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 대항마…날개 단 ASIC 대장주 [미장 보석주]
최근 월가 핫 키워드는 ‘ASIC(주문형 반도체)’다. 관련 산업 대장주로 꼽히는 브로드컴과 마벨테크놀로지 주가만 봐도 알 수 있다. 2024년 12월 24일 브로드컴 종가는 239.9달러. 한 달 전인 11월 25일 164.8달러와 비교하면 45.5% 올랐다. 마벨테크놀로지도 비슷하다. 11월 25일 92.2달러 수준이던 주가는 12월 24일 기준 115.9달러를 기록했다. 25.7% 상승이다. 문준호 삼성증권 애널리스트는 “시장 관심은 이미 ASIC 밸류체인으로 서서히 옮겨 가고 있다”며 “ASIC 부문 대장주인 브로드컴과 투자 포인트가 겹치는 마벨테크놀로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브로드컴·마벨 “ASIC 매출 급증할 것”
ASIC 열풍은 인공지능(AI) 가속기 시장 주요 고객사인 빅테크의 ‘칩 내재화’ 트렌드와 맞물린다. 빅테크가 내재화에 나선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비용적 부담이다. 엔비디아 컴퓨터 그래픽처리장치(GPU)는 여전히 비싼 값에 판매된다. 엔비디아가 2024년 4분기 양산에 돌입한 차세대 제품 블랙웰(B200) 가격은 칩 1개당 4만달러(약 5800만원) 수준이다. 2025년 키워드를 ‘AI 수익화’로 내세운 빅테크 입장에선 고민될 수밖에 없다. B200 등 엔비디아 GPU만 오롯이 고집해선 폭증하는 설비투자(CAPEX) 규모를 감축하기 힘들다. 엔비디아 GPU 의존도를 낮추고 직접 개발한 칩 비중을 늘리는 게 빅테크의 대안이다. IT 업계 관계자는 “엔비디아 GPU는 워낙 독점적 지위인 탓에 각종 서비스나 소프트웨어를 일종의 끼워팔기(번들링) 형태로 판매, 시장에 알려진 것보다 가격을 높이는 경우가 많다”며 “유럽연합(EU) 반독점 당국이 엔비디아 조사에 나선 것도 번들링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이유는 엔비디아 GPU의 구조적 한계다. 엔비디아 GPU는 큰 틀에선 ‘범용 칩’에 가깝다. 물론 H100을 기점으로 전통적인 GPU에 ASIC 요소들이 더해져 신경망처리장치(NPU) 형태도 일부 갖췄지만, 완벽한 건 아니다. 입맛에 딱 맞는 추론용 칩을 원하는 빅테크 입장에선 독자 개발이 ‘남는 장사’로 느껴질 수 있는 대목이다. 문준호 애널리스트는 “범용 칩은 불필요한 기능까지 지원할 수 있게 설계되는 것을 뜻한다. 고객 입장에서는 필요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비싼 돈을 지불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또 이론적으로 많은 것을 지원한다는 점은 불필요한 에너지 소모로도 이어지기에 전력 효율성도 우수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지난해까지는 ASIC 중요성이 성능보다는 비용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지만, 2024년을 기점으로 ‘원하는 성능’에 초점이 맞춰져 ASIC 시장이 크고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칩 내재화는 빅테크 스스로 할 수 없다. 최신 반도체에는 설계자산(IP)만 수백 개 이상이 필요하다. 당장 고대역폭메모리(HBM) 등을 잘 다뤄야 AI 시장에 적합한 칩 개발도 가능하다. 문제는 해당 역량을 단기간에 갖추기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첫 단계인 반도체 엔지니어 인력 확보부터 난관이 예상된다. 결국 칩 내재화를 원한다면 역량을 갖춘 기업과 파트너십을 맺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각광받는 곳이 브로드컴과 마벨테크놀로지다.
브로드컴은 구글과 오래된 협업 관계로 알려졌다. 메타와 중국 바이트댄스(틱톡) 등도 협업 리스트에 있다. 최근에는 오픈AI와 애플까지 고객사로 확보했다는 말이 나온다. IT 전문매체 디인포메이션은 “애플이 ‘발트라’라는 코드명의 AI 칩을 브로드컴과 개발 중”이라고 밝혔다. 마벨테크놀로지 역시 마이크로소프트와 아마존 등 주요 빅테크와 협업 중이다.
양 사는 향후 ASIC 시장 전망을 긍정적으로 내다본다. 브로드컴은 최근 4분기 실적 발표 자리에서 ASIC 매출을 올릴 수 있는 ‘유효 시장(SAM)’ 규모가 빠르게 성장해 2027년 600억~90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2024년 ASIC 부문 SAM 규모는 150억~200억달러다. 브로드컴은 ASIC 시장을 앞으로 3년 동안 약 4배 커질 ‘블루오션’으로 내다본 셈이다.
마벨테크놀로지도 2028년 ASIC 시장이 400억달러까지 커질 것으로 봤다. ASIC 시장의 경우 브로드컴과 마벨테크놀로지 외 이렇다 할 플레이어가 없다. 이를 고려하면 브로드컴과 마벨테크놀로지의 실적 개선 속도 역시 상당할 전망이다. 특히 시장에선 그간 보수적으로 가이던스를 제공하던 양 사가 확실한 자신감을 보였다는 점에 주목한다. 수요가 없었다면, 공격적인 가이던스를 내놓지 않았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反엔비디아’ 이더넷 전선
브로드컴과 마벨테크놀로지는 AI 네트워크 인프라 부문에서도 엔비디아에 대항 중이다. 두 회사는 이더넷 네트워크 진영에 칩을 납품하며 ‘反엔비디아’ 이더넷 전선의 핵심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더넷 네트워크는 복잡한 형태다. 이해를 위해 AI 네트워크 구조를 알 필요가 있다. AI 네트워크는 크게 서버 내부 연결과 서버 외부 연결 두 가지로 나뉜다. 먼저 내부 연결은 AI 서버 내부의 반도체와 부품 등을 연결하는 형태다. 반도체 업계에서 자주 언급되는 고속 데이터 전송 기술(PCIe)과 PCIe 기반 컴퓨트 익스프레스 링크(CXL), 엔비디아 자체 기술인 NVLink 등이 내부 연결 기술이다. 반면 외부 연결은 데이터센터 내 서버와 서버 간 연결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선 인프라 구축이 필수인데,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GPU를 구매하며 인프라 구축까지 ‘패키지 상품’ 형태로 구매하는 방식이다. 또 다른 하나는 GPU를 별도 구매하고 인프라 구축은 다른 업체 장비 등을 활용하는 형태다. 쉽게 말해 완제품을 사느냐 조립식을 사느냐의 차이다.
그간 패키지 상품을 팔아온 곳이 엔비디아다. GPU와 함께 자사 네트워크 인프라 인피니밴드(InfiniBand)를 묶어 판매했다. 끼워팔기 비판이 나올 법한데, 불만 갖는 고객은 없었다. 네트워킹 기술 성능과 안정성 면에서 인피니밴드가 이더넷보다 앞선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피니밴드도 한계가 있다. 대형 AI 데이터센터가 지어지면서 서버가 늘고 이 과정에서 확장성 문제가 대두됐다. 인피니밴드의 핵심 콘셉트는 ‘RDMA(Remote Direct Memory Access)’와 ‘데이터 손실 최소화’다. 서로 다른 서버를 CPU 중개 없이 직접 연결해 속도를 개선하면서도 데이터 손실은 최소화한다는 의미다. 문제는 RDMA가 현재 수준의 대형 AI 데이터센터와 적합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연결할 서버가 늘어날수록 과부하로 성능 저하가 불가피해졌다. 이 지점을 파고든 게 이더넷 진영이다. 확장성과 가성비를 앞세워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IT 업계에 따르면 이더넷 기반 장비 활용 시 인피니밴드 대비 50% 비용으로 인프라 구축이 가능하다.
분위기 반전에 이더넷 진영에서도 자신감 섞인 전망이 이어지는 모습이다. 램 벨레가 브로드컴 코어스위치사업부 부사장은 2024년 3월 ‘인프라 투자 설명회’에서 “이더넷은 앞으로 대규모 머신러닝 클러스터의 표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같은 해 5월에는 자사 홈페이지에 ‘Ethernet says to InfiniBand, “Your margin is my opportunity” ’라는 글을 올렸다. 한글로 번역하면 ‘인피니밴드의 비싼 값은 이더넷 진영의 기회’라는 의미다. 램 벨레가 부사장은 “이미 선도적인 하이퍼스케일러(빅테크)는 생성형 AI 인프라 구축에 이더넷을 쓰고 있다”며 “인피니밴드는 매우 비싼 값(very, very expensive prices)에 팔리지만 효능은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최창원 기자 choi.changwo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91호 (2025.01.01~2025.01.0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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