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250만잔' 홍콩 국민차, 비법은 '실크 스타킹'

손민호, 백종현 2025. 1. 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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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백끼 - 서민식당 ‘차찬텡’


차찬텡은 홍콩을 대표하는 서민 식당이다. 찻집과 식당이 결합한 형태로 1950년대부터 홍콩 전역에 뿌리내렸다. 사진은 홍콩섬 타이항의 맛집 ‘빙키’. 다이파이동(한국의 포장마차 같은 노천 식당) 형태를 한 차찬텡으로 언제나 만석이다. 백종현 기자
차찬텡(茶餐廳)은 홍콩의 대표적인 서민 식당이다. 이름 그대로 차(茶)와 음식(餐)을 함께 먹는 곳. 밀크티·커피는 기본이고 샌드위치·토스트·에그타르트 같은 서양식까지 없는 게 없다. 집이 작아 부엌을 들이지 못하는 홍콩의 서민은 아침도 밖에서 사 먹고, 저녁도 밖에서 사 먹는다. 삼시 세끼를 바깥에서 해결하는 홍콩인에게 부담 없는 부엌 노릇을 하는 식당이 바로 이 차찬텡이다. 이것저것 시켜도 1만원이면 충분하니 부담도 없다.

싸고 빠르고, 없는 게 없는 차찬텡은 한국인 여행자에게 ‘홍콩의 김밥천국’으로 통한다. 홍콩을 대표하는 차찬텡 4곳을 추렸다.

뜨거운 물에 계란 동동 - 미도카페
차찬텡은 70여 년 역사를 헤아린다. 원래는 찻집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찻집들이 스테이크·커피·파스타 같은 서양 메뉴를 추가하면서 진화했다. 질은 떨어질지 몰라도 서민은 열광했다. 고급 레스토랑 갈 돈의 10분의 1만 있으면 스테이크를 썰 수 있었다.

꽌쒀이까이딴. 뜨거운 물에 달걀과 설탕을 푼 음료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구룡반도 야우마테이(油麻地)에 1세대 차찬텡 ‘미도카페(美都餐室)’가 있다. 1950년 개업해 오늘에 이른다. 홍콩 차찬텡을 상징하는 추억의 메뉴 2개를 주문했다. 연유와 설탕을 넣은 팥 음료 홍다우뺑(紅豆冰·50홍콩달러·약 9500원)과 뜨거운 물에 달걀과 설탕만 넣고 저어 마시는 꽌쒀이까이딴(滾水雞蛋·22홍콩달러·약 4100원).

맛은 평범했지만, 식당은 옛 정취로 가득했다. 콜라병처럼 옅은 청색이 도는 유리창부터 타일 하나, 소품 하나에도 세월이 흔적이 묻어 있었다. ‘촬영 금지’ 안내문이 붙어 있었는데, 다들 주인장 몰래 사진을 찍고 갔다. 식당이라기보다 추억을 파는 테마파크 같았다.

홍콩의 국민 음료 나이차 - 란퐁유엔

1952년 오픈한 1세대 차찬텡 란퐁유엔. [그림 안충기 화백]

홍콩인의 국민 음료는 홍콩식 밀크티 나이차(奶茶)다. 골목골목의 차찬텡에서도 팔고, 온갖 브랜드 달고 편의점에서도 팔린다. 하루 약 250만 잔의 나이차가 소비된다는 통계도 있다. 진하게 우린 차에 무당연유를 섞는 게 특징. 덥고 습한 홍콩에선 썩기 쉬운 우유보다 우유를 농축한 연유가 쓸모가 많았다. 나이차에 커피를 섞은 윤영(鸳鸯) 역시 홍콩에서만 맛볼 수 있는 별미다.

긴 거름망으로 나이차를 내리는 모습.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나이차’ ‘윤영’ 하면 떠오르는 집이 1952년 문을 연 차찬텡 ‘란퐁유엔(蘭芳園)’이다. 이른바 ‘실크 스타킹 밀크티’를 홍콩에 퍼뜨린 집이다. 균일하고 부드러운 차를 만들기 위해 찻잎을 세 번에 걸쳐 걸러내는데, 이때 쓰는 고밀도 거름망이 스타킹처럼 보인다고 하여 ‘실크 스타킹 밀크티’란 이름이 붙었다. 나이차 제조 기술은 홍콩 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나이차 한 잔 25홍콩달러(약 4700원). 박찬일 셰프는 “나이차에 스틱 설탕 3봉지는 넣어야 진정한 맛을 즐길 수 있다”고 귀띔했다.

한국엔 없는 토마토 라면 - 싱흥유엔

싱흥유엔. 한국인 관광객 사이에서도 유명한 식당이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차찬텡은 태생부터 가성비가 생명이었다. 싸고 빠르고 간편해야 서민의 선택을 받을 수 있었다. 차찬텡에 공짜이민(公仔麵·라면) 요리가 흔한 이유다.

토마토 넣은 라면은 홍콩에서 처음 먹어봤다. 홍콩에서는 판케아민(蕃茄牛麵)이라 부른다. 판케아민으로 가장 유명한 집이 67년 전통의 ‘싱흥유엔(勝香園)’이다. 란퐁유엔과 더불어 가장 긴 줄이 서는 차찬텡이다.

싱흥유엔의 인기 메뉴 크리스피 번과 토마토 라면.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갓 익힌 토마토와 푹 익힌 홀토마토(껍질을 벗겨 가공한 토마토 통조림)를 적절히 배합한 다음, 갖은 육수로 끓인 라면에 얹는다. 취향에 따라 스팸·베이컨·돼지갈비·계란프라이를 추가하는데, 소고기 얹은 판케아우욕민(蕃茄牛肉麵)이 제일 잘 나간다. 40홍콩달러(약 7600원). 시큼하면서도 달짝지근한 것이 계속 입맛을 당겼다. 라면은 김밥하고만 어울리는 줄 알았는데, 싱흥유엔에서는 크리스피 번이 판케이민의 단짝 메뉴로 통한다. 바삭하게 구운 크리스피 번을 버터와 연유를 발라 먹는데, 한번 맛들이면 헤어나기 어렵다.

차찬텡 입문자에게 권합니다 - 빙키
아무리 작은 차찬텡도 기본 50가지 이상의 메뉴를 내놓는다. 거위구이 씨우오(燒鵝)처럼 미리 조리해둘 수 있는 음식이나, 통조림·라면·토스트처럼 조리가 간단한 음식이 많아 무엇을 주문하든 10분 안에 음식이 나온다.

그 많은 메뉴가 다 맛있었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한국인에게는 설탕물에 날계란을 푼 꽌쒀이까이딴이나 토마토라면이 낯설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는 차씨우(叉燒·돼지고기 바비큐) 올린 국물 자작한 스파게티 앞에서 이탈리아 사람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했다.

빙키의 돼지갈비 라면.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차찬텡 초보자에게 권하고 싶은 메뉴가 있다. 돼지갈비 올린 라면 쭈파민(豬扒麵)이다. 가게마다 양념과 비법이 조금씩 다른데, 타이항(大坑)의 ‘빙키(炳記)’에서 먹은 쭈파민이 가장 탁월했다. 닭 육수로 끓인 라면에 불향 가득한 돼지갈비를 올려낸다. 30홍콩달러(약 5700원). 특제 흑후추 양념을 발라 구워 잡내가 없었고 감칠맛이 도드라졌다. 장담컨대 한국인이라면 절대 싫어할 수 없는 맛이다.

정근영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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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호·백종현 기자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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