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꿩 대신 닭’? 두산, 이번엔 사업 재편

김경민 매경이코노미 기자(kmkim@mk.co.kr) 2024. 12. 31.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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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배구조 개편 무산되자 대안 찾기 안간힘

두산그룹이 잇따른 지배구조 개편 무산의 아픔을 딛고 그룹 재정비에 나선다. 미래 먹거리로 점찍은 수소, 반도체 사업 재편에 속도를 내는 중이다.

두산그룹이 지배구조 개편 무산 이후 또 다른 사업 재편에 나서는 중이다. 사진은 두산에너빌리티 창원공장. (두산에너빌리티 제공)
두산, 수소 계열사 재편

DMI와 퓨얼셀파워 합치기로

㈜두산은 최근 수소 드론 제조업체 두산모빌리티이노베이션(DMI)에 건물용 수소연료전지 생산업체인 두산퓨얼셀파워를 넘기기로 했다고 공시했다. 양도가액은 1044억원이다. 두산모빌리티이노베이션은 이번 사업 양수와 운영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1340억원의 유상증자를 실시하기로 했다. 새해 2월 말까지 거래를 마칠 예정이다.

㈜두산 사업부문인 두산퓨얼셀파워는 건물에서 쓰는 전기를 수소로 생산하는 수소연료전지 제조업체다. 2003년 출범해 국내 건물용 수소연료전지 분야 시장점유율 1위를 달린다. 수소연료전지의 핵심 기술인 셀스택(셀을 쌓아 올리는 기술), 개질기(압축천연가스를 수소로 전환하는 생산장비) 설계, 제작부터 시스템 통합까지 전방위 기술을 갖췄다.

실적도 괜찮다. 하나의 사업부문이라 구체적인 실적이 공개되지는 않지만 2023년 연매출 500억원을 기록한 것으로 알려진다. 2014년 인수 당시 매출이 170억원 수준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세 배가량 증가한 수치다.

두산퓨얼셀파워를 품에 안는 두산모빌리티이노베이션은 두산그룹이 수소 드론 시장 전망을 밝게 보고 2016년 설립한 회사다. 2019년 세계 최초로 수소 드론을 양산해 재계 주목을 끌었다. 수소 드론은 2시간 이상 비행할 수 있는 데다 충전 시간이 짧아 배터리를 장착한 일반 드론보다 쓰임새가 클 것으로 내다봤기 때문이다.

다만 아직까지 실적은 부진하다. 연매출이 30억원 수준에 그친 데다 매년 100억원 넘는 영업적자를 내는 중이다. 완전자본잠식 상태에 빠지면서 두산그룹의 ‘아픈 손가락’으로 불린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수소 드론 가격이 5000만원에 달해 100만원이면 살 수 있는 중국산 배터리 드론보다 비싸다. 수소 드론 같은 대형 드론의 경우 비행하려면 승인을 받아야 해 여전히 대중화가 진행되지 않았다는 점도 변수다.

결국 두산 입장에서는 실적 부진에 시달리는 두산모빌리티이노베이션에 알짜 회사인 두산퓨얼셀파워를 붙여 재무구조를 개선하는 동시에 중소형 수소 사업을 강화한다는 속내다.

특히 두 회사는 그동안 고분자전해질 연료전지(PEMFC)를 기반으로 수소연료전지 사업을 추진해온 만큼 사업 통합이 수월하다는 것이 두산 측 설명이다. 고분자전해질연료전지는 에너지 전환 효율이 높고 가동성이 빠른 데다 구동 안정성이 높아, 건물은 물론 드론 같은 모빌리티용으로도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덩치가 커진 두산모빌리티이노베이션은 고분자전해질연료전지 핵심 기술, 연구개발(R&D) 인력을 확보해 사업 포트폴리오 다변화로 시너지 효과를 낼 계획이다. 앞으로 드론은 물론 건설기계, 이동식 수소 충전 장비, 중소형 선박 등 육해공을 모두 아우르는 중형 모빌리티 분야로 사업을 확대한다는 포부다.

김종선 두산모빌리티이노베이션 대표는 “각 분야 전문성을 확보해 신규 연구개발 기간을 줄이고 조직 운영 효율성이 높아져 신속한 의사 결정도 가능하게 됐다. ‘토털 수소 연료전지 솔루션 사업자’로 성장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를 계기로 두산그룹 내 수소 사업이 한층 커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그동안 두산밥캣은 수소 지게차, 두산퓨얼셀 자회사 하이엑시움모터스는 수소 버스를 생산해왔다. 두산에너빌리티도 경남 창원의 액화수소플랜트를 통해 수소 생산을 준비 중이다.

두산은 수소뿐 아니라 반도체 사업 재편도 준비 중이다. 두산그룹의 반도체 테스트 기업 두산테스나는 자회사 엔지온을 흡수합병한다. 엔지온은 이미지센서 반도체 후공정 전문기업으로 2024년 2월 두산테스나에 인수됐다. 반도체칩 선별과 재배열, 웨이퍼 연마, 절단 등 반도체 후공정 기술을 보유했다. 두산테스나가 엔지온 주식 100%를 보유한 만큼 신주를 발행하지 않는 소규모 합병으로 진행된다.

두산테스나가 100% 자회사 엔지온을 품에 안는 배경은 뭘까. 반도체 후공정 분야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라는 관측이 나온다. 두산테스나 관계자는 “이번 합병으로 향후 후공정 턴키 수주에 대응하는 한편 운영 효율성을 높이고 신규 고객사 확보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박준영 현대차증권 애널리스트는 “두산테스나는 비메모리업체로 향후에도 매 분기 800억~900억원 수준의 매출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것이다. 전장용 시스템온칩(SOC)부문 실적이 괜찮아 경영난에 시달리는 메모리업체와 비교해 안정적인 실적을 이어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두산그룹이 발 빠른 사업 재편에 나선 데는 이유가 있다. 그동안 야심 차게 추진해온 두산에너빌리티, 두산밥캣, 두산로보틱스 중심의 지배구조 개편이 결국 무산되면서 대안 찾기가 시급해졌기 때문이다.

두산그룹 지배구조 개편은 지금으로부터 6개월여 전인 2024년 7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두산그룹은 두산에너빌리티 종속 기업 두산밥캣을 분할한 뒤 두산로보틱스와 합병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지배구조 개편 계획을 내놨다. 두산그룹은 기존 ㈜두산 → 두산에너빌리티 → 두산밥캣 등으로 이어진 수직계열화 구조에서 벗어나 두산에너빌리티와 두산퓨얼셀을 주축으로 한 ‘클린에너지’, 두산로보틱스와 두산밥캣의 ‘스마트머신’, 두산테스나의 ‘첨단소재’ 등으로 사업구조를 전면 개편하기로 했다.

하지만 곧장 시장의 거센 비판을 받았다. 매년 1조원 넘는 영업이익을 올리는 핵심 자회사 두산밥캣을 잃게 되는 두산에너빌리티 주주 반발이 거셌다. 두산로보틱스는 2015년 설립 이후 단 한 번도 흑자를 내지 못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적자 기업인 두산로보틱스와 알짜 기업 두산밥캣 합병 비율을 두고 내내 시끄러웠다. 두산밥캣 1주당 두산로보틱스 0.63주라는 합병 비율을 알게 된 두산밥캣 주주 불만이 폭발했다. 두산밥캣 주주는 1주를 내놓으면 두산로보틱스 0.63주밖에 못 받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은 분할합병·주식의 포괄적 교환을 위한 증권신고서에 대해 2차례에 걸쳐 정정 요청을 했다. 결국 두산밥캣과 두산로보틱스는 두 달여 만인 2024년 8월 합병 철회 결정을 내렸다.

그럼에도 두산은 포기하지 않았다. 두산에너빌리티를 사업회사와 두산밥캣 지분을 보유한 신설법인으로 인적분할한 뒤, 신설법인을 두산로보틱스와 합병하는 사업 재편안을 다시 추진했다.

주주 불만을 의식해 새로 발표한 사업 재편안에서는 두산밥캣 평가 방식을 바꾸긴 했다. 신설법인과 두산로보틱스 합병 비율은 자본시장법에 따라 자산 가치 40%와 수익 가치 60%를 가중평균해 구하는 본질가치법을 그대로 적용하면서 두산밥캣 경영권 프리미엄 43.7%를 더했다. 이를 통해 두산로보틱스와 신설법인 합병 비율이 1 대 0.031에서 1 대 0.043으로 바뀌면서 두산에너빌리티 주주 이익을 높여줬다. 두산에너빌리티 주식 100주를 보유한 주주는 분할합병 완료 시 두산에너빌리티 주식 88.5주(기존 75.3주)와 두산로보틱스 주식 4.33주(기존 3.15주)를 받게 된다.

하지만 시장 반응은 여전히 싸늘했다. 두산에너빌리티 소액주주들이 “두산로보틱스와 신설법인 합병 비율이 상향 조정됐지만 여전히 우량 기업인 두산밥캣 가치를 저평가했다”며 사업구조 개편안을 규탄하는 트럭 시위를 진행할 정도였다. 글로벌 기관 투자자들도 두산에너빌리티 분할합병에 반대 의견을 냈다. 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과 캐나다공적연금, 브리티시컬럼비아투자공사 등 주요 기관 투자자들이 두산에너빌리티가 추진 중인 분할합병안에 반대 의결권을 행사했다.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 ISS 역시 “두산에너빌리티와 두산로보틱스 간 자본 거래에는 지배주주와 일반주주 간 이해가 상충한다”고 밝혔다.

논란이 끊이지 않자 두산그룹은 끝내 사업 재편을 포기하기로 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2024년 12월 10일 이사회를 열고 이틀 뒤인 12월 12일 열기로 한 임시 주주총회 철회를 의결했다.

사업 재편을 포기한 이유는 급격한 주가 하락 탓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령 선포 이후 탄핵 국면으로 이어지자 정부의 국정 과제 관련주인 두산그룹주가 일제히 하락했다. 원전 대표 주자인 두산에너빌리티 주가는 계엄 선언 당일인 12월 3일까지만 해도 2만1150원으로 주식매수예정가액(2만890원)을 웃돌며 사업 재편에 힘이 실리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계엄 이튿날 10% 넘게 빠지더니 5거래일 연속 하락해 1만7000원 선까지 주저앉았다. 사실상 ‘식물 정부’가 된 만큼 그동안 힘을 실어준 원전 사업 미래가 불투명해졌다는 이유에서다.

두산에너빌리티 주가가 급락하자 두산그룹은 비상이 걸렸다. 주식매수청구권 규모가 대거 불어날 것으로 예상돼 분할합병 비용이 치솟았기 때문. 두산에너빌리티는 주식매수청구권에 대비해 6000억원 자금을 확보해놨다. 주식매수청구권이란 합병회사 주주가 회사에 대해 주주총회 전 합병 반대 의사를 통지해 주식매수예정가액으로 보유 주식의 매수 청구를 할 수 있는 권리다.

그런데 국민연금이 사실상 기권표를 행사하면서 분할합병의 ‘마지막 희망’이 사라지게 됐다. 국민연금은 두산에너빌리티 주식 6.85%를 보유한 2대 주주다.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는 두산에너빌리티의 주주총회 분할합병계약서 승인안에 대해 ‘조건부 찬성’ 방침을 정했다. 주가가 주식매수예정가액(두산에너빌리티 2만890원)보다 높은 경우에만 찬성하기로 한 건데, 주가가 예정가액을 크게 밑돌아 사실상 기권을 택했다는 의미다. 국민연금이 찬성해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하지 않아야 했던 두산그룹 입장에서는 마지막 보루가 물거품이 된 셈이다. 국민연금이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하면 국민연금 한곳만으로도 주식매수청구권 규모 한도(6000억원)를 훌쩍 넘어버리기 때문에 분할합병 실익이 없어진다.

“두산그룹이 최초 사업 재편 추진 당시 주주 반대뿐 아니라 금감원의 두산로보틱스, 두산밥캣 분할·합병 비율 정정 요구를 받았는데 이때 더욱 신중하게 검토했어야 했다. 분할·합병 비율을 수정하면 사업구조 개편안이 통과할 줄 알았지만 여론이 싸늘한 데다 기관 투자자들도 반대 의사를 내비치면서 결국 실망스러운 결과를 맞게 됐다.” 재계 관계자 진단이다.

사업 재편 성과 낼까

체코 원전 수주 불안, 수소 성과 미지수

이번 사업구조 개편안 철회 후폭풍은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당장 두산에너빌리티가 직격탄을 맞았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사업 재편이 성공할 경우 약 7000억원의 차입금을 두산로보틱스에 넘겨줄 예정이었다. 박상현 두산에너빌리티 대표는 사업 재편안 재추진 당시 간담회에서 “부채 감소로 1조원 넘는 투자 여력을 확보하면 대형원전뿐 아니라 소형모듈원전(SMR), 가스수소터빈 등에 투자할 것”이라며 기대에 부풀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향후 5년간 대형원전 10기와 SMR 60기를 수주하고, 가스터빈 엔진은 2038년까지 100기 이상 따낸다는 야심 찬 목표도 앞세웠다.

하지만 정작 체코 원전 수주조차 불안해진 상황이다. 2024년 7월 한국수력원자력과 함께 체코 두코바니 신규 원전 2기 수주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지만 2025년 3월 본계약이 순조롭게 진행될지 미지수다. 윤 대통령이 2024년 9월 페트르 파벨 체코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최종 계약까지 직접 챙기겠다”고 공언했지만 비상계엄에 따른 탄핵 정국으로 본계약 과정에서 잡음이 커질 것으로 우려된다.

두산그룹이 뒤늦은 사업 개편으로 기대를 거는 수소 사업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워낙 수소 판매 단가가 비싼 데다 수소차 판매가 지연되면서 두산에너빌리티가 추진해온 액화수소플랜트는 여전히 생산 일정을 잡지 못하는 실정이다.

“두산이 고육지책으로 수소 계열사를 통합하는 승부수를 던졌지만 두산모빌리티이노베이션 실적이 워낙 부진해 두산퓨얼셀파워를 통합한다고 해서 당장 시너지 효과를 낼지는 미지수다. 사업 재편에만 신경 쓸 것이 아니라 정국 혼란, 트럼프 2기 시대를 대비해 계열사 본업 경쟁력 강화 방안을 챙기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익명을 요구한 A대 교수 의견이다.

[김경민 기자 kim.kyungmi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91호 (2025.01.01~2025.01.0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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