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주로 끝 251미터 떨어진 '콘크리트 둔덕'..."그게 왜 있나"

김성욱 2024. 12. 30.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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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 "활주로 인근 단단한 구조물은 위험"... 국토부, "정해진 규격 없다"→"규정 파악 중"

[김성욱 기자]

 30일 전남 무안군 무안국제공항 활주로 인근의 방위각 시설(로컬라이저)이 전날 제주항공 여객기와의 충돌 여파로 파손돼 있다. 방위각 시설은 공항의 활주로 진입을 돕는 역할을 하는 일종의 안테나로, 흙으로 된 둔덕 상부에 있는 콘크리트 기초와 안테나가 서 있는 구조다.
ⓒ 연합뉴스
 30일 전남 무안군 무안국제공항 활주로 인근의 방위각 시설(로컬라이저)이 전날 제주항공 여객기와의 충돌 여파로 파손돼 있다. 방위각 시설은 공항의 활주로 진입을 돕는 역할을 하는 일종의 안테나로, 흙으로 된 둔덕 상부에 있는 콘크리트 기초와 안테나가 서 있는 구조다.
ⓒ 연합뉴스
179명이 숨진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당시, 랜딩기어(착륙 바퀴)가 내려오지 않은 채 무안공항 활주로에 비상착륙하던 항공기가 최종 충돌한 방위각 시설물이 고강도의 콘크리트로 지어져 참사를 키웠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방위각 시설이란 비행기의 활주로 진입을 돕는 일종의 안테나인데, 이번 무안공항 사례처럼 그 아랫부분이 단단한 콘크리트 둔덕으로 돼 있을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30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이 콘크리트 둔덕은 활주로 끝에서 불과 251미터 떨어진 곳에 있었다. 활주로 인근에 이런 구조물이 있는 건 위험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무안공항 콘크리트 방위각 시설의 위치와 재질, 강도의 적절성 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되기 시작한 건 해외에서부터였다. 항공 문제 전문가인 데이비드 리어마운트는 30일 영국 스카이뉴스에 출연해 "충격적이다. 착륙 시 조종사가 랜딩 기어를 내리지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하더라도, 그 자체가 탑승객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직접적 원인은 아니다"라며 "승객들은 활주로 끝을 바로 조금 벗어난 곳에 있던 견고한 구조물에 부딪혀 사망한 것이다. 그곳은 그런 단단한 구조물이 있으면 안 되는 위치였다"고 말했다.

그는 "구조물 위의 로컬라이저(방위각 시설)는 대개 땅에 고정돼 있지만, 충돌 시 비행기에 큰 손상을 주지 않도록 부러질 수 있게, 접힐 수 있게 설계된다"면서 "그런데 이번에는 비행기가 견고한 구조물에 부딪혀 그대로 폭발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다른 나라들은 ILS(Instrument Landing System, 계기착륙장치) 안테나를 설치할 때 보통 콘크리트 구조물 안에 박아서 설치하지 않는다"고도 덧붙였다. 미국 등에서는 활주로 주변에 설치하는 안테나 등 구조물은 파손 가능하고 부러질 수 있어야 한다고 한다.

리어마운트는 "상황을 고려할 때, 조종사는 아주 훌륭하게 비행기를 착륙시켰다"라며 "비행기가 매우 빠른 속도로 이동하고 있었지만, 땅을 미끄러지듯 내려왔다"고도 했다.
 영국 스카이뉴스의 30일자 보도 내용. 제주항공 참사를 다루며 "왜 활주로 끝에 단단한 구조물이 있었나?"라고 묻고 있다.
ⓒ 스카이뉴스 캡처
항공 사고 조사 전문가인 데이비드 수시도 미국 CNN 인터뷰에서 "공항은 착륙 장비 없이도 착륙할 수 있도록 설계돼야 한다"라며 "비행기가 활주로에서 벗어나 잔디로 미끄러지더라도 이런 종류의 장애물이나 장벽이 활주로 근처에 있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는 "이번 사고의 경우 콘크리트에 설치된 조명시설이 정확히 그 자리에 위치했는지 아직 확실히 알 수 없지만, 개인적으로는 그것(콘크리트 시설)이 거기에 있어야 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고 했다.

제주항공 참사 비행기와 같은 기종인 보잉 737-800을 조종한다고 전해진 우크라이나 출신 조종사 데니스 다비도프도 본인의 유튜브 채널에서 "(제주항공 참사) 비행기는 활주로를 미끄러지기 시작했고, 활주로를 벗어나 로컬라이저 안테나에 부딪혔다"라며 "(무안공항의) 이 안테나를 만든 사람들에게 질문이 있다. 왜 이렇게 튼튼하게 만들었나"라고 말했다. 그는 "비행기가 이 두꺼운 철근 콘크리트에 의해 즉각 멈춰섰다. 이 벽이 얼마나 두꺼운지 보라"고도 했다. 그는 "어떤 이유로 안테나를 높이 만들고 싶다면, 콘크리트가 아닌 (부러질 수 있는)금속 타워로 지을 수도 있다"고 했다.

항공 산업 전문가인 제프리 토마스도 "활주로 근처에는 어디에도 벽이 있어서는 안 된다"라며 "그 벽을 설치하는 것은 국제 기준에 위배된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무안공항의 단단한 콘크리트 둔덕이 국제민간항공기구(International Civil Aviation Organization, ICAO) 규정에 반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콘크리트 둔덕' 논란에… 국토부 "정해진 규격 없다" → "근거 규정 파악 중"
  국토교통부 주종완 항공정책실장이 30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 브리핑'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국내 전문가들도 비슷한 의견이었다. 김인규 항공대학교 비행교육원 원장도 이날 CBS 라디오에 출연한 자리에서 "사고 영상을 보시면 마지막 단계에서 그 둔덕에 부딪히면서 굉장히 큰 충돌이 일어난다. 그걸 넘어서면서 동체가 동강이 나면서 바로 화재가 발생한다"라며 "가정이지만, 만약에 저 둔덕이 없었더라면 이 항공기는 계속 밀고 나가서 벽을 치고 그 다음에 거기를 넘어설 수 있었을 것이고, 아마 지금보다 좀 더 온전한 상태로 남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라고 했다.
공하성 우석대학교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비상 동체 착륙이었기에 일반 착륙보다 제동거리가 더 길어질 수 있다"라며 "콘크리트 구조물에 충돌하자마자 바로 불이 나는 바람에 피해가 컸는데, 만일 안테나 등이 최소한의 설치로만 돼있었다면 피해가 더 줄었을 것"이라고 했다.
 30일 전남 무안군 무안국제공항 활주로 인근의 방위각 시설(로컬라이저)이 전날 제주항공 여객기와의 충돌 여파로 파손돼 있다. 방위각 시설은 공항의 활주로 진입을 돕는 역할을 하는 일종의 안테나로, 흙으로 된 둔덕 상부에 있는 콘크리트 기초와 안테나가 서 있는 구조다.
ⓒ 연합뉴스
국토부는 콘크리트 방위각 시설에 대한 문제 제기에 "정해진 규격은 없다"(오전 10시 브리핑)고 주장했다가, 논란이 커지자 "근거 규정이나 해외(규정) 내용들을 파악하고 있다"(오후 3시 브리핑)고 답변을 바꾸는 모습을 보였다.

주종완 국토부 항공정책실장은 이날 오전 언론 브리핑에서 콘크리트 구조물에 대한 취재진 질문에 "방위각 시설을 어떤 토대 위에 놓느냐는 공항별로 다양한 형태가 있다. 정해진 규격은 없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여수공항이나 포항경주공항에도 이런 콘크리트 구조물 형태로 방위각 시설이 설치돼 있는 걸 파악했다"고도 설명했다.

그러나 주 실장은 오후 언론 브리핑에서는 같은 문제에 대해 "규정과 해외 내용 등에 대해서는 파악하고 있는 중이고, 파악되는 대로 자료를 제공하겠다"고 말을 바꿨다. 주 실장은 다만 "국내에는 제주공항에서 콘크리트와 H빔을 써서 (방위각 시설)높이를 올린 바 있고, 여수공항과 포항경주공항은 성토와 콘크리트를 써서 높이를 올린 사례가 있다"라며 "해외 사례도 일부 조사해보니, 미국의 LA공항과 스페인 테네리페 공항 등이 콘크리트를 활용해 (방위각 시설을)올린 사례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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