는 반면, 제주항공 비행기 1대당 정비사 수는 11.2명에 불과해, 대한항공(18.6명)·아시아나(16명)·티웨이항공(11.5명)에 못 미쳤다. 국내 저가항공사들이 자체적으로 정비를 하지 않고 해외에 외주 정비를 맡기는 비중은 2019년 62.2%(총 비용액 3072억 원)에서 2023년 71.1%(총 비용액 5027억 원)까지 오른 상태다.

제주항공 측은 '참사 비행기의 스케줄상 정비 시간이 부족했던 게 아니냐'는 질문에 "정비는 빠짐없이, 철저하게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다만 제주항공 측은 참사가 난 여객기의 월평균 가동시간이나 직전 달 총 가동시간 등에 대해선 함구했다. 제주항공 측은 뒤늦게 "올해 정비사 총원은 522명으로, 내년 연말까지 38명을 더 늘려 총 560명을 채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② 보잉 737-800의 랜딩기어… 보잉, 잇단 사고로 올해만 주가 3분의 1토막
 1일 오후 전남 무안군 무안국제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현장에서 국토부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 관계자 등이 방위각시설(로컬라이저)이 있는 콘크리트 둔덕을 살피고 있다.
ⓒ 연합뉴스
또 하나의 원인은 참사가 난 보잉 737-800 기종의 랜딩기어 결함 여부다. 아직 조사가 진행 중이지만, 참사 당시 영상 등을 종합해 보면 비행기는 착륙 바퀴(랜딩기어)가 내려오지 않은 채 활주로에 비상 착륙을 시도했다. 김인규 한국항공대학교 비행교육원 원장은 "여러 제보 영상들이 나오면서 사고의 1차적 원인이 조류 충돌이라고 단정하는 시각이 있으나, 아직 그렇게 보긴 이르다"라면서 "객관적으로 보면 동체착륙으로 인한 사고이기 때문에 랜딩기어가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급하게 착륙을 하게 된 원인에 대해 조사해야 한다"고 밝혔다.

장 전 교수 역시 "과연 버드 스트라이크(조류 충돌)가 먼저인지, 랜딩기어 문제가 먼저인지 아직 규명되지 않았다고 봐야 한다"라며 "버드 스트라이크는 흔하지는 않지만 종종 일어나는 일로, 버드 스트라이크가 일어날 때마다 이런 큰 참사가 생기는 건 결코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랜딩기어가 작동을 안 하더라도 보조 펌프도 있고, 최후에는 수동 릴리즈까지 3중으로 장치가 돼있다"라며 "짧은 시간 동안 무슨 결함이 생겼는지 밝혀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고승희 신라대학교 항공운항학과 교수도 "향후 조사 결과가 나오겠지만 가장 의문스러운 것은 결과적으로 왜 랜딩기어가 내려오지 않았는지 부분"라며 "레버 등에 무슨 문제가 있었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실제 보잉 737-800의 랜딩기어는 잦은 사고 사례가 보고되고 있다. 심지어 이번 참사가 벌어진 지 채 하루도 안 된 지난 2024년 12월 30일 오전 제주항공이 운행하는 또 다른 보잉 737-800이 랜딩기어 문제로 제주공항으로 출발했다가 김포공항으로 회항하는 일이 벌어졌다. 지난 2024년 10월에는 에어인디아익스프레스의 보잉 737-800이 인도 공항에서 이륙한 후 랜딩기어 문제로 2시간 반 만에 회항한 일이 있었다.

2022년 3월에는 중국동방항공의 보잉 737-800이 중국 남부에서 추락해 132명이 전원 사망했는데, 아직까지 명확한 참사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다. 보잉 737-800은 지난 1997년 출시돼 현재까지 5000대 이상 팔린 것으로 알려진다.

현재 국내에 운항중인 보잉 737-800은 총 101대다. ▲제주항공 39대 ▲진에어 19대 ▲티웨이 27대 ▲이스타 10대 ▲대한항공 2대 ▲에어인천 4대다. 특히 제주항공은 전체 41대 중 39대가 보잉 737-800이었다. 보잉 737-800에 대한 논란이 커지자 국토부는 2일 "제주항공뿐만 아니라 보잉 737-800 기종을 갖고 있는 6개사에 대한 점검을 하고 있다"(유경수 국토부 항공안전정책관)고 밝혔다.
 무안국제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 원인 규명에 핵심적 역할을 할 블랙박스 비행기록장치(FDR)가 일부 부품 파손 탓에 미국으로 옮겨져 분석 작업을 거치게 됐다. 또다른 블랙박스인 조종실 음성기록장치(CVR)는 데이터 추출 작업이 마무리돼 앞으로 약 이틀 안에 파일 변환을 마치고 분석에 들어갈 예정이다. 사진은 FDR로 원통형 부품은 데이터 보관 유닛.
ⓒ 연합뉴스
업계 일각에서는 이번 참사 조사에 미국 보잉사 직원들이 참여하고 있는 점을 들어 기계 결함 대신 조종사 등의 '인적 과실'을 강조하는 쪽의 조사 결과를 내도록 영향력을 행사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국토부에 따르면, 보잉 관계자 6명은 지난 2024년 12월 31일부터 한국에 입국해 이번 참사 조사에 참여하고 있다. 게다가 국내 조사기관이 확보한 블랙박스 중 하나인 비행기록장치(FDR, Flight Data Recorder)는 일부 부품 유실로 해독에 어려움을 겪어 미국으로 보내 조사하기로 한 실정이다.

주종완 국토부 항공정책실장은 이날 '미국 측이 제작사인 보잉 쪽에 유리하게 해독하지 않겠냐는 의구심은 없나'라는 취재진 질문에 "사조위(사고조사위원회)의 우리 조사관들이 함께 조사를 하게 된다"라며 "(보잉에)편향된 결과에 대해서는 우려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제주항공 참사 직후인 2024년 12월 30일(미국 현지시각) 보잉 주가는 한때 4% 넘게 떨어지기도 했다. 보잉 주가는 2024년 한 해에만 무려 29.87% 하락했는데, 비용 절감 일변도의 기업문화로 잇단 사고가 발생해 신뢰를 잃었다는 평가가 주되다.

③ 참사 키운 무안공항 '콘크리트 둔덕'… 나흘째 침묵하는 국토부
 국토교통부 주종완 항공정책실장(왼쪽)이 2일 오후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무안 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 브리핑'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왼쪽부터 주 실장, 유경수 항공안전정책관, 김홍락 공항정책관.
ⓒ 연합뉴스
마지막으로 무안공항 활주로 끝에서 불과 251미터 떨어진 곳에 설치된 콘크리트 둔덕 문제다. 참사 당시 무안공항 활주로에 비상착륙하던 제주항공 여객기는 이 콘크리트 둔덕에 부딪히면서 크게 폭발했다. 공항시설법과 국제민간항공기구(International Civil Aviation Organization, ICAO) 등에 따르면, 비상시 이번과 같은 충돌 위험이 있기 때문에 공항 내에 있는 설치물은 부러지기 쉬운 재질이어야 한다.

활주로 끝 부분에 설치돼 비행기가 똑바로 착륙할 수 있게 돕는 안테나(로컬라이져·방위각시설)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무안공항의 경우는 지나치게 단단한 콘크리트 받침대 위에 안테나가 있었다.

문제의 무안공항 콘크리트 둔덕은 가로 40미터, 높이 2미터, 두께 4미터였다. 국토부에 따르면 이 둔덕은 2007년 무안공항 개항부터 존재했는데, 심지어 2023년 이뤄진 개량 공사 때에는 그 위에 또다시 30센티미터 두께의 콘크리트 상판이 덧씌워졌다. 구조물이 부러지기 쉬운 재질로 개선되기는커녕 오히려 더 견고해진 것이다.

참사 초기 버드 스트라이크에 집중했던 국내와 달리, 콘크리트 둔덕이 참사를 키웠다는 지적은 해외 전문가들로부터 먼저 제기됐다. 항공 전문가인 데이비드 리어마운트는 한국 시간으로 2024년 12월 30일 영국 스카이뉴스에 출연해 "착륙 시 조종사가 랜딩 기어를 내리지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하더라도, 그 자체가 탑승객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직접적 원인은 아니다"라며 "승객들은 활주로 끝을 바로 조금 벗어난 곳에 있던 견고한 구조물에 부딪혀 사망한 것이다. 그곳은 그런 단단한 구조물이 있으면 안 되는 위치였다"고 말했다.

파일럿 출신인 더그 모스는 워싱턴포스트에 "항공기가 활주로를 벗어나는 것을 예상해야 한다"라며 "이번 것(무안공항 콘크리트 둔덕)은 최악"이라고 했다.
 1일 오후 전남 무안군 무안국제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현장에서 국토부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 관계자 등이 방위각시설(로컬라이저)을 살피고 있다.
ⓒ 연합뉴스
홍병희 서울대학교 화학부 교수도 전날 JTBC에 출연해 "사고 후 둔덕의 흙은 뒤쪽으로 구조가 손상됐는데, 콘크리트 상판은 거의 그대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라며 "기체가 그 충격량을 다 받았다고 보이기 때문에 거의 건물에 들이받은 수준"이라고 말했다. 박기범 경일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콘크리트 상판이 없었다면, 언덕을 타고 비행기가 넘어가서 꺾여서 부서지는 정도의 사고로 사고 유형이 바뀌지 않았을까 싶다"고 했다.

그러나 주무부처인 국토부는 무안공항의 콘크리트 둔덕이 위험하다는 지적을 나흘째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국토부는 이날도 콘크리트 둔덕에 대한 취재진 질문이 쏟아졌음에도 "파악 중"(주종완 실장)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책임 회피를 하고 있는 것이다.

국토부는 콘크리트 둔덕과 관련한 지적이 처음 나온 지난 2024년 12월 30일부터 4차례나 말을 바꿨다. 국토부는 안테나 시설물의 형태에 대해 "정해진 규격이 없다"(12월 30일)고 했다가 반론이 나오자 "규정을 파악하고 있다"(12월 30일)라고 했다가 다시 "무안공항 로컬라이져는 관련 규정에 맞게 설치됐다"(12월 30일)고 했다가 또다시 반박이 나오자 "규정을 확인하겠다"(12월 31일)고 한발 물러섰다. 이후 이날까지 이렇다 할 해명도 못 하고 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관계자는 "콘크리트 둔덕이 문제였다고 인정하게 될 경우 국토교통부와 한국공항공사 측의 책임 소재가 생길 수 있어 답변을 피하고 있는 것"이라며 "무책임한 태도"라고 지적했다. 정문교 전 하이난항공 기장은 "국토부가 책임 범위를 희석화시키려 하고 있다"고 했다.

[관련기사]
-179명 참사난 기종, 또 랜딩기어 문제로 회항… "운항 중단 없다"는 제주항공 https://omn.kr/2bo5l
-활주로 끝 251미터 떨어진 '콘크리트 둔덕'..."그게 왜 있나" https://omn.kr/2boc7
- '콘크리트 둔덕' 논란에 말바꾸기 급급한 국토부 https://omn.kr/2bow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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