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치엔허·허버트 김·김건후… 파란만장 경계인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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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후.
6·25 전쟁이 일어나고 8개월 만에 북으로 끌려간 김건후는 생사를 알 길이 없다.
국내외 역사학자들이 참여한 이번 책은 김건후의 생애의 의미를 시대적 맥락 속에서 고찰하고 있다.
김건후의 부친 김홍서의 삶을 통해서는 상하이와 난징 등에서 펼쳐진 독립운동가들의 역정을 생생히 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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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원 엮음
경인문화사, 367쪽, 2만4000원
김건후. 그의 이름을 아는 이가 몇이나 될까. 러일 전쟁이 일어난 1904년 평안남도에서 태어난 김건후는 중국에서는 ‘칭치엔허’가 됐고, 미국에서는 ‘허버트 김’으로 불렸다. 소련에서는 ‘게르베르트 김’으로 살았다. 20세기 초 격동의 한국 역사를 관통한 그의 삶은 이름만큼이나 말 그대로 파란만장했다. 6·25 전쟁이 일어나고 8개월 만에 북으로 끌려간 김건후는 생사를 알 길이 없다.
얼굴조차 본 적이 없는 딸 김재원은 아버지의 흔적을 찾아 나섰다. 어머니 정정식으로부터 전해진 기억, 소련 강제수용소에서의 생활을 기록한 김건후의 친필 수기, KGB(옛 소련 비밀경찰)와 미국 국립문서고 등에 보관돼 있던 기밀문서와 자료들을 수집하면서 그의 행적을 추적했다. 그렇게 모은 자료들은 2022년 ‘잊혀진 이름, 잊혀진 역사’라는 한 권의 책으로 나왔다. 국내외 역사학자들이 참여한 이번 책은 김건후의 생애의 의미를 시대적 맥락 속에서 고찰하고 있다.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감리교계 보통학교와 중학교를 졸업한 김건후는 독립운동을 했던 아버지 김홍서의 부름을 받고 가족과 함께 중국으로 건너간다. 김건후는 난징에서 선교사들이 운영하던 사립학교 금릉중학교에서 3년, 금릉대학교(현 난징대학)에서 2년 수학 후 1923년 미국 유학길에 오른다. 콜로라도 광산대(CSM)를 다녔다. 당시 미국은 자원 개발 붐이 일면서 광산학이 각광을 받던 시기였다. 그는 한 편지에서 “젊은 한국인으로서 무엇보다도 실용적인 분야에 진출해야 한다고 느꼈고, 그래서 광산학의 미래 실용성에 주목했다”고 말했다. 당시 어려운 유학 여건에서도 활기찬 학생이었다. 축제와 스포츠 경기에서도 두각을 나타내 지역 신문에도 실렸다. 광산대 총장의 눈에 들어 사택에서 2년간 지내기도 했다.
컬럼비아대 대학원에서 금속공학을 전공하며 학업을 이어간 김건후는 1930년 소련으로 향한다. 1929년 시작돼 10년간 이어진 대공황 속에 식민지 조선의 청년이 미국에서는 일자리를 찾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당시 소련에 속해 있던 카자흐스탄의 광산에서 7년 동안 일하면서 점차 스탈린 독재에 환멸을 느끼던 김건후는 소련을 떠나려고 했다. 하지만 1937년 일본 스파이 혐의로 체포돼 사형 선고를 받은 뒤 25년 형으로 감형돼 악명 높은 소련 강제수용소 굴라크(Gulag)에서 5년 가까이 강제노동에 시달렸다. 중국 국적이었던 김건후는 소련 주재 중국 대사의 도움으로 중국으로 송환된 뒤 광복 이듬해 조국으로 돌아왔다.
미 군정청 실력자들의 통역을 거쳐 조선중석에서 기술고문으로 일했다. ‘공산주의자’라는 음해 속에 조국을 위해 봉사하려던 꿈도 사그라들던 무렵 6·25가 터졌고, 북으로 끌려간 그는 현재까지 생사와 관련된 어떤 이야기도 전해지지 않고 있다.
책은 김건후 개인사를 바탕으로 20세기 전반부 굴곡진 현대사의 전반을 살펴볼 수 있는 훌륭한 ‘미시사’로도 읽을 수 있다. 김건후의 부친 김홍서의 삶을 통해서는 상하이와 난징 등에서 펼쳐진 독립운동가들의 역정을 생생히 접할 수 있다.
일제 강점기 한인들의 미국 유학사와 함께 스탈린의 산업화와 강제 노동, 소련의 산업구조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김건후가 한국으로 돌아온 뒤 겪은 건국 과정의 난맥상도 드러난다. 책을 엮은 김재원은 “한국의 참혹했던 근대사에는 김건후와 마찬가지로 지워진 혹은 잊힌 인물과 묻힌 사례가 적지 않을 것”이라며 “잊힌 인물과 묻힌 사례의 철저한 발굴과 복원으로 한국 근대사가 올바르고 촘촘하게 완성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맹경환 선임기자 khmae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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